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9월호에 박근혜의 수필 4편이 실리고
서강대 명예교수인 이태동의 찬양까지.. 논란과 함께
문단을 황당케 만든 이슈를 아래 경향의 기사로
재조명 해보자구요.
지난 8월7일 ‘인문정신문화계’(?)에서 존경받아온 학자·지식인들의 청와대 오찬과 그 자리에서 나왔다는 ‘영원의 여인’ 발언은 후학과 후배들에게 상당히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사태의 전말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런 언행은 기본적으로 문학과 인문학의 본연을 위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보다 훨씬 더 진하고 상징적인 일이 문예지의 지면에서 벌어졌다.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예지인 ‘현대문학’ 9월호는 영문학자 이태동의 권고를 받아 한국문인협회 소속 ‘문인 박근혜’의 수필 4편을 게재했다. 신작이 아니라 15년 전에 단행본으로 발표된 책에 이미 실린 글이라니, 대단한 특전이며 일종의 반칙이라 볼 수도 있다.
이를 변명하기 위해 ‘현대문학’ 측은 편집후기를 통해 “절제된 언어로 사유하는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인 한 개인을 넘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라고 썼다. 이 원고의 게재를 주선하고 비평문을 쓴 이태동 왈, 대통령의 수필이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며 “부조리한 삶의 현실과 죽음에 관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의 코드를 탐색해서 읽어내는 인문학적인 지적 작업에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성이 있는 울림으로 다가”온단다. 그래서 만약 “문단과 독자들이 그의 수필을 멀리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언행들 앞에서 대학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눈앞이 막막해진다.
■ 지식인과 문인의 흑역사, 현대문학·문인협회
혹 한국문인협회 소속 수필가 박근혜의 글이 정말 뛰어난 문학성을 갖고 있다 해도, 그리하여 ‘세계 수필계’(?)의 거두(?) 몽테뉴와 베이컨의 전통을 잇고 있다 해도, 진정한 학자거나 평론가라면 저런 ‘빨대성’ 단어들을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학부 수업 시간에 어느 학생이 저런 평문을 제출했다면 그는 C학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작품을 과대해석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비평이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객관성이나 비판정신을 내버리고 과장되고 상투적인 찬사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 청와대 오찬의 아양이나 ‘현대문학’이 한 일은 기실, 한국문학사의 한 전통에 닿는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문학사가 그 무엇에도 자유로운 개인의 꿈과 내면성을 추구한 자유주의적 전통이나 ‘민족’과 ‘민중’ 따위의 코드로만 점철된 것처럼 ‘오해들하고 그러는데’, 그것은 일면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기실 현대 한국문학사의 한 축은 처음부터 제국주의와 권력에 대한 협력과 애틋한 흠모로 꽉 차 있었다. 계속 그랬다. 한국 현대문학의 비조격인 이광수·최남선은 물론, 가장 존경받는 국민 시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정주나 대표적인 소설가·평론가로 꼽히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김동리·조연현 등 셀 수 없는 예가 있다. ‘현대문학’은 전쟁 직후 조연현이 창간·운영하며 문단 주류의 기관지 노릇을 했고, 한국문인협회는 가장 크고 주류적인 문단의 가장 큰 권력기구이자 ‘직능’단체였다. 이를테면 문인협회는 전두환이 학살을 통해 국가권력을 탈취했을 때도 태평가를 부르고 찬양성명서를 제출했다. 지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을 공개 지지했다. 따라서 ‘현대문학’과 문인협회는 이 나라 지식인·문인의 ‘흑역사’며 반지성사의 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제자·동료 문인과 기자들이 감옥에 잡혀가 고문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던 유신 때도 한국문인협회는 꿋꿋이 ‘협력’했다. 흔히 저항과 민족·민중문학의 견지에서 유신시대 지식인과 문인의 상황을 조명한다. 그 저항은 분명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언론자유와 지식인의 사회적 소명에 대한 한국적 전통을 형성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는 더 많고 큰 ‘협력’과 곡학아세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협력’과 ‘저항’은 때로 뒤엉키기도 했다. 그 현장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국 지식사회와 문학판이 어떤 기원과 약점을 내장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의미가 있다.
■ 문학사상 가장 권력지향적이었던 조연현·서정주
분단과 전쟁 때문에 식민지시대를 대표하던 중견 문인들은 물론 웬만한 진보적인 문인·지식인들이 거개 월북하거나 죽자 문단은 젊은 우파들의 차지가 되었다. 해방 당시 조연현은 불과 26세, 김동리는 32세, 서정주는 30세였다. 흥미로운 것은 문단의 좌우 대립이 분단의 고착으로 종식되자마자 남한에 남은 문인들끼리의 내용 없고도 새로운 사생결단 분란이 시작되고, 주류 문인이 권력에 밀착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한국 문인 일부의 체질처럼, 또는 주류 문단의 일상처럼 되었다.
