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베라뇨. 이런 당치도 않은 과분한 칭찬들 감사합니다.
궁금해 하시던 나나 라는 표현은 제 이름에 ㄴ이 들어가서, 어린 동생이 누나라는 호칭과 연결해 불렀을 때
나나나나 하는 느낌이라서 습관처럼 부르는 호칭입니다.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설은 아주 그럴싸악)
또 화장실에서 화장하는 것이 모든 남동생들에게 불편하다는 것은 제가 잘 알겠다.
그렇다면, 3편은 막내의 이야기로 꾸며보겠습니다.
1. 전자레인지
작년에 오빠들 사는 곳으로 자취를 나오면서, 이삿짐을 부르는 대신, 오빠들이랑 짐을 하나 둘 씩 옮기게 되었다.
오빠들 자취방에 가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와보니 이런 가관도 없었다.
비교적 한 깔끔씩 하는 편이라서 더럽지는 않았는데, 아무런 집기가 없었던 것이다.
방에 매트리스 달랑 두개. 옷장도 없고, 그 흔한 선반이나 수납장, 심지어 밥상도 없었다.
나: 하... 무정부주의냐. 뭐냐.
큰오빠: 해체주의야. 우린 해체되어 있거든.
할말을 잃고, 일단은 가진 예산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인터넷으로 주문도 하고
직접 선반이나 싸게 살 수 있는 책장을 구하러 다녔다.
인간 살 집이 됐긴 했는데, 다만 문제는 그들 둘이 살 때는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았다는 것이 었다.
나: 전자레인지 있으면 좋겠어.
막내: 그거 있으면 음식이 뿅하고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뭐.
나: 그래도 밥 냉동해놓으면 돌려 먹을 수 있잖아.
그리고 며칠 뒤, 동생이 하얀 전자 레인지를 들고 해맑은 빙구 모습으로 집에 들어왔다.
큰오빠: 에? 이거 뭐여.
막내: 형아, 나나 내가 이거 주웠어.
나: 어디서???
막내: 앞집 이사가더라고. 버린다고 해서 가져도 되냐고 물어봤지.
아. 동네 망신.
막내: 부동산 아줌마가 그러는데, 이번 주말에 옆집 이사나간대. 에어컨 버리면 좋겠다. 헤헤.
그날 저녁, 오빠들과 나는 엄마한테 돈을 빌려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을 구입했다,
2. 돌아가자.
예전 일인데, 운전면허를 딴 막내를 위해서, 또 벚꽃도 못보고 시드는 우리 청춘을 위해서, 저녁에 벚꽃축제를 가자고 나섰다.
밤 벚꽃이라니. 두근두근. 하면서 따라 나섰다.
거친 도로에서 순한 양처럼 운전하는 막내가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하며 대단해보이던 찰나,
막내: 돌아가자.
작은오빠: (조수석에서) 어딜.
막내: 이 길로 가면 안 돼. 내가 뉴스 봤는데...
나: 니가 뉴스를 봐? 안 보잖아.
막내: 뉴스에서 그랬는데 여기서 촛불축제 한대.
나: 뭔 축제?
막내: 촛불축제! 차 막혀.
큰오빠: 시위겠지. 시위! 뭐가 좋다고 축제씩이나 하냐!
나: 막내야... 니가 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을 의심해. 알겠지?
촛불축제를 거쳐 벚꽃시위는 잘 보았다.
3. 영화를 봤어요
막내가 고딩일 때, 입시 압박에 상당히 시달렸다. 실기 과목이기도 하고, 부상도 있어서
아무래도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막내가 안쓰러워서, 잠시 집에 있던 작은 오빠는 콧구멍에 바람 좀 쐬자며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다음날, 부엌에서 물을 마시던 막내랑 엄마
엄마: 어제 작은 형이랑 뭐했어?
막내: 영화봤어. 그 뭐더라? 모낭 소리?
엄마: ????
작은오빠: (지나가며) 워낭소리. 등신아.
잘 웃고, 울음끝이 짧은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었다.
말실수는 많이 하지만, 막내의 밝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