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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둘, 남동생 하나14- 생일 축하해
게시물ID : humorstory_4390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울메이커
추천 : 145
조회수 : 11873회
댓글수 : 71개
등록시간 : 2015/07/22 21: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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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막내는 엄마의 재능을 닮았고, 나와 작은오빠는 아빠를 닮았다.
큰오빠는 엄마를 가장 닮았다. 하얀 얼굴에 길고 마른 체형, 낮은 웃음소리, 꽃피는 봄에 태어난 것 까지.
 
아마도 이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큰오빠가 대학에 입학을 했다. 이름을 들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대학의 경영학과였다.
과외 한번 시키지 않은 아들의 선전에 아빠는 물론 엄마까지 어깨가 으쓱했다.
동네 아줌마들은 엄마를 볼때 선망의 눈길로 봤고,
엄마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할머니까지도 집에 전화를 걸어 "잘했다, 장하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
엄마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고, 자랑스러웠는지 짐작이 간다.
 
온 가족의 축복 속에 대학에 입학을 했고, (당시 수험생이던 작은오빠는 우스개 소리로 "난 망했으니 기대하지마" 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대학생활을 했다. 집에 대학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오빠가 어른이 됐다는 것.
너무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큰오빠는 아침 일찍 나갔고, 밤 늦게 들어왔다. 술을 마시기도 했고, 가끔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아침, 다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곧 엄마와 큰오빠의 생일이기 때문에 그 기간에 우리는 어디서 외식을 할 것인가 하는 대화가 오갔는데,
큰오빠가 조용히 봉투를 하나 꺼냈다.
 
아빠: 뭐야?
큰오빠: 돈이요.
아빠: 무슨 돈?
큰오빠: 등록금 돌려 받았어요.
엄마: 응? 등록금을 왜 돌려주는데?
큰오빠: 자퇴했어요.
 
정막. 고요. 정적. 무슨 단어를 가져다 붙인다 한들 그보다 싸늘한 침묵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간신히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빠: 왜?
큰오빠: 지금하면 일부분은 돌려준대서요.
아빠: 아니 그러니까 왜...
큰오빠: ...
 
얼어붙은 오빠의 입만 쳐다보던 엄마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소리도 없이.
당시 어리던 막내와 나는 빨리 밥을 먹고 이자리에서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 말을 좀 해주지 그랬어.
큰오빠: 아... 적성에 안 맞아서... 재미도 없고.
아빠: 한 달 밖에 안됐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학교 재미로 다니는 것도 아닌데.
큰오빠: 수업 세번밖에 안갔어요. 그래도 그건 알겠더라구요.
엄마: 너 내자식 아니야. 네 맘대로 할 거면 왜 여기 있어. 나가.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버렸다.
 
아빠: 나중에 얘기 하자.
 
그 이후, 한동안 큰오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오빠 말로는 친구의 자취방에 있다고 했다.
나는 큰오빠에게 집에 오라고 문자를 보냈고, 오빠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한번도 큰 사고를 친 적도 없는 큰오빠의 일탈에 엄마는 많이 화가 나셨다.
서운함이랄까, 엄마의 감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아들에 대해 너무 몰랐다 라는 말을 아빠에게 했었다.
한동안 집안은 침울했다. 아빠는 엄마를 달랬고, 엄마는 쉽사리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빠의 생일이 되었다. 막내랑 용돈을 모아서 큰오빠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티셔츠를 샀다.
하지만 큰오빠에게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다.
큰오빠의 생일 아침마다, 거하게 상을 차리던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날 저녁, 아빠는 집에 들어왔다. 커다란 케잌을 들고...
 
아빠: 이따가 큰오빠 올거야. 오기로 했어.
나: 미역국도 없는데.
아빠: 우리가 하면 돼. 걱정마.
 
작은오빠랑 아빠는 장을 봐서 들어오고, 막내랑 같이 마늘도 까고 양파도 까면서
아빠가 미역국을 끓이는 것을 도왔다. 미역을 얼만큼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빠는 이마를 굉장히 많이 긁으셨다.
난처하실때마다 이마를 벅벅 긁으시는데, 이마껍데기가 벗겨지는 줄 알았다.
 
엄마: 비켜.
 
방에서 나온 엄마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엄마: 미역을 이렇게 많이 불리면 어떡해? 잔치해? 그리고 잡채를 할거면 당근을 사왔어야지.
아빠: 집에 있는 줄 알고.
엄마: 이건 또 뭐야? 큰애가 언제 조개 넣은 미역국을 먹었어, 고기 넣고 끓여야 잘 먹지.
 
폭풍 잔소리를 하면서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이미 재워둔 갈비를 꺼내어 굽고, 상을 차리는 엄마의 모습이 새삼 대단했다.
 
아홉시가 지나서였나, 큰오빠가 (거의) 열흘 만에 귀가를 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막내는 내게 계속 선물 언제 줘야하는지 물었다.
 
엄마: 앉아.
큰오빠: 네.
엄마: 넌 얼굴이 왜 그래. 살은 쭉 빠져서. 밥 먹었어?
큰오빠: 아니.
엄마: 생일인데 왜 굶고 다녀? 진짜... 진짜 너...
 
헬쓱해진 큰오빠의 모습에 엄마가 다시 눈물을 비쳤다.
 
작은오빠: 왜 울어? 아, 울지 좀 마. 좋은 날 왜 울어.
엄마: 미워서 그렇지. 미워서.
큰오빠: 죄송해요.
엄마: 죄송해요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워? 집은 왜 나가?
큰오빠: 죄송합니다.
막내: 우리 케잌 초 언제 켜?
아빠: 지금 하자.
 
그렇게 스무살의 봄, 큰 오빠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큰오빠가 눈물을 보인 것 같은것은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길게 뻗은 두 개의 초를 불고 나니
엄마는 큰오빠의 손을 잡았다.
 
엄마: 그래도 넌 내자식이야. 엄마가 미안해.
큰오빠: ...
엄마: 내 아들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다음해, 큰오빠는 본인이 하고 싶어했던 (사실 오빠가 하고싶은게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전공을 골라
대학에 입학했다. 작은오빠도 무리 없이 자신이 선택한,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해, 봄 큰오빠의 생일에는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했다.
엄마는 말했다. 자식을 다 안다고 자신하는 건 착각인 것 같다고.
 
엄마는 넷을 낳았다. 아들 셋, 딸 하나.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다 알지 못하지만,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출처 근 십년전 꽃피는 봄, 큰오빠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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