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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사랑한 친구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85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19
조회수 : 2181회
댓글수 : 40개
등록시간 : 2015/07/08 11: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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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대학 시절 1학년 때부터 찰진 밀가루 반죽처럼 항상 뭉쳐 다니던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강의실보다 분수대에서 일광욕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선배들은 그런 우리를 보면서 "저 놈들 또 고추 말리고 있네..."라고 하곤 했다.) ,물보다 술로 수분을 보충하던 우리는 2연속 학사경고를 맞아 
어쩔 수 없이 군대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3회 연속 학사경고 시 제적처리라는 무서운 학칙이 있었다.)
나는 3월, 다른 친구는 5월 그리고 다른 친구 하나는 9월로 입대 일이 결정되었다.
가장 먼저 입대한 나의 보직은 취사병이었다. 다른 친구 둘은 편지로 "총 쏘러 군대 갔더니 국자 들고 나라 지키겠네~" 이러며 놀려댔다.
그리고 입대하면 초사이어인이 되어 베지터와 함께 김정일을 격퇴할 거라는 5월에 입대한 친구가 보낸 편지는 아주 짧게 "나도 취사병, 그런데 
난 간부식당. 내가 이겼음." 이렇게 보냈다. 주부습진 걸린 손으로 편지를 읽으며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한 살리에르처럼 질투심에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우리는 휴가를 맞춰 나와 9월 입대를 앞둔 친구를 만나 군대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다 보직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너 뭐 잘하는 거 있어? 자격증 같은 거.."
"1년 내내 너희랑 술 마시고 놀기만 했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너 운전면허증도 없어? 
"멀미가 심해서 운전면허증 못 따.."
"너 컴퓨터도 못해?"
"컴퓨터 켤 줄만 알아. 그런데 독수리도 아니고 병아리 타법이야."
"우리 아버지가 낸 세금으로 너 같은 놈 밥 먹여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도 답이 없는 놈들이었지만, 이놈은 우리 중에서 가장 노답인 놈이었다.

드디어 9월이 오고 녀석도 입대를 하고 자대배치를 받은 뒤 내게 사진 한 장과 편지를 보냈다.
사진에는 어울리지 않는 군복을 입고 어색하게 경례하고 있는 모습인데 옆에 웬 셰퍼드 한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밥솥 들아 난 군견병이다!" 라고 
아주 짧고 굵게 보냈다. (녀석은 취사병인 우리를 밥솥이라 불렀다.)
"아니 서 있는 재주밖에 없는 녀석이 군견병이 되다니." 하면서 왜 대한민국 육군에서 저런 쓸모없는 녀석이 군견병이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녀석의 술 먹으면 개가 되는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다. 또는 면접관이 녀석을 보자마자 "이런 개새끼..." 라는 말이 먼저 나와서 
되지 않았을까 먼저 제대한 우리는 녀석을 면회 가서 녀석이 섬기는 군견 샤파를 직접 보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성의 상징인 대학도 
저놈을 사람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는데, 대한민국 군대와 개 한 마리가 저놈을 사람으로 만들다니..." 하면서 개가 역시 대단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녀석은 조련사 2급 자격증과 함께 제대를 하고 다음 해 복학을 하게 되었다.

모든 복학생이 그러듯 한동안 녀석도 적응을 못 했다. 그나마 먼저 복학한 우리가 있어서 녀석은 학교를 다닐만했을 법도 한데, 
녀석은 심각한 병에 걸렸다. 바로 군대에서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준 은견 샤파를 잊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이다. 
술을 마시면 취해서 "샤파... 샤파... 너무 보고 싶어, 마음이 아파..." 이랬고, 수업 시간에도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샤파... 샤파.. 하하핫..
거긴 핥지 마.. 짖궂어 샤파..하하하" 녀석의 샤파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우리는 녀석을 지켜보면서 우리 둘 중의 한 명이 술 먹고 
개가 돼서 녀석의 조련을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얼마 전 새끼를 낳은 셰퍼드를 기른다는 다른 친구 아버지에게 셰퍼드 강아지를 분양받기 위해 우리는 양평으로 떠났다. 
녀석은 새로 만날 강아지에 대한 기대로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친구 아버님 댁에서 본 어미는 분명 셰퍼드인데, 그 강아지들은
아무리 봐도 동네에서 흔히 마주치는 똥개 같았다. "저기 아버님 **이에게 셰퍼드라고 듣고 왔는데, 얘들은 아무리 봐도..."
친구 아버지는 큰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동네 난봉꾼 같은 똥개 한 놈이 있어, 그놈이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다녔는데, 우리 맥스 
(어미 셰퍼드 이름) 도 하룻밤을 보냈나 봐..." 우리 셋은 모두 사랑의 난봉꾼을 부러워했다. 아마 지금 그 난봉꾼 개를 만났다면 그 개 이름을 아마도 
임모탄이라 하지 않았을까....
"생긴 건 이래도 제 어미 피도 섞였으니까 반은 셰퍼드야.. 마음에 드는 놈 하나 데려가." 
녀석은 심각한 얼굴로 강아지들을 살핀 뒤 한 마리를 안으면서 "넌 오늘부터 샤파야!" 라고 외쳤다. 그리고 양평에서 돌아오는 길
샤파는 엄마를 찾으며 낑낑거리고, 녀석은 옆에서 멀미 하고 있었다. 

