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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투성이
게시물ID : panic_4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름이Ω
추천 : 15
조회수 : 4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9/09/06 02:18:07
투성이 



“아버지, 저 검사가 되고 싶은데요.” 

토요일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후배 강검사와 아들 철민이랑 함께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종현은 술기운이 올라오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향한 채 고가도로 아래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의 밤을 환하게 밝힌 조명의 빛무리가 꼬리를 끌며 지나쳐가는 모습에 취해있던 종현은 철민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종현은 당황한 기색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다급히 물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강검사도 뒤를 돌아다보았다. 

“검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나라를 위해? 입에 발린 소리는 집어치우라지. 그런 말이 목구멍을 밀고 올라왔으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종현은 그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나이는 고작 일흔다섯이었다.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백이십 세로 늘어난 지금, 자신은 한창 일할 나이라고 종현은 생각하고 있었다. 

“음, 철민아. 종신 판검사 제도하에서 네가 검사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강검사가 철민을 쳐다보며 물었다. 철민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종신 판검사 제도는 판검사의 임기를 평생 보장하는 제도로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사법부에 적(籍)을 둔 판검사는 평생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또한 본인이 퇴직한 후 간단한 연수를 받은 퇴직 판검사의 자제들은 사법부에서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늘어나는 강력 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공권력의 강화와 그 연속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종신 판검사 제도에 종현이 불만을 품고 있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자신도 평생 고소득이 보장되는 신귀족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들 철민이 자신의 뒤를 이어 검사가 되는 것에도 불만은 없었다. 문제는 철민이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퇴직하여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작 말단 검사직을 마련하기 위해 고등 검사장인 자신이 퇴직해야 한다니, 종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넌 아직 어려.” 

종현의 불만어린 말에 철민이 코웃음을 쳤다. 

“어리다뇨? 마흔 넘은 지가 언제인데요. 그리고 연수는 벌써 마쳤습니다.” 

“연수랑 실제는 달라. 2년 가지고는 무시당하기 십상이란다.” 

강검사가 달래듯이 말을 걸었다. 

“글쎄요. 아버지 같은 분도 검사를 하시는데 저라고 못할 건 없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에서 찬바람이 들어와 종현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그 바람보다 차가운 말투에 종현은 영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무슨 소리냐?” 

“아버지가 지금까지 무슨 더러운 짓을 해 왔는지 모르는 줄 아세요?” 

난처해진 종현이 강검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검사는 종현을 외면하며 헛기침을 했다. 

종현은 다시 눈길을 돌렸다. 눈 아래 번쩍이는 화려한 야경이 펼쳐졌다. 이 광경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한 자뿐이다. 빛이 명멸하는 저 아래쪽, 어둠이 눌어붙은 저 아래쪽에 찌부러져 있는 자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 종현은 종신 판검사 제도가 시행되기 전 자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떠올렸다. 더러운 짓이라고 매도한 그 노력 아래 편하게 살아온 철민이 무엇을 알겠는가. 

종현은 애써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들의 차가운 눈길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분명 철민은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자신들을 떠받들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허허, 꼭 협박처럼 들리는구나. 하지만 공부가 모자란 건 사실이야. 하다못해 2년만 더 투자하려무나.” 

강검사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종현에게 눈짓을 했다.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눈빛. 그 눈빛은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아. 별 수 없군.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야. 자세한 건 강검사에게 맡기기로 하지.” 

이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종현은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단숨에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종현은 자신이 나이를 먹긴 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철민의 희미한 웃음을 옆얼굴로 받으며 종현은 앞을 쳐다보았다. 고가도로의 내리막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있던 종현은 강검사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왔나. 노크라도 하고 들어올 것이지.” 

“했습니다. 아무 말씀도 없으시기에.” 

종현은 대꾸하지 않고 탁자 위를 정리하다 달력을 힐끗 쳐다보았다. 2년이 지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2년 전 그 날의 생각에 잠겨 있었던 듯하다. 

