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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랑에 대한 변명
게시물ID : love_43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주뢰장
추천 : 1
조회수 : 64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8/09 01: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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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새로 쓰다가

그냥 쓰지 말아야지, 덮어뒀었다.

이 주제에 신경이 쏠리는 걸 애써 회피하려고 했었나보다.

 

여러 번 반복하다, 다시 또 이 제목 아래 펜을 가져다 댔다.

그냥, 고민 없이, 별 생각 없이 쭉 써내려 갈 수 있길

 

사실 다른 기억들은 잘 써내려갔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사람과의 얘기를 뺀다면

사실, 20대의 절반 정도가 휩쓸려 나간다.

아니, 거의 전부 다

 

그래도 쉽게 얘기를 하지 못했던 건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오로지 내 관점에서 튀어나온 말들이

나를 미화하고, 또 반대로 너를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같잖은 걱정이 컸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옛사랑으로 곱게 접어서 기분 좋은 추억으로 만들지 못했던

내 찌질함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벌써 다섯 번 째 봄이 지나 여름이 찾아왔다.

폭염 때문인지 글을 쓰려니까

다시 뜨거워진다,

 

스무 살 때였다.

반팔을 입는 봄에, 우리는 처음 만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시작하기도 힘들었을 거다.

일단 라는 인격체를 가까이 대한다는 것부터

내가 스무 살이었던 해에 네가 스물다섯이었다는 것까지

우리에게 보통이나 일반적임에 어울리는 일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 앉아 우리의 공간 안에 있을 땐

생활패턴이나 가치관, 전공, 취미, 관심사, 정치성향까지

크게 엇나가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그게 사실은 너의 배려 때문이란 걸 깨닫기 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일이다.

소소한 즐거움이 챙겨주는 행복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겼었으니까.

 

함께 과제를 하고, 술을 먹고 밤새 얘기하며,

또 서로 글을 씹어대며 고쳐줄 수도 있었다.

틈만 나면 사회 정치적 이슈를 두고 토론을 하다가

감정싸움을 하고, 삐치고 서로 어르고 달래는 걸 반복했다.

 

이제와서 이런 얘길 하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합리적인 감정소비였던 것 같다,

 

갓 졸업한 고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삐딱한 가치관으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채로

나는 지구에서 제일 모난 새끼입니다.’

광고를 하고 다녔었다.

 

사춘기 때부터 이어진 비행의 줄기를

잘라내기 못하고 달고 다녔을 때,

내 모자란 날카로움을 옳은 방향으로 다듬어준 것도 바로 너였다.

 

너는 애인이자 친구였고 누나였고

동료였고 가족이었고 또 나였다.

농담처럼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게 본인이라고 할 때마다

난 또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쪼잔하게

콧바람 씩씩대며 헛소리 말라던 애새끼였다.

 

줄곧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던 길에서 틀어져 방황할 때도

매번 손을 내밀어 끌어당겨 줬던 게 바로 너였다.

나한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였냐고 물으면

나는 아직도 별 고민 없이 그 사람이 너였다고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다.

 

20대의 모든 추억 위에 너와 함께 서 있지만,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널 만나는 동안 많이 배우고, 많이 커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문득

네 얘길 듣는 게 익숙해져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이제 진짜 끝이라던 끝도 끝이 났다.

 

짓궂은 술자리에서 가끔씩

이제 진짜 잊었냐고 묻는 말들이 오가지만

잊는다는 말은 내 일부를 덜어내는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이제는 그냥 기분 좋은 추억으로 책장 끄트머리쯤에 넣어두고

,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지 싶다.

 

너도 잘 살겠지라는 내 생각이 민망할 정도로

너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니까.

 

사실 다른 건 다 큰 의미 없는 말이었고,

이 얘길 하고 싶었어

 

응 누난 되게 고마운 사람이야

 

네 덕분에 나는 별 탈 없이 또 잘, 살아간다.

출처 2015년 8월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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