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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핥기 로마사(12)- 팍스 로마나
게시물ID : history_43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진
추천 : 3
조회수 : 179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5/12 17:13:51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 로마군의 상징도 독수리였고, 미국의 상징 역시 독수리이다. 두 제국은 평행이론을 떠올릴만큼 닮은 구석이 많다. 로마와 미국이 달성한 평화는 여전히 어두운 이면이 많지만,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1. 팍스 로마나 팍스 로마나는 야만족의 침략위협이나 국가 간 분쟁을 막아주는 로마제국에 의한 평화를 의미한다. 물론 수많은 반란이 있어왔고 그로 인해 피 흘리는 대가를 치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국경에서는 이제껏 결코 없었던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팍스 로마나는 장기적으로는 속주가 로마문명에 동화되어가는 결과를 낳았다. 2. 로마제국의 구조 로마제국의 영토는 너무나 넓어서 그리스인들은 겪어보지 못했고, 페르시아인들은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이를 위해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관료제도가 등장했다. 속주의 관리들은 대부분 군인들로서 실무행정에 대해서는 무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주행정을 도맡아야만 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는 세입이 확보된 이상 이를 집행하는 것에 있어서는 지역관례를 존중하는 접근방법을 취했다. 이런 측면에서 로마문명은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속주가 로마문명을 따르고자 하면 전통관례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역의 특색을 보존하는 정책을 취했다. 속주 유력자들을 로마시민권을 미끼로 충성심을 끌어내는 방책을 썼고, 속주의 유력자들이 로마시와 원로원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ad212년에는 제국 내 모든 자유인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로마는 제국의 구석구석까지 닿는 도로를 건설했다. 짤방과 같은 도로는 bc3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로마제국 전역에 지어졌다. 워낙 잘 지어놓은 도로라서 중세시대까지도 이용되었다. 3. 코스모폴리타니즘 이는 '세계주의'로 번역되는데, 일정 정도 스토아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로마제국이 전파한 문화는 명실공히 세계주의적인 것이다. 로마제국은 매우 다양한 계층에서 행정관료를 선발했고, 속주의 행정은 속주의 엘리트들에게 맡기면서 그들을 서서히 로마문화에 동화시켰다. 다만, 유대인들만은 로마사를 통틀어서 지속적으로 차별대우를 받았다. 4. 로마의 문사철 로마의 정신적인 요소는 분명히 그리스의 것을 차용한 것이다. 교육받은 로마인들은 그리스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이는 그리스 문명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라틴어는 공식언어로서 군사용어로 제국 전체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스어는 동 지중해에서 라틴어와 함께 공식공용어였는데, 신약성서가 그리스어로 쓰인 것도 이러한 배경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 로마작가들은 그리스 고전과 같은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고, 실제로 수많은 모방작품이 있었다. 유명 시인 베르길리우스 때에는 독자적으로 뛰어난 수준에 도달했다. 철학은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이 널리 유행했고 신플라톤주의도 2세기 이후 유행했다. 다만 철학계 일부에서는 스토아 철학 자체가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5. 법과 토목공학, 도시계획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른 문명의 혜택을 입은 것과는 달리, 토목과 법학 분야에서 로마는 고유의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다만 판례를 수집하여 오늘날 우리가 '로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형성된 것은 2~3세기의 일이고 유스티니아누스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일로서, 아직은 좀 더 미래의 일이다. 토목 분야의 업적은 매우 인상적이다. 로마인들은 토목과 건축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고 대규모 석조건축을 여럿 남겼다. 이러한 업적은 값싼 노동력이 제공된 덕이 크다. 노예와 군인들이 댐, 다리, 도로 등 대규모 토목공사에 늘 동원되었다. 로마의 화려한 건축물은 브리타니아에서부터 아프리카 아틀라스 산맥 전역에 걸쳐 있지만, 로마시에 가장 많다. 로마의 화려한 대규모 유적들은 로마가 얼마나 부강했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대리석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다채로운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로마의 기념물에는 확실히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도 있다. 2원적 세계관을 가지고 물질을 저급한 것으로 여긴 일부 헬레니즘 철학과는 달리 물질을 열망하는 로마 문명의 성격이 건축물에 배어 있다. 로마의 토건물들을 구경하면서 이번 화를 마치기로 하자. 판테온 신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서기 125년경에 재건되었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판테온 신전의 내부. 로마의 전경. 아직까지 남아 있는 기둥들이 지난 날의 위용을 말해주는 것같다. 포로 로마노이다. 왼쪽의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인데, 19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고증 없이 여기저기의 부조를 베껴다 복붙해놓은 것이다. 스페인 알칸타라의 타구스 강 다리는 ad 1세기에 지어져 아직까지도 건재하다. 이 다리에는 "이 다리는 영원할 것이다"라는 비문이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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