“이건 뭡니까?” 

“아, 그거. 뮤지컬 입장권일세. 마누라가 가족끼리 문화생활 좀 하자면서 난리를 쳐서.” 

종현은 특별한 날에 뮤지컬을 보러 가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뮤지컬을 보는 게 아니라 뮤지컬을 보기 위해 특별한 날이라는 이유를 만들어 붙인다고 할까. 그냥 아무 때나 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못 맞추어 줄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군요.” 

“그래서 작은 선물도 준비했지.” 

다정하십니다, 라고 말하며 강검사가 웃음을 지었다. 종현은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녀석 상태는 어떻지?” 

종현은 2년 동안 한 번도 철민을 보러 간 적이 없었다. 강검사에게 모든 일을 맡긴 후에 잠시 허탈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점차 발걸음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철민이 종현을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물론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잘 지냅니다. 식사도 잘 하고요.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보실 걸요.” 

무슨 군대에 간 것도 아니고. 종현은 강검사가 너무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는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강검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사람도 참. 이왕 왔으니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코를 간질였다. 커피 향기와 봄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운다. 이런 봄날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 연구소에 가자니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관여한 마지막 일이었다. 강검사에게 맡겨둔 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직접 연구소에 가시겠다고요?” 

역시 강검사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대부분 자네가 처리했지만 나도 관여했으니 은퇴 전에 결말은 지어야겠다 싶어서.” 

“아, 사형수 건이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검사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감사의 말을 했다. 물론 예의바르다고 해서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강검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종현은 항상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보셔야겠습니까? 기분만 나빠지실 텐데요.” 

“자네가 날 선배라는 명분 하에 존중은 해 주고 있지만, 도대체 뭘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수가 없어. 은퇴는 내가 확인한 다음이야. 확인한 후에 자네 부탁도 들어주지.” 

“어쩔 수 없군요. 그럼 같이 가시지요.” 

강검사의 말을 듣고 종현은 미지근해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평소 블랙커피를 즐겨 마시는 종현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커피 맛이 더 쓰게 느껴졌다. 




철로 된 격자로 막혀 있어 햇살이 바둑판 모양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따듯함까지 갈라낼 수는 없다. 나는 두꺼운 방석 위에 앉아 격자 틈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종아리가 가렵다. 

독방인지라 다른 수감자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아마 모두 나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을까? 두꺼운 방석을 깔고, 혹은 서서, 모처럼 비쳐드는 햇살을 만끽하고 있겠지. 

종아리가 가렵다. 

오늘 운동 시간에는 봄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봄에는 무슨 꽃이 제일 먼저 피더라? 꽃 이름이 입안에서 맴돈다. 하긴 꽃 이름은 몰라도 상관없다. 

종아리가 가렵다. 

담당 교도관이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투성이들 사이에서 교도관은 빈틈투성이. 

종아리가 가렵다. 

아무래도 또 그게 돋을 모양이다. 벌써 수백 번 겪은 일이니 바로 알 수 있다. 상처가 나면 내 손해이니 긁지 않으려 하지만 너무 가렵다. 

나는 검지를 종아리에 갖다 대고 이빨로 종아리를 긁었다. 금세 빨개진다. 이러다 또 피가 나겠다. 

“이봐, 이투성이. 그만 두지 못해. 이번에 상처가 나면 의무실이고 뭐고 없어!” 

잠에서 깬 교도관이 곤봉으로 철창을 두드리며 주의를 주었다. 내 수감번호는 4번. 그러나 여기서 나는 이투성이로 통한다. 




“인간 귀 모양의 연골 세포를 쥐에게 이식하여 귀를 배양한 실험은 유명하지요. 이렇듯 인간에게 필요한 조직을 체외에서 배양하여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은 이미 실용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에서 떼어낸 조직이라며 거부 반응을 보이는 환자도 적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설명을 들으며 종현은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가죽 시트 위에서 편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깊은 바다 아래로 들어간 듯 엔진 소리 뿐 아니라 바깥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방음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일까, 하여튼 상당히 고급차인 듯 했다. 거기에 운전사까지.   

