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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겪은 사이다같은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88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27
조회수 : 3085회
댓글수 : 74개
등록시간 : 2015/07/17 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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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쥐새끼라는 저속한 표현이 있습니다. 읽으시고 본인이 쥐새끼 같은 짓을 했다 싶어 이 글을 읽고 분노하시는 분은 
비공감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입대 전 라면과 3분 요리 그리고 고추장 비빔밥이 해 본 요리의 전부였던, 나는 나의 능력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취사병이 되었다.
취사병은 야간 근무를 서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매일 다른 전우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고 주부습진과 같은 
일반 사병들에게 생기지 않는 병들이 생기는 고충이 있었지만 사실 소위 말하는 땡 보직이다. 

그래도 취사병의 장점은 잘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물론, 계급이 상승하면서 맛없는 짬밥을 먹는 양은 현저하게 줄어들기는 했다.) 
짬 타이거 (군대에 서식하는 들고양이)와 짬 견 (군대에 서식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똥개 무리)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었다. 
내가 병장이 되었을 때는 나를 호위하는 좌 짬 견, 우 짬 타이거가 있었을 정도였다.

이등병 때부터 밥하는 시간을 제외한 휴식 시간이 되면 가끔 계급장에 쇳덩이를 달고 있는 나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와서 쌀은 물론 각종 식자재 
들을 자신들의 차에 싣게 하거나, 심지어 가끔 외부에서 트럭을 몰고 온 아저씨가 창고에 있는 쌀을 비롯한 식자재들을 실어 가고는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등병 시절에는 고참이나 간부들이 시키니까 했고, 외부에서 오는 아저씨가 올 때마다 군대에서 먹을 수 없던
순대나 떡볶이, 그리고 음료수와 간식들을 사다 주는 것이 그저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취사장의 고참들은 "개새끼들... 또 저 지랄이네.. 훔쳐 먹을 게 없어서 월급 만원도 못 받는 것들 밥을 훔쳐가냐.."면서 
씁쓸하게 담배를 피우며, 막내인 내게 실어 주라고 지시했다. 

계급이 오르면서 어느덧 나도 취사장의 셰프가 되었다. 하지만 셰프가 되면 뭐하나, 각종 계급의 쥐새끼들은 자기 차에 군대에 보낸
아들을 위해 부모님이 피땀 흘려 고생하며 번 돈으로 낸 세금으로 구입한 식자재를 여전히 실어나르고 있었고, 여전히 트럭을 몰고 오는 아저씨는 
마치 납품받는 거래처의 직원처럼 꾸준히 방문했다. 차라리 전투 체육이나 작업을 한 뒤 조선 시대 의적이 된 기분으로 맛스타(군대에서 보급되는 
주스, 가련한 사병들의 주요 비타민 보충액)나 컵라면을 주는 것은 아깝지 않았지만, 쥐새끼들이 몰래 빼돌릴 때는 마치 고비 사막에서 3일간 
물을 못 마시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함께 고비 사막을 여행하던 노엘 갤러거와 물을 나눠마시려는 찰나 황건적이 나타나 물을 강탈당할 때 
기분이 들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힘없는 일개 사병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쥐새끼들이 실으라면 싣고, 심지어 그들이 가져가는 수량 때문에 일반 사병들에게 배급될 
재료가 부족하게 되면 "없으면 없는대로 만들어서 먹여." 라는 쥐새끼 입에서 나오는 개소리를 들었다.
헌병대나 기무사에 투서를 넣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나 때문에" 부대가 시끄러워질 거 같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상급부대인 군단에서 재물조사를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어떻게 비리를 폭로할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모든 식자재를 장부와 다르게 모두 큰 차이로 '빵구를 내버리자.' 였다.
취사장의 전우들은 나의 의견에 동조하며 도와줄 것을 약속했으며, 물론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지기로 했다.
지금은 그런 용기를 못 냈을 거 같은데, 그 당시 나는 겁도 없었고 불의를 보면 못참는 성격이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모든 용기의 원천은 얼마 남지 않은 제대와 함께 동조해준 전우들 덕분이었다.  

나의 오른팔이었던 김 상병은 

"성 병장님, 까짓거 우리 다 먹어버리죠. 뱃속에 넣어버려서 증거인멸하면 되잖아요." 

