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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칼럼] 반동의 시대
게시물ID : sisa_364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_Eraser
추천 : 2
조회수 : 37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7/11/14 13:09:18
    
 
 
“동무는 반동이오!”
1960년대 반공영화였다. 악랄하게 생긴 인민군 장교가 마을 촌장을 묶어 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완장을 찬 사람들이 촌장에게 발길질을 했다. 동네 꼬마들이 전쟁놀이를 하면서 흉내를 냈다.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 무섭게 야단을 쳤다. 눈물을 훔치며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조금 철이 들어서야 알게 됐다. 사람들이 반동으로 몰려 죽었다는 것을, 그래서 반동이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70년대까지도 반동은 금기의 단어였다. 본래의 학술적 의미로 돌아온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반동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등장했다. 정확히는 ‘구체제를 부활하려는 정치적 행동’이다. 간단히 말하면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가설 위에 존재한다.

역사의 발전은 무엇일까? 한국의 민주주의는 87년 6월항쟁을 통해 한 단계 발전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민간인 출신 대통령 당선,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는 발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한나라당의 재집권은 역사의 발전일까, 아니면 반동일까? 설마 한나라당 자체가 반동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다. 그는 ‘냉전수구세력’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도 ‘오른쪽’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역주의 회귀, 과거 회귀도 있다. 한나라당의 12일 대구·경북 필승결의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90% 지지’를 호소했다. 수도권의 압도적 지지로는 부족한 것일까? 이명박·이회창 후보는 12일과 13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경쟁적으로 ‘박통’을 찬양했다. 퇴영적이다.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치자.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최근 <한겨레>의 조사 결과는 이명박 41.2%, 이회창 24.7%였다. 합치면 무려 65.9%다. 나머지는 정동영 12.4%, 문국현 6.3%, 권영길 1.8%, 이인제 1.8%다. 다 합쳐도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에 못미친다. 회사에 자식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월급을 타 먹게 하는 것은 ‘졸부’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래도 이명박 후보는 굳건하다. 세상이 조금 미쳐가는 것 같다.

이유는 뭘까? 반동의 물결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에게 물었다.




“노무현 정권은 사이비 개혁 정부였다. 총제적으로 실패했다. 그런데 좌파 정권으로 규정됐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정치적 설명을 시도해 보자. 이회창 후보의 갑작스런 출마로 정책 선거는 실종됐다. 대선은 게임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동영·문국현·권영길 후보는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가치관의 붕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가치관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교수가 존경받았지만, 지금은 빌딩 한 채 가진 사람이 더 존경받는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돈을 벌어야 성공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는 돈을 상징한다. 가치관의 붕괴는 정치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학자, 언론인, 관료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반동의 시대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지혜로우면 우회할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은 유권자가 한다. 대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유권자가 져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ERIES/64/249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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