자동 운전이 일반화된 요즘, 운전사는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있다고 하면 역시 그쪽 계열뿐이다. 

“그러한 환자의 수요, 주로 부유층의 수요를 고려하여 저희는 인간을 직접 사용하여 조직을 배양하는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귀뿐 아니라 안구와 손가락, 치아까지 배양이 가능합니다.” 

“인간을 사용해?” 

“예, 인간의 경우 표면적이 넓어 더 많은 조직을 배양할 수 있지요.” 

“그런 거 불법일 텐데.” 

“물론 불법이죠. 잘 아시면서.” 

강검사가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줄곧 보아오던 표정이었지만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종현은 살짝 진저리를 치며 창밖을 보았다. 낯익은 연수원이 눈에 들어왔다. 

“어? 연수원이 연구소 가는 길에 있었나? 신경을 안 쓰다 보니 몰랐군.” 

“그러고 보니 저도 선배님과 같은 처지입니다. 오늘 은퇴예요.” 

“응?” 

“아들놈이 오늘 연수원에서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내기는 힘들어서요.” 

그런가, 결국 강검사는 그쪽 계열의 일에 몰두하기로 한 모양이다. 아니, 이제 검사는 아니라고 종현은 생각했다. 2년의 시간은 그와 자신에게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과정과 의미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종현은 연수원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봐, 이투성이. 나도 좀 데리고 가.” 

옆방에서 나온 손가락투성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검지에 돋은 치아로 볼을 긁적이며 천천히 손가락투성이에게 다가갔다. 

운동 시간은 하루에 고작 한 시간뿐. 활동적인 손가락투성이는 늘 이 시간을 고대하며 바쁘게 밖으로 나가려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서야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조심스레 손가락투성이의 오른쪽 육손을 잡았다. 

“이야, 늘 그렇지만 거칠거칠하구만.” 

눈에 돋아난 검지, 아니 중지, 아니 검지를 꼬물대며 손가락투성이가 투덜거렸다. 불평해도 할 수 없다. 나도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니까.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여기 갇힌 후 내 몸에는 이가 돋기 시작했다. 이 빠진 자리에서 새 이가 돋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제일 처음 돋은 곳은 손바닥이었다. 마치 모기에 물린 것처럼 가렵더니 얼마 후에 앞니 비슷한 이가 돋아났다. 그 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나 날이 갈수록 내 몸은 이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물론 충격을 받긴 했다. 하지만 교도관이 장난삼아 거울을 보여주었을 때보다 더했을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빠진 머리카락 대신에 수북이 자라난 송곳니와 얼굴 곳곳에 자라난 이런저런 치아들. 머리털이 쭈뼛…… 설 수는 없었지만 소름끼쳤다. 

“이투성이 뭐해. 시간 다 지나가겠어. 빨리 나가자고.” 

다행이도 화단에는 꽃이 피어있었다. 꽃을 감상하며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손가락투성이의 재촉을 받고 나는 서둘러 화단 옆으로 걸어갔다. 햇살로 가득한 조그마한 화단에서는 다른 투성이 둘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귀투성이와 눈투성이였다. 

이들의 모습도 나와 다를 바 없다. 우선 옆에 있는 손가락투성이는 온몸에 손가락이 가득하다. 길이와 굵기가 제각각인 손가락이 온몸에 돋아있다. 

“안녕하세요.” 

귀투성이가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귀투성이의 몇몇 귀에는 고막도 달려 있는 듯하다. 때문에 그는 큰소리를 내면 몹시 괴로워했다. 귀투성이의 담당 교도관은 그 점을 이용해 귀투성이를 괴롭히곤 했다. 

“햇볕을 받으며 꽃도 감상할 수 있다니 좋은데.” 