뉴 샤파가 생긴 이후로 녀석의 삶은 모든 게 바뀌었다. 흐리멍덩한 제사상의 조기 같은 표정으로 학교에 다니던 놈은 드디어 조기의 탈을 벗고
사람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우리와 술을 먹거나 분수대에서 물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녀석은 집으로 달려가 샤파를 조련하기
시작했다. 물론 녀석의 자취방 아주머니가 개를 키우는 것을 허락하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주인집 아주머니는 반려견을 무려 3마리 그것도 혈통
좋은 슈나우저를 기르고 계셔서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했다. 녀석은 자신은 굶더라도 샤파에게 가장 좋은 사료를 먹였다. 그리고 녀석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신 날 술에 취해 잠든 녀석 몰래 사료를 술안주로 먹은 날 세상에 뺏어 먹을 게 없어 샤파 밥을 뺏어 먹느냐며 녀석에게 절교 당할 뻔했다.  
그리고 5개월 뒤 녀석의 정신상태가 정상인으로 변할 때 즈음 샤파도 강아지라는 호칭보다 개라고 불러야 할 시기가 왔다. 
어느 날 녀석은 우리를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운동장에는 예비군 훈련하는 날도 아닌데 더운 여름에 군복을 입고 있는 녀석과 샤파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보라면서 그동안 샤파와 훈련한 것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앉아!" 샤파가 앉았다. 우리는 멀리서 "와!!" 하며 감탄했다. 그리고
"기다려!" 라고 말하며 샤파에게서 거리를 두더니 온몸으로 샤파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샤파는 앉아서 녀석을 바라보더니 하품을 크게 한 번 하고 그늘 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하지만 녀석은 계속 샤파에게 격렬한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는 
"야.. 저 병신 뭐하냐?"
"몰라, 밥 대신 더위 먹고 실성해서 춤 추나 봐..."
나무 그늘서 샤파는 소변을 보고 주변을 살피더니 무언가를 집어 먹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계속 현란한 몸동작과 "샤파.. 샤파" 하면서 
애타게 샤파가 자신을 봐주길 원하고 있었다.
"야.. 샤파 뭐하냐. 똥 먹냐?"
우리는 샤파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샤파가 집어먹고 있는 건 똥은 아니었다. 떨어진 빵을 집어 먹고 있던 샤파는 나를 보더니 내게 달려와
내 다리를 붙잡고..... 하....코와붕가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미친 발정 난 개새끼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 후 녀석은 우리에게 "가족끼리 서로 훈련시키는거 아니야..." 라면서 샤파를 훈련하는 것을 포기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샤파가 처음 보자마자 다리에 붕가붕가를 시도했던 녀석의 여친이 와이프가 되고 둘 사이에 애가 태어나도 샤파는 녀석과 함께 아니 녀석의 
가족이었다. 14년 동안 녀석과 샤파는 서로에게 헌신하는 생활을 했다. 어린 아들이 샤파 등에 올라타고 놀 때도, 호기심에 귀를 잡아당길 때도 
늙은 샤파는 전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샤파는 어린 아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 오히려 넘어지지 않을까 늘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샤파가 나이가 들어 관절염이 심해져 더 이상 걷지 못할 때도 녀석과 녀석의 가족은 샤파를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다시 샤파가 일어나서 
붕가붕가도 하고 뛰어다닐거라며 지극히 간호했다. 하지만 샤파는 더 이상 나를 보면 반가워서 붕가붕가를 하지 못하고 긴 잠에 들었다.
샤파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붕가붕가를 해주기 위해 하늘로 떠난 날 화장터에서 참지 못하고 울던 녀석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출처 군견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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