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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89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꼬꼬아빠
추천 : 69
조회수 : 3710회
댓글수 : 62개
등록시간 : 2015/07/21 20: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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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렸을때 내 기억은 밤늦도록 논 기억밖에 없었다.
우리를 낳았을때 부모님은 결정하셨다고 했다.

첫째는 공부를 시키고 둘째는 예쁘게키워 
좋은곳에 시집을 보내고
셋째인 나는.. 뭐라도 하다가 안되면 농사나 시키자고.

여기서 셋째가 나다. 
나는 깡촌에서 태어났다. 지금이야 집근처로
골프장이 있고 조금만 나가면 스키장도 있어 
은퇴한 노부부들의 땅으로 변하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때는 아이들로 북적이던 
누구네 집에서 부침개를 부치면 으레 옆집은 
양조장에 탁주를 가지러 가는 그런 마을 이었다.

첫째누나는 전교에서 항상 1등을 할만큼 공부를 잘했고
뼈가 가는 둘째누이는 참으로 예뻤다.
나는 맨날 바닥에 구르고 엎어져 이마며 코며 
딱쟁이가 가시질 않는 "덜떨어진 막내"였다.

동네엔 또래도 있었지만 형들도 많았다.
물이 얕아지는 이맘때, 장마전에는 형들은 미션을
하나씩 나눠줬다 너는 냄비 너는 라면 너는 그릇 넌
고추장 된장 그리고 나는 모질이라 반도만 들고
냇가라고 하기엔 조금은 넓고 강이라고 하기엔
나처럼 반푼은 모자란 그런 곳에 도착을 하면

고추에 거뭇한 털이 나기시작한 형들은 팬티를 입고
우리처럼 띠리한 번데기같은 국민학생들든 
팬티도 벗고 반도질을 한다. 가운데 얕은곳에 돌로
임시로 둑을 만들고 위아래 패를 갈라 위는 몰고 아래선
건진다. 북한국의 양동작전은 아마도 물고기 잡아먹다
만든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게 한식경쯤
어푸어푸 하고 잡답보면 꾸리 들치 눈새끼 빠가사리 시리
같은 잡어가 어른 주먹으로 네주먹만큼은 잡힌다.

그럼 새끼는 놔주고 큰놈만 추려내 형들은 물을 끓이고
우리는 부랄을 덩글덩글 하며 논두렁에서 깻잎따고
임할머니네서 파뽑고 이장님 밭에서 무뽑고 
어설프게 영글은 호박을 몇개 따서 돌아간다.

그러면 형들은 라면스프며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대충 때려넣고는 죽같은 탕을 끓이고 
우리는 그사이 덥혀진 돌을 베고 귀에 물을 빼거나
형들이 시키는 심부름을 하거나
아니면 형들이 보는 언니들이 빨가벗고 있는 책을
어깨뒤로 보거나 그랬다.

가끔 아랫동네 애들과 싸움이 나기도 했는데 
승률은 비슷했다 아랫동네 길은 시내로 나가는 큰길이
있고 우리동네 길은 학교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있기때문인지 어릴적 우리는 등기부에 점하나 안찍고
이땅은 우리땅이니 오지말라며 엄포를 놓기도 하고
머리를 터치기도 하고 그랬다.

형들이 고등학교를 가서 큰 시내로 나갈때쯤 
나와 친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천렵도 하고
스파크나 펜트하우스를 보며 검마를 빨딱 세우기도 했고
때로는 옆 중학교 계집애들과 비닐하우스에서 
탁주나 소주를 먹으며 히히덕 거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집을 팔고 서울에서 장사를 하신다고 하실때
떠나던 그곳은 변함없었다.
서울에 전학을와 서울 녀석들과 마주했는데
살이 계집애 만큼 하얗고 셀쭉한게 족제비 같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들은 나를 감자 감자 하며 놀렸고
세상에서 제일 자신있던게 주먹질이고 왈패질이었던
난 첨에는 하루에 두번 나중엔 이틀에 한번 좀 더 나중엔
일주일에 한번정도 싸움질을 했다.

둘째 누이가 오류동 삼천리 연탄공장 앞에서
버스에 치어 죽던날 우리 누이는 고1이었고
나는 중3 이었다. 우리집은 연탄공장 건널목을 지나야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가봤더니
내 예쁜 누이가 서울놈 만큼 하얗게 되어 누워 있길래
왜 여서 자나 했더니 그게 주검인걸 
나는 덜떨어져서 몰랐는지 눈물도 나지 않아
멀뜽멀뜽 보는데 저 멀리서 엄마가 뛰어와 
내딸 영아 라며 통곡을 하길래 그때야 아 작은누이가
죽었구나라고 하며 따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사업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서울이 밤새 
전기가 들어와서인지 화투장 맞추는게 더 좋으셨나보다
맨첨에 서울와수는 소고기무국도 먹고 미역국도 먹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두개에 김치랑 국수랑 곱절로 넣어
소금으로 간을한 김치국인지 김치라면인지 국수에
라면이 붙은건지 퓨전누들을 주시더라

아부지가 마이티 트럭을 노름빚으로 잡히던날 
엄마가 새벽에 깨우드만 외삼촌차에 옷이랑 책이랑
실고는 좁아가 나는 적재함에 타고 누나는 엄마랑 삼촌이랑 앞에타고 아침에 해가 뜰때까지 달리니까
누렁이 소똥냄새 진해지고 딱 가물어 장마질라던
그때 그 강이 나오는데, 집에 왔다 싶어 숨이 뚫리고
눈물이 나는데 이게 뭔 경운가 싶고 그러데

지금은 동네에 친구는 버섯농사 짓느라고 맨날 
복대차고 있는 대갈통하나랑 큰 시내에서
신발파는 놈하나랑 이렇게 둘만 남았다.

휴가때가 되면 "제수씨 꼭 데려와라 니만오면 차 터트려 버린다"라며 내 아내를 지들 와이프보다 더 잘 챙기는데
어이도 없고 맨날 와이프 앞에서 어렸을때 내가 
바지에 똥싼얘기 지렁이 줒어먹은 얘기나 하면서
낄낄 거리는게 재수가 없기도 한데 

그래도 임할머니네 닭 잡아서 몰래먹다가 걸렸을때도
같이 먹지도 않았음서 그랬다고 지랄같은 우정도 주고
복수로 임할머니네 간장독 고추장독 된장독 깰때도
도와준놈들이라 내내 그립기도 하다.

휴가가 다음준데 어서 전화줄것이지
뭘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빙신같은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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