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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오늘 죽었다.
게시물ID : sisa_3459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막타님
추천 : 5/2
조회수 : 29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1/10 05:58:18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나의 조국은
2013년 1월 10일 오전 3시 19분 부로
그 힘없이 축 쳐진 육신을 부둥켜안고 가만히 앉은 나에게
스스로의 죽음을 통보하고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이름을 내 손으로 산에 묻으며 통곡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잘 가라. 내 어머니 나라여. 

유아기가 지나면서 국가라는 개념에 대해 자각할 때 즈음
처음 마주친 우리나라는 정말로 위대해 보였다.
경제가 어렵던 시절 국민의 황폐한 마음속에 희망을 싹트게 했다던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해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통일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자랑스러워 하십시오" 등의 자주 볼 수 있던 멘트들은

어린 나에게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 중에서 한국 사람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등만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라는 환상에 젖게하는 경험을 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배우기도 했다.

우리 가족과 내가 그 수많은 구성원들 중 하나라는 사실은
당시엔 영원할 것 같았던 미래와 현재에 뭔가 특정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흥분감을 부여해 주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애국가를 부르고 국민의례를 할 때마다
그 묘한 흥분감이 증폭되는 바람에 곤혹을 치르곤 한다.

애국가의 전주가 시작될 때부터 역동적으로 
이 땅에 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 식물들. 불의에 끝없이 저항하는 역사와
그 옛날부터 이어져온 소중한 문화들. 그리고 경이로워 하는 타국인의 모습
결집력. 아픔에 대한 나눔의식과 더불어 특유의 인정 넘치는 사회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루어온 업적들이 빠르게. 그러나 강하게
머릿속을 지나치면서 노래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오는것을 눈치 챌 때엔
이미 눈가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는 철저한 애국주의자다. 그리고 그 극단적인 사상이
사춘기와 맞물려 때로 국수주의적인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원히 대한민국은 그 가장 위대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처음으로 아파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본 건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09년 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처음 인터넷을 하다가 속보를 접했을 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정말 아무런 기분도.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 나쁜 사람인지.
나쁜 사람도 대통령을 할 수 있는지.
나쁜 사람이라면 도망치거나 돈을 주고 풀려날텐데 왜
스스로 죽어버렸을지 궁금하기만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멍한 표정이었다 분한 표정이었다 힘겨워하는
전에 본적없는 아빠의 얼굴로 인해 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의 
기억이 났는데,

당시 단지 후보의 선거 포스터 뒷 배경에
태극기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회창을 지지했던 9살의 나는
자야 하는 시간을 훨씬 넘겨 아빠와 개표 방송을 봤고,
생애 처음으로 아이처럼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보고 패배의 분함을 뒤로한 채 
"왜 아빠는 월드컵에서 골 넣었을 때보다 지금 더 좋아해요?"
물어보면서 그 권위에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난생 처음 보는 아빠의 어린아이같은 모습.
그리고 그 이유였던 그 사람이 죽었다.

이 생각이 든 이후로 이 상황은 나에게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줄 알았었는데.
나쁜 사람이 죽었는데 정의로웠던 우리 아빠가 왜 슬퍼하지?
왜 모두가 침울할까. 왜 학교 선생님 몇 분이 출근하지 않으셨을까.
거리에서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울까. 

가족들과 찾아간 민주당사 영정 앞은 꽃으로 수북히 덮여 있었고
tv화면은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눈물과 함께.

한번도 본 적 없는 대한민국이 아파서 우는 모습.

그리고 그분이 몸을 던지기 전날이 내가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갈
내 마음속 위대한 조국의 건강했던 마지막 날이었다.

그 이후 확연하게 달라진 시각으로 현상에 관심을 가질 때마다,

학습만화를 보면서 패망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도망치는 장면이 나올 때에
통쾌해했던 추억들은, 친일세력이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실권을 잡아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유지되어 오고 있다는 암울한 이야기로 대체되었다.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줄 알았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끝내 한명도 그 최후가 명예롭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배운 사람들은 불행한 이들을 돕는 법만 배우지 못했고,
가장 인간에게 기초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여가며 쾌락을 추구했다.

내가 사랑한 나라는 온갖 병폐와 비리 부정 죽음들을 숨겨왔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 하지만 하나도 고맙지 않다.

새로 생겨나는 상처들과
전부터 곪아 썩어 문드러진 구석구석을 바라보면서
그저 다가올 최후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슬퍼하고 있을때,
한 사람이 내가 그 병 한번 고쳐 보겠다며 나타났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눈물로, 진심으로 그에게 힘을 주기를 호소했다.
나에겐 투표권조차 없지만
학교 선배,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친구의 가족들..
부탁했다.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다친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 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했다. 만약 급히 수술에 들어갔어도 이 나라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용감한 그 사람이 모두 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내 마음속의 병들고 썩은, 하지만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나의 나라는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언론 장악과 친일의 잔재 속에서
그저 그럴 예정이었다는 듯 죽어버렸다.

보이지 않고 감촉이 없어도 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아무이유 없이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미련하고 비겁한 생각이지만,
난 아직 이 나라의 최후가 믿기지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기다리면..
다시 어린 날에 느꼈던 행복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용감하게 자신을 치유하겠다며 나섰던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나의 곁으로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월 10일. 
20세 임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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