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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미치겠습니다. 어떻하면 좋을까요
게시물ID : panic_408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왼발
추천 : 58
조회수 : 7443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3/01/11 16:26:53
다행히 컴퓨터는 되네요. 익명 게시판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는데
처음 안날 글을 올리네요. 아 진짜 죽겠습니다. 

제가 어제 술을 마셨는데, 친구녀석 부부랑 셋이서 오랜만에 만나서 한잔 했거든요.
부부라고 해도 친구 부인도 대학 때부터 알던 사이라 셋이서 완전 친하게 
지냈거든요. 제가 이쪽 지방으로 발령 난 뒤에는 만나기가 어려워서 소식만 
메일로 간간히 보내고 하다가 이 두 녀석이 제가 있는 지방으로 가족 여행을 왔더라구요

결혼 이년차에 아직도 깨가 쏟아지는 구나 싶어 부럽기도 하고 간만에 
친구들 만난 기분에 좀 많이 마셨는데......

아 미치겠다. 진짜. 아 진짜.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머리가 깨질듯 아프더라구요. 간만에 빨았더니 
몸이 못받아들이는구나 싶어서 일단 일어났죠. 사방이 컴컴하더라구요.
다행히 제 방에서 자는 중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집에는 들어왔구나 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뭘 밟고 쭉 미끄러 졌습니다.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나서야 바닥에 뭐가 흥건히 고여 있는걸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오바이트
해놓은걸 밟았구나 싶어서 짜증이 확 나더라구요. 

그게 피라는 것을 안 것은 불을 켠 뒤였습니다. 와 진짜. 미치겠네요 
죽겠습니다. 지금도 제 뒤에 있어요. 그게 태어나서 처음 본 어마어마한
양인데요 무슨 사람 하나 죽은 것처럼 시커멓게 반쯤 굳은 피가 바닥이며 제가 
자고 있던 침대며 벽에 다 묻어 있는데 보자마자 오금이 풀려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랬습니다.바보처럼 어어어 하고 한참 있다가 손을 보니까 넘어질때 묻은
건지 손이며 옷이 반쯤 굳은 피투성이더라구요. 어디 조금 다쳤다. 이런 것도 아니고 

여하튼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방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환장하게 문이 잠겨 있는 겁니다. 손잡이가 뻑뻑해서 돌아가지 않는 걸 보니 방문을
열쇠로 잠근 것 같더라구요.

일단 서있을 힘도 없어서 침대에 가서 앉았습니다. 입고 있던 옷은 어제 술마셨던 옷 
그대로 더라구요. 어디서 조금 베인걸로 나올 피 양도 아니고 내가 무슨 사고라도 
쳤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술 잘 먹고 잘 놀다가 필름이 끊기긴 했거든요.

그러고보니 같이 술마셨던 친구놈들이 안보이는게 이상하긴 했습니다. 녀석들이 
제 집은 알고 있긴 하지만 그놈들이 제가 술에 취했다고 집에 훌렁 던져두고 
어디갈 그런 친구들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친구놈들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는 겁니다.

일단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휴대폰의 액정이 깨져 있더군요. 약정도 2년 남은건데......

충전기를 끼워 일단 충전을 하고 있습니다만 틀렸습니다 저건 살아날 가망이 없어요. 
원룸 방 문은 잠겨 있고 하나뿐인 휴대폰은 고장이 나고 친구놈들은 어디 가서 보이질 않고


바닥은 피투성이고

일단 컴퓨터를 켜야 겠다고 생각한 찰라, 어디선가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방 안에 저 혼자 앉아 있으니까 조용했거든요 평소라면 가끔 울릴 밖의 냉장고 소리도 
안들릴 정도로. 그래서 신음소리를 듣자마자 경계하는 미어켓마냥 귀를 바짝 세웠죠.
뭘 잘못 들었나 하고요. 한참 동안 들리지 않아서 잘못 들었구나 라고 생각 하고 있으려니

또 다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도 제 옷장에서요.

