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지난 9월 6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을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일방적 의혹보도를 '밝혀졌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어느 기관에 의해 어떻게 밝혀진 것인지는 기사내용 어디에도 없다. 후속보도를 분석해도 의혹 당사자 누구도 밝히지않았고 당사자 취재도 하지않았다. 학교나 검찰 등 익명의 취재원을 이용해서 의혹을 부풀리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 정도만으로도 이미 여론은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며 의심을 품고 있다.
검찰총장의 리더십을 흔드는 의혹보도를 조선일보는 언제든 '사실과 무관하게 의혹만'으로도 보도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다. 검찰총장의 인격권을 훼손하고 검찰조직의 정당한 권위는 흔들리게 된다. 이것은 진실게임이 아니라 여론싸움이다. 정정보도 등 수세적 방어태세를 취해야 하는 검찰총장의 입장에서 막강한 여론몰이의 선봉장에 선 조선일보를 이길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두 번째, 오보 때문에 조선일보가 치명상을 입을 일은 없다.
한국의 언론사가 오보 때문에 치명상을 입고 문을 닫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가. 이 땅의 언론환경은 열악한 듯 하지만 권력게임에 관한한 그렇지않다. 신문제작 메카니즘에서 오보도 일종의 불가피한 작업으로 본다. 그래서 법률적으로도 '언론사의 오보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소위 '상당성 원리'를 적용하여 보도할 당시에 '오로지 공익을 위하고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 무죄로 처리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생활이라하더라도 검찰총장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인데, 어찌 '공익의 범주'에 넣지않겠는가. 또한 보도할 당시에 기자가 믿을만한 나름의 정보와 근거를 내세우면 '면책사유'에 해당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따라서 검찰총장은 조직을 이끌어가는데 큰 부담을 안고 힘든 시간을 점점 더 갖게 되겠지만 조선일보는 '치명상' 염려없이 계속 보도하면 된다.
세 번째, 시작부터 지금까지 조선일보는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한 이번 검찰총장 이슈는 타 언론기관에서도 조선일보를 받아서 인용보도하고 있다. 언론기관이 경쟁 언론기관의 보도를 인용하여 보도하는 것은 특종을 인정한 셈이다. 진실여부를 떠나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쳐다보게 만드는 것. 모든 언론사의 꿈이다.
진실은 항상 밋밋하게 세월이 흐른 뒤에 나타나는 법이다. 어쩌면 기억속에 사라져버릴 쯤 진실이 나타나는 듯 마는 듯 스쳐갈 수도 있다. 조선일보는 신이 났고 검찰총장은 흔들리는 검찰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본업은 제쳐두고 조선일보 대응 수위를 어느 정도 하느냐가 주일과가 되고 있는 상황은 조선일보의 승리를 의미한다.
네 번째, 조선일보 뒤에 또 다른 막강한 국가권력이 받쳐주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아무리 조선일보라고 하더라도 현직 검찰총장을 향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혼외아들' 주장은 위험천만이다. 더구나 일면 톱으로 다룰 정도라면 언론사 단독 결정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이런 파격적인 내용을 톱으로 보도할 경우는 적어도 조선일보측에서 채총장의 부인이나 친자라는 아이의 증언이나 물증 등을 확보한 뒤라야 가능하다. 아니면 채총장이 술을 마시고 기자에게 자기고백을 했거나(…)그런 것이 아닌 불확실한 정보로 현직 검찰총장을 쓰러뜨릴 수 있는 보도 이면에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럴 가능성은 꽤 높다. 그것은 정치권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추론하는 것은 저널리즘적 차원의 분석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등장하는 '가족관계 등록부, 출입국 기록 및 학적기록부' 등은 기자들이 합법적으로 입수할 수 없는 사적영역의 내밀한 자료들이다. 수사권도 조사권도 없는 기자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이런 보도의 이면에 조선일보는 보이지않는 국가기관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기사로 보여주는 셈이다. 그것이 국정원인지 여부는 수사기관만이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조선일보 편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물의'(?)를 일으킨 채총장에 대해 여권내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악화된 여론, 검찰조직을 이끌기에는 도덕성이 문제 등의 밑도끝도없는 주장으로 대통령 비서실장, 법무부 장관 등은 이미 차기 검찰총장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 검찰조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개혁대상 국정원도 '보이지않는 손'을 활용하여 적극적인 펌프질을 하게 된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않다. 이미 시작된 채총장과 조선일보의 대결은 그래서 일방적인 게임이 되고 있다. 여권내부를 인용하거나 정치권을 활용하여 조선일보는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또 다른 보도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을 부르짖을수록 공허해지는 쪽은 채 총장이다. 새로운 검찰총장이 오게되면 그는 누구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