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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조금 달라 생긴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74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꼬망꼬망
추천 : 12
조회수 : 1233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15/06/09 16: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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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게 생겼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도 점 위치 하나 정도는 다르지 않던가. 

이런 다름 속에서도 '저 생명체는 나와 동족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동질성 또한 품고 있으니 가히 자연의 위대함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가끔 '저 사람은 외계인과의 혼종인가?', '드디어 인류가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구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이질적인 형태를 거울 속에서 발견하곤 하지만. 

또, 쥐와의 합일을 이룬 놀라운 개체도 있고, 속이 텅텅 빈 계란을 낳은 원숭이도 있으니 자연의 일이란 게 꼭 딱딱 맞아떨어지는 건 아닌가 보다. 

 

사실 사람들이 외형의 차이를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보고 차별하던 우매한 시대는 완전히 종식된 건 아니다. 

다행인 건 몇몇 문화권 내에서는 선천적 요인으로 인한 외형의 차이로 차별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천적, 특히 선택적인 외형의 차이는 아직까지도 인정받기 힘든 실정이다. 

 

앞으로의 내용은 바로 그 외모의 다름에서 기인한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다. 

 

1. 

금수저는 커녕 밥 한 술 뜰 일회용 숟가락 하나 있을 리 만무한 [상경한 대학생-basic.ver]인 나는 틈만 나면 최저 시급에도 허리를 굽히는 [가난한 알바몬-basic.ver]이 돼야 했다. 

특히 대학생만 누릴 수 있는 휴학이라는 시스템은 학비까지 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데, 

사실 '학문을 쉬는 만큼 노동을 하는 것이 진정 휴학인가?'하는 자조적인 회의를 품을 수 밖에 없지만, 

오늘 저녁 메뉴를 라면으로 할 지 빵으로 할 지 고민하지 않으려면 한 명의 노동자가 됨이 옳았다. 

지금은 휴학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비슷한 알바를 하고 있다. 사실 정확한 명칭을 3 달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어찌 됐든 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 만큼 꿀 같은 알바이기에 매일 매일을 잉여롭게 보내고 있다. 

문제의 그 날도 책 정리를 빠르게 마치고 오유에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을 보며 누가 이렇게 많은 떡밥을 뿌리고 있나 고민하고 있는데, 

모니터 너머로 한 처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뭔가 이렇다 할 특징이나 포인트 없는, 평범한 [시험 기간 대학생 st]이었다. 

한 가지 시선이 가는 것은, 뭔가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전공 보스 몹을 쓰러뜨리려고 잔뜩 카페인을 빨아제 친우들의 초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 때 그녀가 불안한 눈빛과 거친 호흡과 함께 그걸 지켜보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언니, 혹시 생리대 있어요?" 

 

이 물음 하나에 나는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5 층이다. 

1 층에서부터 5 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보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판 모르는 학생들에게 부탁하자니 좀 그렇고 그나마 학교 직원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야. 

층은 워낙에 공개된 곳인 데다가 왕래도 많으니 좀 민망했을 거야. 

2 층부터 4 층까진 남자들만 일하고 있으니 당연히 물을 수 없었겠지. 

그리고 마지막 층인 이 5 층. 그러나 차마 부끄러울 수도 있는 그 질문을 어렵사리 떼었을 텐데... 

정말이지 오늘 내 가방 안에 생리대가 있었다면, 설령 사이즈가 안 맞는다거나 하더라도 임시로나마 쓸 생리대가 있었다면 기꺼이 드렸을 텐데! 

하지만 내 가방 안에는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내어드릴 것이 없었다. 

결국 난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말씀드렸다. 

 

"죄송해요. 제가 남자라서..." 

 

 

2. 

사실 내가 그렇게 여성스럽게 생긴 건 아니다. 

어느 구석을 봐도 상남자 같은데 그저 머리카락이 좀 길다는 이유로 오해를 자주 사곤 한다. 

아가씨나 언니 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건 예삿 일이고, 

중화장실에서도 흠칫하는 뭇 사람들의 반응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내가 성희롱을 한 것도 아니고, 착각도 그 사람들이 한 거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씩 나 스스로도 '내가 그렇게 여자처럼 보이나?' 싶을 정도로 내 정체성에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 경우는 보통 사람을 자주 또는 많이 대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어 사람 볼 줄 안다는 사람들이 엮여 있는 때이다. 