와, 씨. 죽겠는겁니다. 분명 사람 신음소린데 그게 꼭 다 죽어가는 것처럼 가느다랗게 
들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피가 저 신음소리 주인이 흘린거구나 라는건 바보래도 알겠더라구요
그런데 그 양이 보통 양이 아니잖아요. 

저는 조심스럽게 옷장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봤죠. 아주 조금 열린 옷장 문에
떡칠 되어 있는 피를

누군가가 피를 죽은 소 선지 뽑듯 흘리고는 옷장에 처박혀 있는 겁니다. 그것도 제가 사는
원룸 옷장에요. 

혹시 제가 잠든 사이에 강도가 든 걸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게 친구 
이름을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친구 부인 이름도 불렀습니다. 신음소리가 다시 
안나더라구요. 신음소리는 아주 가끔, 그것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는거 압니다. 저도 잘 알죠. 그런데 휴대폰도 안되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제가 즉각 연락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습니까.

컴퓨터요? 네 인터넷으로 신고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만, 그것보다 일단

혹시 이거

내가 죽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있잖습니다. 술 마시고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 등등
물론 친구놈은 대학 다니는 동안 둘도 없는 제 친구였고 친구 부인도 마찬가지였죠.
그렇지만 말입니다. 혹시 제가 무의식 중에 친구나 친구 부인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더군다나 친구 부인은 제 첫사랑인걸요. 물론 짝사랑이고 제가 먼저 
사랑보다 우정을 선택했으니까요. 거기다 친구놈도 제가 첫사랑인걸 아는 걸요.

혹시 술 마시는 동안 말다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더 미칠 것 같은건 정확한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저 지방대 나와서 학벌 빽 하나 없이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지방 발령나가서 5년만 채우면
다시 본사로 불러준다는 이야기 듣고 지방으로 와서 이제 막 1년 찹니다.
앞길 창창 구만리 같은 제가 왜 사람을 죽인다는 말입니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물론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경찰이 이해를 할까요?
제 자취집에서 시체가 나왔는데 말입니다. 거기다 저는 전날 술에 취해 기억이 없구요.

혐의가 풀린다고 해도 그동안 제가 정상적인 화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사실을 알면 아무리 혐의자라 하더라도 저를 짜를게 분명한데요??

저는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옷장을 노려봤습니다. 정체도 모를 제 옷장안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군데 저 새끼는 내 방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내 앞길을 막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옷장에서 신음소리가 또 들리는 겁니다.

그것도 깊고 깊은

처음 듣는 신음소리인데도 그게 사람이 죽기 전에 내쉬는 마지막 호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덜컹, 제게 뭔가 씌인것 같은 증오가 사라지는 겁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인가 하구요. 그래서 일단 조심스럽게 옷장 
문을 열었습니다. 문 사이로 툭 하고 팔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긴 했지만요.

그런데 옷장 문 사이로 축 늘어진 팔이 

익숙한겁니다.

못난 버릇 때문에 뭉개진 손톱 하며 손등 사이에 망치질 하다 찢겼던 상처 하며 어머니가 
주신 스크래치 많은 반지까지

제 손하고 똑같은

무서워서 더 이상 열지 못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진짜 저게 뭘까요???

지금 전 그나마 전원이 들어온 컴퓨터 앞에서 익명 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왜 이렇게 여긴 조용한 걸까요?? 평소라면 깊은 잠도 깨울 냉장고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른 층에 오가는 사람 목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컴퓨터의 시계는 지금이 오전 11시라고 말하고 있는데 창 밖은 왜 저렇게 어두운 거죠?

제 옷장에 있는 것은 누구 입니까. 지금은 신음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설마 죽은 걸까요?
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여긴 어디란 말입니까. 

미치겠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인 걸까요? 혹시 만약에, 그럴리는 없지만 저 옷장 안에 있는 것이
저라면

지금 여기 앉아서 타자를 치는 저는 누구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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