윗도리를 벗고 화단에 등을 돌리고 있는 눈투성이가 말했다. 눈투성이 역시 몇몇 눈에 시신경이 연결되어 있는지,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을 보며 좋아하곤 했다. 

“너희들은 좋겠군. 난 아무 것도 안 보여서.” 

투덜대는 손가락투성이를 화단 옆에 세우고 나도 그 옆에 섰다. 엉덩이에도 손가락과 이가 돋은 우리는 방석 없이는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방석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서 있기로 했다. 

“그럼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할까.” 

눈투성이가 눈부신 듯 상체의 눈들을 찡그리며 말을 꺼냈다. 

나는 이야기에 참가하지 않고 꽃향기를 맡기로 했다. 이야기라고 해 봐야 대수롭지 않은 자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 오기 전에 자기는 사장이었네, 하루에 돈을 얼마 썼네, 자기 집안은 공무원 집안이라네, 등등. 

정말 그렇다면 왜 이런 곳에 왔을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이기에 그런 것 아닌가. 때문에 이런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 아닌가. 

멀찌감치 서서 재미난 듯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교도관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각이 진 커다란 턱을 우리에게 들이대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다. 

“웃기고 자빠졌네. 사형수들 주제에.” 

귀투성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두 손으로는 모자란 듯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 옆에서 눈투성이가 반박한다. 

“우리는 사형수가 아니야. 죄를 짓지 않았다고.” 

손가락투성이도 뭔가 말하려 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교도관이 실실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만약 수감자 중에 입투성이가 있었다면 뭔가 엄청난 대꾸를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감자는 네 명. 1번부터 4번으로 분류되지만 제각기 이투성이, 손가락투성이, 귀투성이, 눈투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지요.” 

이 말만 들어서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알아버린 종현은 머리가 근질근질하며 소름이 돋았다. 상상력이 부족해 그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없다는 점에 고마움을 느꼈다. 

얼마나 달렸을까,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니, 풍경 자체는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에나 있는 높은 건물. 군데군데 옹색하게 자리 잡은 녹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의 거리였다. 다만 이곳에는 말 그대로 오점(汚點)이 존재했다. 바로 노숙자였다. 

21세기 초, 어느 나라에서나 출생률의 감소는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경향은 특히 한국에서 심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 자체가 노후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지도권에서 대두되기 시작했다. 

결혼과 출산은 국민의 자유이다. 별다른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 해결책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적령기 결혼법이라는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결격 사유가 없는 남녀는 일정 기간 안에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해야 했다.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무지막지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국민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강화되기 시작한 사법권은 말 그대로 법에 의거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교묘하게 국민들을 분열시켜 놓았다. 결국 승리자는 국가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지. 종현은 길가 가로수 옆에 엎드려 있는 노숙자를 보며 생각했다. 

1950년대 베이비 붐 때와 마찬가지로 짧은 기간 안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국가가 마구 찍어냈다는 의미에서 양산형 세대라 불리는 그들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30여년이 지나 그 세대가 취직 전선에 뛰어든 때였다.  

일자리가 너무나 부족했다. 고도 경쟁이라는 말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지옥 같은 경쟁이 펼쳐졌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어졌고 패자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터, 은둔형 외톨이 등의 이름 아래 살아가다 최악의 경우 노숙자라는 낙인을 받았다. 

종현은 승리자였다. 당시 사법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두 시간 이상 잔 기억이 없었다. 

적령기 결혼법은 그 부작용 때문에 결국 폐지되고 말았지만 종현은 그 법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 법의 부산물인 패배자들과 패배자들이 일으킨 각종 범죄 덕분에 사법권이 더욱 강화되어 자신은 평생 검사직을 보장받았으니 말이다. 오늘로서 그것도 끝이긴 하지만. 

강검사의 목소리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종현을 현실 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이투성이는 강간 살인 여섯 건. 손가락투성이와 귀투성이는 강도 살인 각각 다섯 건. 눈투성이는 무차별 살인 열네 건입니다.” 