녀석... 열의는 좋았다. 

"너 생쌀도 다 씹어 먹을래? 현실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봐."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해 숨기기에 곤란한 쌀 처리에 고심하고 있는 우리의 의견을 듣던 막내가 말했다.

"그냥 새벽에 취사장 뒤 야산에다 죄다 묻어버리면 되잖아요." 

국자보다 쓸모없어 보이던 녀석이 갑자기 제갈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의견을 들은 김 상병은 진지하게

"성 병장님, 땅에다 묻었다가 싹 트면 어떻게 하죠?" 

쌀을 묻을 때 녀석도 함께 묻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녀석의 생각도 벼와 함께 땅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겠지.

결국 우리는 쌀과 유통기한이 긴 편인 식자재는 야산에 묻고, 맛스타와 컵라면, 건빵 등은 전우들에게 몰래 아낌없이 나눠주기로 했다.
그리고 쥐새끼들의 비리에 항상 욕을 하던 군수과 1종 계원(식자재 서류 작업 등을 담당하는 행정병)도 함께 이번 거사에 동참하기로 했다.

재물조사 한 달 전부터 우리는 매일 새벽 30분 일찍 일어나 삽질을 했다. 삽질하면서 공병대 애들이 고기반찬이 나올 때 왜 그리 
한 점만 더 달라고 처절하게 응석을 부렸는지 알 수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취사장에서 보호받고, 아침 구보도 하지 않던 연약한 
취사병들에게 삽질은 고통 그 자체였다. 

얼마 뒤, 재물조사를 앞두고 취사반장은 자신이 1차 검열을 하겠다며, 장부를 들고 창고와 취사장을 왔다 갔다 했다. 
당연히 재고와 장부가 맞을 리가 없었다. 취사반장은 내게 진노하며 말했다. 

"야 성 병장아! 왜 하나도 맞는 게 없어? 왜?"

나는 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쳐 졸린 짬견이 하품하듯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이분 저분이 하도 가져가시는데, 뭐가 남아납니까. 애들 먹일 것도 부족하다고, 몇 번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반장님도 실어가셨지 않습니까."

"뭐?  이분, 저분?" 

"야. 김 상병! 장부 가져와."

"장부?"

"아니 우리가 쌀을 퍼먹은 것도 아니고, 빵구난 걸 우리가 덤탱이 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나는 최근 몇 개월간 쇳덩이 계급장을 단 쥐새끼들이 빼간 품목을 적은 수양록을 가져오라고 했다.
계급별로 품목별로 참 다양하게도 빼갔다. 쌀은 기본이고, 소고기, 돼지고기, 고춧가루, 참기름까지...
장부를 본 취사반장은 식은땀을 흘리는 동시에 "이거 어떡하지. 헉 내 이름도 있네." 하는 표정이었다. 
'정계 유착 비리를 폭로한 사람이 이런 후련한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행정작업을 하는 군수과까지 커졌지만, 군수과를 책임지는 군수과장을 비롯한 많은 간부가 나의 장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군수과장과 장부에 적힌 당사자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불려갔다. 

"이렇게 다들 가져가시는데, 어떻게 재고가 맞겠습니까." 

하면서 쥐새끼들의 그동안 행적을 말했고, 만일 재물조사 때 문제가 된다면 공개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순간 그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었고
(아마 없었던 요실금이 생길 뻔한 쥐새끼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었지만, 난감해 하며 '저 새끼한테 뒤통수 맞았네.' 하는 
표정에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타 부대에서 부족한 품목을 빌려오는 상황이 발생했고, 간신히 숫자를 마친 우리 부대는 재물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 뒤 내가 제대할 때까지 쥐새끼들의 도둑질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크게 줄어들었고, 나는 장부 속의 간부들에게 제대로 찍혀서 복장 불량으로 
한 번, 취사장 청소상태 불량으로 한 번 이렇게 2번 군기교육대에 가긴 했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와 
그날의 똥 씹은 표정의 쥐새끼들 생각에 뿌듯했다. 

아.. 뒷산에 묻은 쌀은 내가 제대하고도 계속 파묻혀 있는 상태라고 들었다. 훗날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발굴해주겠지.
출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생각만해도 욕 나오는 쥐새끼들

죄송하지만, 군대 이야기라서 여성분들과 미필이신 분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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