 

가난한 학생의 방에서는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날도 없어진 곳간을 채우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가는 길목에 마침 화장품 가게가 생겼는데, 무슨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작은 샘플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 손 트지 말라고 핸드 크림을 나눠주는구나 하고 감사히 받고 가방 안에 넣었다.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목록들을 확인하니 분명 내가 사지 않은 게 있었다. 

[여성용 청결제] 

물론 핸드크림 샘플은 가방 안에 없었다. 

 

20 몇 년을 살면서 이런 물건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나는 침착히 컴퓨터를 켰다. 

부팅의 시간 동안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청결제니까 손 세정제 같은 건 아닐까?' 

'그런데 여성만을 위한 세정제가 있을까?' 

'역시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ㄱㅊ 없는 형 썰은 거짓말이고 여성들은 다들 청결한 것일까?' 

컴퓨터가 켜지고 검색어를 넣는 순간, 나는 마치 비밀의 화원에 들어간 듯한 충격과 마주했다. 

안다고 나쁜 것 없는, 아니 오히려 필요할지도 모르는 지식이었지만,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던 나를 이 화원으로 초대한 그 화장품 가게 누나의 거친 손길에 내 순수한 남성이 받은 상처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샘플로 내 한 손을 구속한 누나에게 오늘은 아니라고, 무섭다고, 다음에 주면 안 되겠냐고 떼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으로 제대로 된 성교육 하나 실현하지 못하는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을 욕하기도 했다. 

그렇게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끼며 침대 위에서 부둥부둥하다가 어쨌든 저걸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딱히 방도가 없던 나는 친구들께 물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다 같이 미친 사람들만 있어서 별로 안 부끄러울 것 같은 카톡 방에 질문을 올렸는데, 

역시 미친 짓이었다. 

 

"써."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이었다. 

혹시 이 친구는 내 성별을 헷갈린 게 아닐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 내게 없던 게 생긴 걸까? 

아니, 어쩌면 나만 혼자 내 성별을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신체 검사를 하고 다시 카톡을 열었다. 

그리고 답했다. 

 

"어디에?" 

 

" 거에." 

 

"그치만 난 사용 가능 부위가 없는데?" 

 

"항균과 청결은 성별을 떠나 모두에게 중요한 거야." 

 

잊고 있었다. 녀석은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라는 걸. 

어느 날 갑자기 핫팬츠를 입고 와서 핫팬츠의 우월함에 대해 설파할 때 이런 반응을 예측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근시안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친구들의 톡이 끼어들었다. 

 

"제품이 몸에 다라 서로 사맞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벗이 쓰고 싶어도 쓰고져 홇빼이셔도 마참 제 씀을 씀디 못할놈니 하니라. 내 이를 위하야 어여삐녀겨 신통한 길을 내리노니, 몸을 바꾸라." 

 

"그래, 수술을 하든 환생을 하든  몸을 바꾸면 되지. 물건을 탓하리?" 

 

"좋다고 받아  놓고 이제 와서 버리려고? 우리 사이 그거 밖에 안 돼?" 

 

"쓸 거랬잖아! 쓸 거랬잖아!" 

 

"오빠, 변했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 

 

하하하, 참으로 도움되는 녀석들. 

더 이상 카톡을 봐도 답이 안 나오기에 나는 카톡을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역시 쓸 데도 없는 거 그냥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으로 본 톡이 떠올랐다. 

굳이 내가 쓸 의무는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준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서 이걸 누구에게 줄까 하다가 

그림 실력만 있었으면 미야자키 감독의 수염을 뽑고 

돈만 있었으면 스필버그 감독의 안경을 날려버릴 상상력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학교 선후배나 동기, 동네 친구, 알바 중에 만난 사람들 등등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사람들을 한 명 한명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성용 청결제를 선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내용물을 확인한 불안한 눈빛과 

달려오는 경찰분들의 거친 쇠고랑과 

그걸 지켜는 너. 

이건 몹쓸 짓이었다. 청결제를 선물하기에는 그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가 그리 더럽지 않았다. 

 

그래. 여자친구라면!! 

약간의 언변과 예쁜 포장을 더하면 여자 친구의 건강도 생각하는 센스 있는 선물을 하는 남자친구로 보여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결제가 생긴만큼 조금 더 더러운 관계로 가도 문제 없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그럼 이제 한 가지만 해결하면 됐다. 

여친 사귀기.... 

 

결국 청결제는 쓰레기 봉투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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