“그거 오늘 사형이 집행될 사형수 네 명의 죄상 아닌가? 설마 그 녀석들을 실험에 이용한 건가?” 

2년 전 강검사는 사형수 네 명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그렇다, 분명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강검사가 멋쩍은 듯 사회 정의라는 말을 했다. 멋쩍을 만도 하다. 그가 속해 있는 곳은 사회 정의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이니까. 




“자자, 이제 들어갈 시간이다. 꾸물대지 말고 어서 일어서.” 

교도관 네 명 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위협하듯 말했다. 항상 그렇다. 위협하지 않아도 우리는 말을 잘 듣는다. 여기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손가락투성이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대며 나름 반항하기도 했으나 몇 대 얻어맞고 나서 고분고분해졌다. 

여태까지 밝은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어둑한 실내로 들어가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원래 눈이 보이지 않던 손가락투성이는 개의치 않고 코를 벌름벌름대다 옆에 있는 귀투성이에게 물었다. 

“이봐, 귀투성이. 밥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은데.” 

“나한테 대고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둘은 항상 말다툼을 하는 편인지라 이 정도는 싸우는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손가락투성이의 말에는 신경이 쓰였다. 

“정말인데. 밥 짓는 냄새가 안 나.” 

눈투성이도 눈들을 가늘게 뜨고 냄새를 맡고 있다. 

우리가 수감된 곳은 그냥 연구소라고 불리는 곳이다. 우리 네 명과 담당 교도관 네 명. 그리고 흰옷을 입은 연구원 몇 명. 연구원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주로 연구소 한 구석에 위치한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우리에 관해 조사할 때 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 연구실 맞은편에 식당이 있었다. 수감자 네 명과 상주 교도관 네 명의 세 끼 식사, 연구원들의 점심, 저녁을 준비하는 식당이다. 출퇴근하는 요리사가 우리가 운동장에서 들어올 시간이 되면 점심 식사를 준비해 놓는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인 점심시간이건만 오늘 식당에서는 썰렁한 분위기만이 전해져 왔다. 

“오늘 아침만 준비해 놓고 돌아갔거든.” 

무표정한 얼굴의 교도관 하나가 입을 열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요?” 

눈투성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곧 죽을 놈들한테 밥은 필요 없으니까. 네놈들 때문에 우리도 밥을 못 먹게 됐지만 어쩔 수 없지.” 

얼굴에 흉터가 있는 교도관이 곤봉으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주, 죽다니요.” 

귀투성이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하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형집행이다. 집행인은 우리. 피집행인은 너희들.” 

“사, 사형이라니. 우리가 뭘 어쨌다고.” 

“우리는 아무 잘못도 안 했어.” 

손가락투성이와 눈투성이가 앞 다투어 소리를 질렀다. 

“여기 들어올 때부터 결정돼 있었어. 사형수답게 죽음을 맞이하시지.” 

각진 턱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나불거렸다. 

잠자코 있던 나도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우리는 그저 노숙자일 뿐이었는데.” 




“그러니까 사형수들을 투성이들의 교도관으로 썼단 말인가?” 

“예, 아까 말씀드린 투성이들의 전과는 명목상 붙여놓은 것들입니다. 그들은 그냥 노숙자일 뿐이죠.” 

오랜 시간을 달려 자동차는 어느덧 한적한 시골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인 듯 논밭 사이에 드문드문 집들이 있을 뿐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런데 노숙자들을 왜?” 

“아까 말씀드렸다시피……사회 정의와 저희들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늘어만 가는 노숙자들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공공질서에 해를 끼치지요. 내버려 둘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정확히 뭘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군.” 

강검사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연고가 없는 노숙자를 납치하여 연구소에서 실험을 한다. 연구원들이 하루 종일 그들을 관리할 수는 없으니 사형수를 이용, 노숙자들을 관리한다. 인체조직이 적당히 배양되면 노숙자들에게서 조직을 떼어내 구매자들에게 판매한다. 

“그렇다면 굳이 사형수들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강검사가 다시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저희들의 이익 문제가 되는 거죠.” 

