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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박정희 빠느라 난리가 났다 쓰레기들아.
게시물ID : humorbest_4378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고라장판파
추천 : 64
조회수 : 3923회
댓글수 : 1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2/06 20:25: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2/06 19:25:04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시켰다는 그들의 위대함에 씨발 김일성 찬양하는 북한애들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드는 근거라고는 
"교수들의 평가가 이렇다" 라는 찌라시 평가. 다만 문제는 거기에 대해서 "어떤교수"인지 아에 언급조차 없다.
흔히 말하는 개독논리 반박에서 베리타스는 이러한 것을 두고
"권위에의 증거부여"라며 까는건데. 각설하고 나는 그런 병신같은 찌라시 류 근거는 안대겠다.
저번에 어떤병신이 병신짓 하는게 짜증나 말섞어 줬더니 정신승리하고 자빠졌던데 니들개구라 하나하나 깐다.

니들의 개소리

1.니들의 개소리 첫빠 장면정부는 내수구요! 박정희 정부는 수출이거든요! 아에 개념자체가 틀려요!
->개소리이며 개구라이며 개지랄이다.
본디 경제개발 정책은 이승만의 3개년 계획부터 시작되어 장면정부가 수립한 계획이다.그럼 어디한번봐보자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모든 사회경제적인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민간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자유기업의 원칙을 토대로 하되, 기간부문과 그 밖의 중요부문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간여하거나 또는 간접적으로 유도정책을 쓰는 ‘지도받는 자본주의체제’를 견지하는 것이다. 셋째, 정부가 직접적인 정책수단을 보유하는 공공부문에 그 중심에 두고 민간부문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민간부문의 자발적인 활동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 계획에서 시책의 중점으로 여섯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첫째, 전력, 석탄 등 에너지공급을 확보한다. 둘째, 농업생산력의 증대에 의한 농가소득 상승과 국민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시정한다. 셋째,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족한다. 넷째, 유휴자원을 활용하고, 특히 고용을 증가시키고 국토를 보전하고 개발한다. 다섯째, 수출증대를 주축으로 하여 국제수지를 개선시킨다. 여섯째, 기술을 진흥시킨다."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6112

라고 국가기록원 링크가 있으니 찾아서 들어가라.

2.니들의 개소리 이빠. 고속도로 마사오상임! 감자심자는 감자왕과 비교마삼!
->이 또한 개소리이며 개구라이며 개지랄이다.

"한번 알아보자. 맨위 경부고속도로 할시간에 보리나 사자하는 타이틀의 사진을 봐보자 아...아름답다 수꼴개새들의 구라를 까버리는 저 아름다운 글귀를 봐라. 이만 줄인다.

3,고속도로 깔아서 경제성장 했음 ^^ 마사오짱!~

-여기부터는 2번과 연계해서 보면 좋다 수꼴들은 수꼴수꼴하고 울어라-
한마디로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반대 자체가 없었다. 95% 이상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찬성했다. 고속도로건설은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박정희 후보의 주요공약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된 직후 월간 <세대>(1968.1)에 각계인사 100명에게 찬반여부를 물은 결과, 무조건 찬성 68%,
조건부 찬성 27%, 반대 5%였다.

 
유보적인 32명(조건부 찬성 27명+반대 5명)의 의견은 무리한 재정지출에 대한
우려 12명, 우선순위상 시급하지 않다 8명, 제외된 지방의 발전지체 4명, 기타 8명의
분포였다. 당시 국민의 뜻은 존재하지 못했다. 군부 독재시절인데다 여론조사 자체가
없었다. ‘고속도로’는 당시 국민들에게 낯설고 생소했다.
1967년 5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정희·윤보선의 대전 합동유세에서 박후보가 내건
공약사업은 ① 서울∼인천, ② 서울∼동해안, ③ 서울∼목포, ④ 서울∼부산에 폭 50m 이상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1968년부터 호남선 철도의 복선공사를 착수하겠다는
것이었다.

 
62~68년 경제성장율 8.3%, 물동량증가는 13.5%로 매년 10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경부고속도로 정부안이 1967.11.7. 국회건설위원회로 넘어오자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다. 첫째, 시기상조이고,
둘째, 재정에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였다. 야당은 다음의 5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1) 서울-부산에는 복선철도가 있는데, 중복투자로 수도권과 영남권 등 일부지역에
편향적 발전과 특혜를 부여한다는 지역편중의 우려였다.
 
(2) 고속도로에 대한 예산편중이다. 수송수요가 늘어 도로의 건설은 필요하지만,
왜 일반도로를 증설하지 않고 고속도로에 예산을 집중하느냐의 지적이었다.
(도로건설예산 131억원에 고속도로 70%, 일반도로 30%의 배분).
 
(3) 1965.11∼1966.6까지 한국의 교통상황을 조사한 IBRD(세계개발은행)의 보고서는
철도중심의 수송체계를 도로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유료고속도로의 건설보다는 국도·지방도의 포장에 치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권고에 근거하여 야당이 우선순위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IBRD는 남북종단보다는 동서횡단도로를 권고했다. IBRD는 ① 서울-강릉,
② 포항-부산-순천-여수-광주, ③ 삼척-속초, ④ 대전-목포 등 4개 노선의 건설이
더 시급하다는 견해였다.
 
(4) 관리감독기관장의 직급이 1급 2급으로 위계질서에 어긋난다는 하찮은 문제였고,
 
(5) 법적 절차의 문제였다.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예산심의도 없었고 설계도
끝나기 전에 서울-오산 구간을 착공했다는 것이다(이 공사는 설계와 공사를 병행했다).

 
이러한 야당의 지적이 틀린 것인가? 이것이 '반대를 위한 반대'인가?
일반국민의 반대는 없었다. 당시 언론은 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고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울·부산의 대자본의 중소도시 침투로
인한 토착자본의 쇠퇴, 농어촌의 지나친 도시화, 지역간 불균형 성장 등에 대한
우려였다.
 
이러한 야당과 언론의 문제점 제기가 반대의 전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야당의 반론을 제외하곤 신문에 나타난 국민의 반대여론은 없었다.
1967년 국가총예산이 1,643억원이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비는 331억원이었다.
처음 예산편성시에는 IBRD 차관으로 27%를 충당하려 했으나 권고사항과 맞지 않아
거절당했다.
 
청계천 공사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찬성 75%, 반대 15%, 모르겠다 15%였다.
물론 청계천변 상인들은 강하게 반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권력자는 마치 국민 대부분이 반대했던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국민을 계속 속이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덮어씌우려는 비열한 속임수이다.
간교한 권력자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순진무구한 국민들이 안타깝고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2010.4.5.
 
임석민
 
한신대학교 경상대학""

즉 축약하자면

"경부고속도로로 얻는 이익은 없다. 그외 국간 고속도로를 건설하자"쯤이 되며

+

경부고속도로가 물류 이동통로로서 재역활을 한시기는 노태우 정권 말기부터 이다

+

고속도로로 경제성장했다고 우기는 국가는 한국 뿐이다. 세상 어느나라에서 고속도로 깔았다고 경제성장이되겠는가?

3.니들의 개소리 세번째. 어쨋던 경제성장 하신위대하신 마사오쨩~ ^^
->아 이쯤되면 이개새들 개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럼 통계자료로 까보자. 국가기록원 통계조차 부정한다면 난 너희 띱때들에게 전해줄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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