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군의 기묘한블로그에 포스팅된 글입니다.
류재준 난파음악상 수상거부, 친일행위에 둔감한 음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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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고, 서울대 작곡과와 폴란드의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한 작곡가 류재준은 서울국제음악제와 카잘스페스티벌인코리아의 예술감독, 앙상블 오푸스의 예술감독,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작곡가로 활동 중이며, 2007년부터 낙소스와 계약을 맺어 그의 작품이 출반되고 있습니다. 현대음악의 거장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할 만큼 음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죠.
작곡가 류재준씨가 밝힌 가장 큰 수상거부 이유는 '홍난파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음악인의 이름으로 상을 받고 싶지 않고, 이전 수상자 중 일부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있어서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류재준씨. 그는 이에 덧붙여 "음악 선배로서 홍난파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친일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행적 자체를 부인하는 듯한 음악상의 요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수상 거부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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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 나던 날, 저의 아빠는 종로경찰서에 갇히셔서 옥고를 치르고 계셨습니다. 이름을 지어줄 아빠가 안 계신 저는 姙 (임) 자돌림에다 丁축년에 태어났다고 丁 (정) 자를 붙여서 丁姙(정임)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옥을 드나드시면서 아버지께 흰 옷을 넣어드리는 어머니는 번번이 피투성이 되어 나오는 아버지의 옷을 받아들면서 이렇게 애청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은 몸이 약하신데 제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면 안 되느냐고." 일본 경찰은 조롱된 어조로 "당신도 콩밥이 먹고 싶어?" 하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감옥살이에 시달리신 저의 아버지는 '늑막염' 이라는 무서운 병을 재발 시키면서 72일 만에 석방이 되셨습니다. 석방을 시킨다는 조건부로 "일본에 협조한다는 글과 곡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압력의 쇠사슬에 묶이신 나의 아버지는 최후의 3년을 (석방이후) 병마에 시달리면서 강제에 못 이겨 한 두 차례 일본에 협조하는 글을 쓰셔야만 했습니다.
전 예술과 예술가는 분리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대와 예술은 분명 연동관계에 있습니다. 홍난파의 수 많은 작품들이 우리나라 음악계에 길이 남을지라도, 홍난파가 친일행위를 헀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홍난파를 기리는 난파음악상. 홍난파의 반민족행위를 '정치를 떠나 음악 그 자체', '정지 쟁점화' 등 정치적 행위로만 국한시키는 역사적 인식을 지닌 이들이 우리나라 음악계를 지탱하고 있다뇨.
그동안 난파음악상을 수상한 음악인들에게 비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이 상을 수상했을 당시 홍난파의 친일 전력에 대해 알려진 바도 없었죠. 하지만 그러한 친일 전력을 인지한 뒤 수상을 거부한 류재준씨에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 덕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음악학도로서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교학사 교과서 논란과 같은 역사 왜곡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러한 시점에서 난파 홍영후의 변절 행위를 '정치적 행위'라는 수식어로 국한시키는 일부 음악계 인사들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민족이 가장 커다란 아픔을 겪던 시대를 살아가던 한 예술가. 민족의 아픔을 노래했지만, 오히려 그랬던 그가 변절했습니다. 자신의 동료들의 목숨이 꺼져가는 촛불과 같았던 순간. 어떠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그 행위가 덮어질 수 없습니다. 이유를 붙이며 덮으려 했기에 대한민국에 친일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잡초처럼 살아남아 되려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뒤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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