“사형수와 노숙자들이 어떻게 C파의 이익이 되는 거지?” 

그랬다. 사실 강검사는 한국 최대의 폭력조직 C파의 일원이었다. 사법부의 힘이 점점 강화되고 있을 무렵, C파는 검찰과 끈을 마련하기 위해 엘리트 조직원에게 사법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그 후 종신 판검사 제도가 시행되어 지금까지 그 자리에 눌러 앉게 된 것이다. 강검사의 뒤를 이어 검사가 된다는 아들 역시 사실은 C파의 젊은 조직원이었다. 

“도박이나 내기 좋아하십니까?” 

강검사가 뜬금없이 물었다. 이야기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고 생각하면서도 종현은 일단 대답을 했다. 

“화투나 포커를 할 줄은 아네만, 돈 걸고 하는 데는 취미 없네.” 

“선배님은 그러시군요. 하지만 도박이나 내기라면 환장을 하고 덤벼드는 사람도 있지요.” 

 
 잠깐 쉬어가자며 강검사가 차를 돌리게 한 곳은 커다랗지만 허름한 창고였다. 

“들어오시죠. 저희가 운영하는 도박장 중 한 곳입니다.” 

불을 켜 캄캄한 실내를 밝히자 종현의 눈에 사각 링이 들어왔다. 

“이건 뭐지? 링이라면 격투기라도 하는 건가?” 

“맞습니다. 여기서 무규칙 격투기를 벌이죠.” 

이곳은 C파의 도박장 중 격투와 관련된 도박을 하는 곳이었다. 무규칙 격투기를 비롯하여 일 대 다수, 혼성 격투 등 다양한 내용의 도박을 벌인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돈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돈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광기와 공포를 맛보고 싶어 합니다.” 

며칠 전에는 링 위에 철창을 씌운 채 맹수와 인간을 싸우게 했다는 말을 듣고 종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검붉은 핏자국이 아직도 링 위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노숙자와 사형수들을 싸우게 하겠다는 건가?” 

“예,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은 들어보셨겠죠. 여기 오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연출되지 않은 생생한 광기와 공포를 원하지요. 여기서 벌어지는 경기가 잔인하긴 해도 링 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단련이 된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에 비해 노숙자들은 완전한 아마추어. 사형수들은 살인에 면역이 된 광인들.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닙니까? 사형수들에게는 노숙자들을 죽이면 감형해 준다고 말해 두었습니다. 아마 미친 듯이 싸울 겁니다.” 


다시 차를 타고 연구소로 향했다. 오전 중에 출발했는데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종현은 강검사의 옆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부리부리한 눈에 꾹 다문 입술. 누가 보든 강직한 검사의 얼굴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미쳤다.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조직 배양 연구를 완성시키기 위한 단계에 불과하지요. 연구에 성공했으니 장기 프로젝트를 짤 생각입니다. 

현재 불경기 때문에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T시 외곽에 노숙자들과 실업자들을 위한 교육장을 만드는 거지요. 전국의 노숙자들과 실업자들을 한 곳에 모으고 관리자들을 모집합니다. 

물론 관리자들은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교육장도 이름만 교육장일 뿐이지 조직 배양 연구소입니다. 현재 이 지역에서 벌여 놓은 사업을 수백 배, 수천 배로 뻥튀기 하는 거죠.     

조직 배양 때문에 괴물이 된 인간들과 흉악범들의 목숨을 건 사투. 이걸 전국 1퍼센트의 상위층 회원들에게 방송하며 도박을 벌이는 겁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은 교육장에서 폭동이 일어나 사망자가 나왔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야죠. 노숙자나 실업자가 죽은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저희는 수수료와 배양된 신체 조직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상류층들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요. 정부는……노숙자와 범죄자라는 골칫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까요?- 

종현은 강검사가 침을 튀겨가며 설명한 내용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정부의 고위 관리층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였다. 요즘 세상에 대중들은 누가 죽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보낼 자극적인 이슈가 필요할 뿐. 국민들의 눈을 돌려놓고 뒤에서 무슨 짓을 하기에 딱 좋은 사건 아니겠는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처형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나 모르겠습니다.” 

