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첫 사랑을 우연히 만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6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31
조회수 : 3991회
댓글수 : 70개
등록시간 : 2015/05/27 11:59:49
옵션
  • 창작글
학창시절부터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가사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이 생기겠지
하면서 그 노래를 듣고는 했는데, 냉정하게 계산해보니 그동안 사귀었던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 노래 가사 같은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이맘 때쯤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스무 살 여름이 다 되어가던 시기였다. 교복을 훌러덩 벗고 혈혈단신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둥지를 튼 동기들은 하나 둘 씩 의지할 짝을 찾아 떠났지만, 나는 동아리의 소파와 혼연일체 되어갈 때쯤 내 품에는 사랑스러운 여학우가 아닌 줄이 하나 빠진 기타가 항상 안겨 있었다.
그런 나를 측은하게 여긴 한 여자 선배가 동생의 친구를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다.
"성성아 너 소개팅 한 번 해볼래? 내 동생 친구 중에 착하고 예쁜 애가 있는데..."
일단 나는 착하고 예쁜 애라는 말에 '왜 그런 우수한 인재가 아직 남자친구가 없어' 의심을 하며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 저는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말을 잘 못 해서요. 차라리 선배 동생을 소개해주시면 안 돼요?"
(예전에 선배 동생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선배는 집안의 돌연변이라 표현했지만, 그 돌연변이는 참 아름다웠다.)
'선배는 이른 시기에 찾아온 더위에 이 새끼가 실성했나?' 하는 표정을 아주 잠시 지으며
"너랑 혹시라도 가족으로 엮이고 싶지는 않구나" 라고 말하며 싫으면 하지 말든가 라는 말에 나는 당연히 소개팅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음대생이라고 했다. 성악이라 하니 바로 떠오른 인물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였다.
파바로티를 연상하며 일단 풍채가 위풍당당하며, 노래도 물론 잘하고 멋진 구레나룻과 수염도 있겠지 하는 흐뭇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예상과 다르게 보통 체격이었으며, 기대했던 멋진 구레나룻와 수염은 없었다. 물론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노래 솜씨와 목소리는
매우 좋았다. 특히 쌍꺼풀이 매력적인 나의 이상형의 조건을 모두 갖춘 여성이었다.
(참고로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항상 졸린 듯한 눈을 가진 나의 이상형은 하얀 피부에 눈이 쌍꺼풀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와 소개팅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자연스레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녀의 학교로 찾아가거나, 서로의 학교 중간 지점에서 만나고는 했다.
지금이라면 두둑한 비자금과 무이자 할부가 가능한 신용카드로 그녀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선물도 많이 했겠지만 스무 살 당시의 나는
유니세프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처절한 생활을 하던 찌질한 자취생 신분이어서 그녀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다.
길가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1인분을 가지고 둘이 먹을 때도 있었고, 김밥 한 줄을 가지고 나눠 먹을 때도, 그리고 놀이동산에서 한 장의
자유이용권을 서로 번갈아가며 놀이기구를 타는 안습의 데이트를 했지만 그녀는 나와 있으면 재밌다고 해줬고, 만날때마다 내가 좋아하던 그녀의
미소를 선물해줬다.
 
그렇게 몇 개월을 만나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 나 봤을 때 생긴 거 보고 실망 많이 했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소개팅하기 전에 언니한테 너 순박한 동남아 농부처럼 생겼다는 말 들었어. 나는 남자 외모보다 착하고 재미있는 사람,
그리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더 좋아."
속으로 나는 '아! 이 여자는 내 인생의 마더 테레사이며, 어두운 남산터널 같은 내 인생의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불타오르는 욕정의 화신 같은 약관의 나이였던 내가 결코 마음마저 순수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 그녀를 포옹하고 싶었고, 노래하는 그녀를 보면 마이크를 뺏고 내 얼굴을 들이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녀와 키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키스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남발하고는 했다.
"나는 사나이의 음악이라 불리는 헤비메탈에 관심이 있는데 천재 베이시스트 진 시몬스가 이끄는 "키스"라는 그룹을 좋아해. 언제 너와 함께
듣고 싶어 키스" (참고로 진 시몬스는 천재 베이시스트는 아닌 거 같지만, 키스에 굶주린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너 짐 캐리 나오는 마스크라는 영화 봤어? 그 영화 주인공 이름이 "스탠리 입키스"야.. 입에 키스하니까 입키스 인가 하하핫.. 입 키스 입 키스"
"나는 키스 해링 그림들을 참 좋아해, 단순하지만 뭔가 상징적인 키스 해............ 링, 키스 해........ 링..."
하지만 나와 그녀의 (물론 내 인생의 첫 키스였다.) 첫 키스는 그런 쓸데없는 드립을 몇 개월 동안 날린 이후에 가능했다.
첫 키스를 하면 머릿속에 종이 울린다, 세상이 온통 환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 쓸데없고 그냥 좋았다.
그녀의 집 계단에서 첫 키스를 한 날 나는 "키스 좋아, 완전 좋아" 하면서 몇 번이고 키스하자고 우겼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의 풋풋한 사랑을 하던 우리가 헤어진 건 스티브 유가 미국 국적을 취득해가면서까지 가기 싫어하던 군대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입대 일을 앞두고 만나  "난 군대 가니까 우리 헤어지자, 더 좋은 사람 만나" 이런 쓸데없는 허세를 부렸고, 그녀는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몇 번의 편지가 오간 뒤
그녀와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겼고, 훗날 휴가 나온 자리의 술자리에서 선배를 통해 그녀에게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술을 얻어 먹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하도 눈물을 권유해서 술에 취해 울었다.
 
그녀와 헤어진 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가 어디선가 잘 지내겠지 하는 생각을 할 뿐, 그녀의 안부가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내게 그녀는 이제 스무 살의 기억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4년 회사에서 참여한 코엑스의 모 전시회에서 나는 직원들과 함께 우리 회사 제품의 판매와 홍보를 하고 있었다.
(말이 홍보였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를 태국인 바이어 또는 외국인 직원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계속 서 있다 보니 지쳐가고 있을 때, 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 부스를 구경하러 온 너무나 익숙했던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유모차를 끌고 따라오는 남편으로 여겨지는 사내도 있었다.
그녀도 나도 반가운 마음보다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상황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서로 어떻게 지내?' 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30대를 훌쩍
넘겨버린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의 모습을 통해 주고받았다. 그녀는 자기의 눈을 닮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나는 우리 물건에 관심을 보이던
큰 아이에게 "와~ 아가 눈이 예쁘구나" 하면서 팔아야 하는!!! 물건을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드려야지, **아" 라고 했고 나는 다시 아이에게 "**이 엄마 닮아서 눈이 예쁘구나!" 하며 칭찬을 해줬다.
그러고 보니 그녀를 만날 때 눈이 예쁘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눈인사로 지난 시간에 대해 인사를 하고 그녀는 가족과 함께
우리 부스를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그녀는 너무 행복한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도 이집트 노예처럼 앉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서서 일해서 행복했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그녀에게 눈이 예쁘다는 말을 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출처 스무 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와 배불뚝이 대머리 동남아 아저씨가 돼버린 작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쓰고나서 보니 안 웃긴 게 함정이네요. 허허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