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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스 마스터 친구 B의 이야기 2
게시물ID : humorstory_4378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꼬망꼬망
추천 : 2
조회수 : 4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18 15: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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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지방 출신의 많은 서울권 대학 학생들이 그렇듯 B도 자취를 했다. 

옥탑방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그래도 옥상에 위치한 방이기는 했다. 

때문에 옥탑방의 로망에 취해 놀러갔다가 어정쩡한 분위기에 실망한 채로 헤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절대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언제나 실망하면서도 B의 자취방에 놀러가곤 했다. 

비단 옥탑방의 로망 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일 가깝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 방에 비해 가장 컸던 탓도 있었다. 

또 B는 침대를 쓰지 않아 실면적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들은 뻔질나게 찾아가 퍼질러댔다. 

그럴 때마다 B는 욕쟁이 할머니에 빙의하여 손님들에게 욕 한 사발을 쏟아냈지만 

냉장고에서 차가운 술 한 병 꺼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는 또 가게 주인을 찾으며 

 

"등줄기에서 땀이 폭포수처럼 흐르니 에어컨을 틀라." 

 

"삼국 시대 새참도 이보단 풍성하겠다. 안주 좀." 

 

"내 이미 발길로 값을 치렀으니 이건 서비스로 주오." 

 

라며 바람직한 손님의 상을 보여주었다. 

그랬던 우리가 B의 자취방으로의 발길을 끊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때는 불금이었다. 

그 강렬한 화력에 연애운도 다 불타버렸는지 따로 할 게 없던 우리는 

틈만 나면 모여서 노는 게 일이었다. 

그 날도 B의 자취방에 모여서 불타는 속을 알콜로 끄고 있었다. 아, 더 태우는 건가? 

 

여하간 모두들 연료를 소진하고 나서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도 술이 강한 편은 아니었기에 초반에 전사했다. 

다행히 숙취는 별론 없는 편이어서 숙면을 취하고 기분 좋게 눈을 떴는데 

바로 앞에 그게 있었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싶었지만, 

옆으로 누워 있다가 눈만 뜬 나는 그것과 정면으로 조우했다. 

그것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까만 눈동자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과 나는 한동안 서로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의 움찔거림에 그것은 방 한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일어나 앉아 방금 있었던 상황을 정리해보려 했다. 

내가 본 게 진실인지, 혹시 그 유명한 몽중몽은 아닌지, 술이 덜 깬 건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바퀴벌레. 

 

난 경련을 일으키며 친구들을 깨웠다. 

그리고 이 곳에 불순하고 불결한 존재가 있으니 빨리 박멸해야 한다, 

안 그러면 소중한 우리의 아지트를 좀먹을 것이다라 역설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B가 머리에 얹은 까치집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거 나 오기 전부터 있었는디?" 

 

파리 한 마리에도 질겁하던 본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리 태평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개였다. 

B가 바퀴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거나 

반대로 바퀴가 B의 정신을 조종하거나. 

어찌 됐건 둘 다 소름끼치는 건 변함이 없었고, 

그 날 이후로 우리는 B의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2. 

B가 바퀴벌레를 퇴치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벌레라면 질색팔색하는 녀석이었기에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B는 바퀴벌레에 특효약이라는 제품이 있으면 가격을 불문하고 사 모았고, 

직육면체의 방의 여덟 꼭지점마다 바퀴벌레 약을 붙였다. 

한 번은 뿌리는 바퀴벌레 약을 하루에 다 쓰고선 냄새가 너무 역하다면 내 방에서 자고 간 적도 있다. 

또 어디서 어떤 음식을 바퀴벌레가 싫어한다고 주워들으면 

그 음식이 썩어 문들어져 새로운 생명체를 품을 때까지 방치하기도 했다. 

바퀴를 잡겠다고 쥐 잡는 끈끈이를 바닥에 뿌렸다가 자기가 밟고 스스로 쥐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B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였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차라리 편하게 세X코를 부르는 게 낫지 않냐고 물었지만 

B는 이건 비스트 마스터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며 절대로 남의 힘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B는 자신의 별명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았고 

또 그 만큼 또라이였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는 B에게 아직도 바퀴와 전쟁 중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휴전 중이라는 것이다. 

B도 이제 지칠대로 지쳤고, 통장 잔고도 간당간당하고 하니 딱히 다른 어떤 걸 시도하진 않는다고 했다. 

또 녀석들이 똑똑하긴 한 건지 가까이 다가오진 않고 멀찍이서만 기웃거리니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런 모습을 오래 보고 있자니 나름 귀엽기도 하고 정도 든 것 같다고 했다. 

드디어 녀석이 벅스 마스터에서 마스터를 떼 버리고 벅스가 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난 경멸에 찬 시선으로 B에게 한 가지 정보를 건넸다. 

 

"개미와 바퀴가 서로 그렇게 천적이라더라. 개미 있는 집엔 바퀴가 없고, 바퀴 있는 집엔 개미가 없다고 하네." 

 

그러자 갑자기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이제이라고 옛날 로마 병사들도 쓰던 건데!" 

 

"아니, 이이제이는 손자병법, 로마 병사는 방패 전술이겠지." 

 

나는 이 때 직감했다. 

B의 상식 수준을 봐선, 계획은 실패할 거라는 걸. 

그러나 B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B는 나의 조언 이후로 백방으로 개미를 구하러 다녔다. 

개미는 그나마 흔하고 날지도 않고 느리고 작아서 면역이 좀 있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야생의 개미는 붙잡아두기 어렵고 한 두 마리론 씨알도 안 먹힐 터였다. 

그래서 B는 개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집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물었다고 한다. 

 

"저, 댁네 개미 좀 얻어 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개미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몇 마리를 얻어 와도 며칠만 지나면 다들 제 집을 찾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이이제이가 실패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B의 강렬한 눈빛과 처절한 몸짓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좀 더 방관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B는 같은 건물 사람으로부터 개미를 구해왔다. 

같은 건물이니 길이 있다면 안 도망치고 계속 올 것 같다고 확신에 차 말하는 녀석이었다. 

불쌍한 것. 

 

얼마 후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개미가 그의 방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바퀴도 원래 자기 영역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반만. 


방을 반으로 갈라 한 쪽은 개미가, 나머지 한 쪽은 바퀴가 차지했다.  

B는 벅스 마스터라는 칭호에 걸맞게 

개미와 바퀴 사이를 중재하여 자신 방에 공존케 만들어버린 것이다. 

역시 마성의 벅스 마스터 B. 

 

아무래도 우리는 평생 B의 자취방에 다시 갈 일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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