종현은 오늘부로 더 이상 이들과 관계할 일이 없다는 점에 감사했다. 




“으아아악.” 

귀투성이가 곤봉에 얻어맞고 뒤로 넘어졌다. 각진 턱이 웃으며 귀투성이의 머리 위로 곤봉을 휘둘렀다.  

퍽퍽, 젖은 빨래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몇 번 꿈틀거리던 귀투성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나는 손가락투성이를 뒤쪽으로 밀며 복도에 있는 의자를 집어 들었다. 왼쪽에 전신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눈투성이가 보였다. 무표정한 교도관과 흉터 교도관이 무방비인 채로 멍하니 있는 눈투성이에게 달려들었다. 

내 쪽으로도 교도관이 다가왔다. 

“나도 이러기는 싫어. 하지만 나도 살아야하지 않겠어.” 

살고 싶으면 살면 되지. 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기는 싫다는 그의 말에 진실성은 담겨 있지 않을 듯 했다. 

나는 의자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교도관은 웃음을 머금은 채 천천히 다가왔다. 

비명과 함께 눈투성이가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두 교도관이 악귀와 같은 모습으로 쓰러진 눈투성이에게 덤벼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내 눈에 연구실 문이 들어왔다. 전에 교도관들이 이야기 하던 중에 요리사와 연구원들은 연구실 안에 있는 출입구를 통해 출퇴근한다는 말이 얼핏 들린 적이 있다. 

저 안에는 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내가 연구실 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 교도관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머리 위로 곤봉을 쳐들고 히죽 웃는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뒤에 있던 손가락투성이를 잡아당겼다. 

빡. 

뭔가 단단한 것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투성이의 머리에서 부러진 손가락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 순간 나는 비어 있는 교도관의 배를 향해 박치기를 했다. 뾰족한 송곳니가 충격을 주었는지 교도관이 외마디 신음소리를 흘렸다. 

나는 그대로 교도관을 기둥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교도관의 배에다 내 머리를 문질렀다. 

“아아아악.” 

옷과 배가 함께 찢어지며 벌건 피가 배어나왔다. 나는 교도관을 떨쳐내고 연구실 쪽으로 달렸다. 다른 교도관들은 자신이 쓰러뜨린 투성이들을 짓이기느라 나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연구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힘을 주어 문을 잡아당겼다. 


10 

“이야, 살아남은 투성이가 하나 있었군요. 대단합니다.” 

연구소 안은 피와 살점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 속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이가 쓰러져 있었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흥분한 교도관들이 종현과 강검사에게도 덤벼들었지만 강검사가 호주머니에서 꺼낸 리모콘 스위치를 누르자 모두 쓰러졌다. 

“사형수들과 투성이의 몸속에 전기 충격을 주는 칩을 심어 놓았거든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짓이겨 놓아서야 팔아먹을 수가 있나. 다시 검토해 봐야겠네요.” 

종현은 매스꺼운 속을 겨우 다스리며 연구실 문에 달린 창문으로 연구실을 들여다보았다. 머리가 피로 물든 투성이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패스워드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외부 출입구 앞에서 우왕좌왕하다 전기 충격으로 쓰러진 모양이다. 

“살아남은 녀석은 어떻게 하지?” 

종현이 묻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검사가 대답했다. 

“배양된 조직과 양호한 장기를 떼어내고 남은 부분은 대학 병원에라도 기증할 생각입니다만.” 

“결론은 죽음밖에 없다는 말이로군.” 

강검사가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눈빛을 보내며 씨익 웃었다. 

종현은 연구소에 온 걸 후회했다. 언제부터 자신이 그들과 일하면서 결과를 확인했단 말인가. 중간에 자리 잡고 시키는 일만 하면서 그들이 전해 주는 돈만 받으면 되었을 것을.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강검사에게 물었다. 