문인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권력지향적이었던 조연현이나 타고난 모국어 구사력을 권력을 향한 광대짓에 사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던 서정주 같은 이들이 그 대열에 있었다. 그들은 한 치의 오차와 일탈 없이 ‘친일-친이승만-친박정희-친전두환’의 한길을 올곧게 걸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단 내에서 파벌을 만들고 정치꾼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행태로써 문단권력을 사냥하는 데 집착했다. 그 대상은 문인협회, 한국펜클럽, 소설가협회, 시인협회들이었다. 김동리 조경희 박종화 등도 이런 판에 끼어 있었다. 이들 단체가 가졌던 이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협회장 선거에서는 거의 언제나 정치판보다 더 심한 이전투구가 벌어졌다. 점잖고 꼿꼿해서 세속의 일에 무관심했다던 김광섭, 황순원 같은 작가나 이름 없는 젊은 작가들과 지역 문인들도 이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신 때 이런 행태가 극에 달했다는 점이 교훈적이다. 1973년 1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에서는 문협 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김동리 대 조연현의 이 싸움은 비루한 비방 모략전과 후배 문인 줄세우기를 야기한 돈선거이기도 했다. 결과는 321 대 312로 김동리의 신승, 하지만 과반수 미달. 선거는 두 달 뒤로 연기됐고 1차전의 패자 조연현은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다. 서정주 황순원 등 영향력 있는 이들을 끌어들여 지지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다른 분과장 선거를 적절히 이용하고 거래하여 부동표를 흡수했다. 조연현의 최종 승리.
1975년 1월 또다시 열린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는 더 가관이었다. 이때는 젊고 진보적인 소설가 이호철이 출마하여 썩은 기성의 문단권력에 도전했다. 이사장 조연현 측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금품 살포와 비방은 물론 기본수단이었고, 지방 문인들을 단체로 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의 고급 호텔에 묵게 하고 푸짐한 향응을 제공했다. 그리고 급기야 ‘문학’을 거래하였다. 몇몇 젊은 문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조연현 지지를 대가로 작품을 ‘현대문학’ 등에 게재해 줄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폭로되었지만, 당선은 당당 또 조연현.
왜 주류 문인들은 이다지 심하게 타락했을까? 이런 분열과 병통의 뿌리에는 어떤 정치적 무의식과 ‘지성’이 있었을까? 가깝게는 1972년 유신 이래 이어진 지식계와 문단 상황이 있다. 유신이 발표되자 아주 당연하다는 듯 문인협회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박정희 총통체제의 꼭두각시 대의기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문인 몫으로 박종화 장덕조 전숙희 등이 진출했다. 그러나 한쪽에서 양심적인 지식인과 문학인들의 유신반대운동이 서서히 타오르고 1974~1975년 정점에 올랐다. 바로 그때 한국의 글쟁이들과 먹물들이 겪었던 고난은 분명 지성사 전체에서 특기되어도 좋을 한 페이지라고 본다. 박정희는 1974년이 되자마자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재야인사들과 조작된 ‘문인간첩단’의 소설가와 평론가들을 감옥에 가뒀다. 동아일보 사람들 180여명이 직장을 뺏겼고 와중에 장준하·김상진 그리고 인혁당 사람들이 목숨까지 잃었다.
■ 저항, 새로운 지성과 문학의 미래를 낳다
그러나 저항은 문단에서도 타올라 1974년 11월에 드디어 자유실천문인협회가 결성되었다. 그 세는 아직 작았지만, 이 새로운 단체는 광기어린 권력과 기성 문학판에 반감을 가진 젊은 지식인과 문인의 지적 구심이 되고, 결국 문학판을 재편하여 문학사를 새로 쓰게 할 예정이었다. 유신은 이처럼 역설로써 새로운 지성과 문학의 미래를 배태한 것이었다. 이런 정황이니 조연현과 문인협회는 기를 쓰고 기득권을 지키려 한 것이겠다.
그런데 왜 그 시절의 일부 주류 문인들은 권력에 아부하며 한몸이 되고 서로 이전투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을까? 일제의 총동원체제에서부터 분단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낸 그들의 정치적 무의식에는 권력에 대한 강한 열망과 동일화가 있었다고 보인다. 즉, 타락과 분열의 뿌리에는 식민지와 분단경험의 상처가 있는 것이다. 타자가 사라지자 이념 없는 ‘순수문학’, ‘문학을 위한 문학’은 오직 서로 싸우며 지배에 봉사할 일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문학성’을 위시한 문학의 제도란 곧 헛된 권위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만인의 복종을 요구할 때, 지식인과 문인도 대개 굴종하게 돼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문학과 문학의 또 다른 본연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저항을 만들어내고, 지성과 문학을 분열시킨다. 유신시대는 이런 역사적 교훈에서도 ‘갑’이다. 그런데 이번 8월의 일들은, 유신이 문학을 통해서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나 문학성 같은 가치가 때로는 얼마나 허약하고 자의적인 것인지, 문학이 얼마나 쉽게 지배의 장난감이 될 수 있는지 알게 한다. 문학은 권력과 자본의 품에 은밀히 안겨 뒷길로 지배에 봉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지배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저 ‘현대문학’은 더 대단하다. 문학이 기성의 질서와 권력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어야 한다는 따위의 관념을 정면으로 이기고, 고고한 문학성의 성채를 이룬다. 문학성이란 역사적 인간주의나 공리주의적 주박과는 아무 상관없는, 언어의 완미하고 자율적인 운동, 또한 인간적 고요의 ‘순수’한 결정체이어야 함을 가장 오래된 문예잡지가 재증명한다.
앞으로 청와대 만찬이나 ‘현대문학’에서와 같은 일은 늘어날지 모른다. 관료문학이나 궁정문학이 융성할 태평성대가 올 것을 미리 대비해야겠다. 그렇다면 특히 다음 겨울호 계간지엔 국정원 작가 특집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들은 댓글달기를 통해 2010년대 인터넷문학을 주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과 내란음모 사건의 두 녹취록을 통해 이제껏 안일하게만 다뤄진 분단정치의 실재를 하이퍼리얼리티 수준에서 구현해보여주었다. 나아가 그 녹취록들이 불러일으킨 이런저런 논란은 온 국민의 텍스트 해석 수준을 한껏 높여 주지 않았는가.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09062141285&code=210100 모바일이라 출처가 모바일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