“그래. 이 중에서 뭐가 내 아들이지?” 

도저히 ‘누가’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것들은 후(who)보다 왓(what)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다. 

“그것 보세요. 못 알아보실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2년 전 철민이 검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종현은 잠깐 망설였다. 이대로 물러나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한 것이다. 

망설이긴 했지만 결론은 한 가지였다. 철민이 자신의 과거를 들먹인 이상, 강검사가 아직은 당신이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낸 이상 철민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철민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철민의 제거를 강검사에게 맡긴 후, 강검사가 철민을 어딘가에 있는 연구소에 수용했다는 말을 듣고 종현은 잠시 허탈감과 자기혐오에 빠졌다. 

왜 자신은 허탈감에 빠졌을까. 강검사가 철민을 죽여주길 바란 걸까. 종현은 그런 자신을 혐오하며 1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런 자기혐오감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철민이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강검사가 철민을 수용했다는 연구소는 과연 어떤 곳일까. 결국 종현은 강검사가 연구소에 간다는 말만 듣고는 그곳에 철민이 있다고 생각하여 같이 길을 나선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는 길에 들었지만 자신이 철민을 못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알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여기 철민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직접 물어본 결과 바로 답이 나왔다.  

“여기, 손가락투성이가 철민이입니다.” 

과연 강검사 말 대로였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종현은 절대 철민을 가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온몸에 손가락이 돋아난 흉측한 모습. 마치 지네를 연상케 하는 그 모습이 종현의 죄악감을 덜어주었다. 종현은 여기 죽어 있는 건 노숙자 손가락투성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오늘 형수님 생신 아닙니까. 이러다 늦으시겠습니다. 뒤처리는 제가 할 테니 먼저 가 보시지요. 제 차를 타고 가시면 됩니다.” 

“이거 미안하군. 그럼 실례하지.” 

종현은 안주머니 속에 든 목걸이 케이스를 확인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과연 오늘 뮤지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인가. 아내는 아직도 철민이 연수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줄 안다. 아니, 요 며칠간의 낌새를 보면 뭔가 알아차린 듯도 싶다. 어쨌거나 종현은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연구소에서 나왔다. 


행선지를 알려주자 운전사가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연구소에 올 때 봤던 풍경이 반대편 창문으로 지나간다. 만약 모든 걸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종현은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자신은 2년 전과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명예와 금전. 물욕투성이가 된 종현은 그 두 가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이걸로 은퇴다. 종현은 어깨에 힘을 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녀석들은 신용을 최고로 여기니 돈은 분명히 입금할 것이다. 문제는 아내였다. 

뮤지컬 이야기를 꺼내며 철민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한 아내.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단순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고민하다 종현은 보험을 들어두기로 했다.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강검사의 단축 번호를 누른다. 

“아, 선배님. 뭐 잊어버리고 가셨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은퇴할 때 자네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잖은가. 자네 조직원을 양자로 받아들여 검사직을 잇게 한다는 이야기 말이야.” 

“아, 그거요. 그리 바쁜 이야기는 아닌데. 하여튼 감사합니다.” 

부탁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튼 종현은 입술에 침을 바른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교환 조건이라고 하면 좀 그렇네만 나도 부탁이 있는데 말이지.” 

“말씀하시죠.” 

“노숙자와 실업자를 교육에 참가시킨다고 했지? 칠십대 여성도 가능한가?” 

“물론입니다만, 진심이십니까?” 

“아, 지금 당장 결정할 사항은 아니고 그냥 물어본 거야.” 

“걱정 마십시오. 선배님 부탁이라면 들어드려야죠.” 

종현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전화를 끊었다. 자신은 아직 젊다. 예전에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인생은 몇 살부터일까. 

어느덧 차가 고가도로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종현은 시트에 몸을 묻으며 편안한 자세로 오르막길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재미로 쓴 소설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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