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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 나왔던 하룻밤 이야기.txt (약 19금 약 스압)
게시물ID : humorstory_4393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모르는척
추천 : 11
조회수 : 1535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5/07/30 04:37:48
언젯적 이야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몹시 덥던 여름날이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이 하룻밤의 난리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야, 술먹자."
 
"돈 없는데."
"야 오랜만에 교복 입던 시절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중고딩때 많이 갔던 한X델리도 갈까?"
 
"돈 없다니까?"
 
"니가 버블티 좋아한댔지? 근데 난 버블티 싫어하는데.. 역시 후식은 아이스크림이 낫겠다."
 
"타피오카펄을 귓구멍에 입주시키셨어요?"
 
돈이 없기도 했고 솔직히 누군가를 만나는게 귀찮기도 했던 저녁이었다.
 
"여자친구 때문에 그래. 얘기좀 들어주라. 제가 오늘 풀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한X델리에서 매뉴를 고르고 있었다. 친구의 연애가 삐걱이던 것은 알고 있었다. 친구가 저런 얘기를 꺼낸 마당에 버스비가 없다면 차비를 주고 신발이 없다면 슬리퍼까지는 사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나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던 와중 친구가 살짝 눈치를 줬다.
 
"왜?"
 
"야. 저 알바생이 우리를 보는 눈이 좀 이상하다."
 
옆 테이블의 마감 준비를 하던 알바생의 표정을 보니 확실히 좀 그랬다.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힐끔힐끔 보고있었다.
 
"그러게, 좀 보는 눈이 이상하긴 하네."
 
"넌 왜인거같냐?"
 
"글쎄.. 그냥 뭐 마감전에 우리가 들어와서 그런거 아닐까?"
 
"야 아냐. 저 눈은 우리를 커플로 보는 게 확실해."
 
"뭐? 사람밥 먹으면서 사료먹는 친구들같이 말하지 말아줄래?" 
 
"진짜야. 방금 내가 너한테 '돈가스 먹여줄까?'하고 물어봤을 때 알바생이 듣고 표정이 굳었다니까? 야 가만히 있어봐."
 
친구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이 미친 새끼... 냅킨을 채우던 알바생의 시선은 굳이 얼굴을 그 쪽으로 돌리지 않아도 느껴졌다.
 
"야, 우리 나갈 때 손잡고 나가 볼까?"
 
"미안한데 정말 싫거든?"
 
"XX형은 이런거 부탁하면 절대 안해준단 말이야. 어?"
 
"미안한데 두 번 거절 하는거 정말 싫거든? 아, 참고로 세 번은 훨씬 싫어하는 거 미리 말해줄게."
 
"그럼 거절 안하면 되는거 아니야?"
 
결국 친구의 계획은 내 열렬한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계산을 하고 나가는 우리를 보는 알바생의 눈은 좀 그랬다. 정말 많이 좀 그랬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면서 밤거리를 걷는 기분은 꽤 상쾌했다.
 
"야 이제 어디 갈까?"
 
"술 먹어야지 뭐."
 
"어디서 먹을래?"
 
"얻어먹는 입장에서 비싼 거 먹자 하기도 그렇고.. 그냥 노상이나 까자."
 
"콜. 바다로 가자."
 
"어떻게 갈까?"
 
"걸어서 가는게 어때?"
 
"나쁘지 않네. 야 근데 이제 좀 걸으면서 좀 썰좀 풀어봐."
 
"응, 야 있잖아 그러니까 내 여자친구가..."
 
지리적 특성상 내가 사는 곳은 바다가 그리 멀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친구의 호구같은 소리를 마냥 들어주며 걷던 도중 저 멀리 사거리에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 모르는 척아. 저 사람 뭐하는 걸까?"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 두시 반에 술쳐먹고 교통정리를 하시는 교통정리원님은 안 계실것 같은데."
 
"그렇지?"
 
"야 저거 말려야 하는 부분인 것같다. 가자."
 
남의 일은 굳이 신경을 쓰지 말자는 주의지만, 신경 끄고 넘어가기엔 불규칙한 동선으로 사방에 넙죽 절을하는 소싯적에 세뱃돈 강탈러로 끗발을
날리셨을 것 같은 50대 아저씨의 신들린 무빙은 너무나도 현란했고 나를 사거리 중심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사거리 중심에는 남자 네명이
서 있었다. 잠깐, 남자 네명?
 
"아저씨. 여기서 이러면 안돼요."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생이 나한테 퍼줬던 파핑파핑바나나가 알콜이 함유되어 있었던가? 혼자 중얼거리던 나는 지금 이 상황이 파악이 안됐다.
사거리 맞은 편에서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185~188정도의 신장을 가진 이목구비가 또렷한 외국인이 건너와 '술 많이 자셨어요 집이 어디세요?'  라고 말하다니. '먹다'의 높임말 '들다'보다 높은 '자시다'라는 어휘를 사용하다니.
파핑파핑 바나나안에 들어있던 파핑캔디는 사실 베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던 것일까?
 
"모르는 척아. 이거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파핑캔디가 마약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상황을 공유하는 친구가 먹은 아이스크림은 민트초코였으니까.
 
 
 
 
 
 
댄스 소울이 꺼지지 않는 아저씨를 벤치 옆에 앉혀두고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그 외국인은 호주에서 유학을 혼 학생이었다. 서울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그는 한국에 온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제주도에 와본 적이 없어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와 동행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바닷가에서 어떤 일이 생길 지 감도 잡지 못했다.
 
"저기 어때?"
 
호주형은 정말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가는 어휘구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적당히 맥주와 과자를 들고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 호주형은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Hi"
 
잠시 신경을 안 쓴 사이 호주형은, 그 근방에서 유일하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술을 먹고 있는 자리에 말을 걸고 있었다.
너무나도 속이 뻔히 보이는 호주형을 보고 나는 친구와 서로 마주보고 실없이 웃었다. 저 인간은 한국말도 잘하면서 왜저러지.
 
"친구들! 이리와!"
 
호주형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듣기엔 더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반전매력에 그 일행을 감동시켜 버렸고 우리는 자연스레 그 사람들과 술을 먹게
되었다. 쭈뼛쭈뼛 인사를 나누고 착석했다. 빌어먹게 어색했다. 호주형은 마냥 좋아만 했다. 술을 드시고 계시던 그 분들은 남자 둘에 여자 둘이었는데
남자1과 여자1은 누가 봐도 커플이 확실했고 나머지 둘도 최소 썸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호주형은 한국의 정서를 몰랐던 건지 사실 자기도   술을 많이 '자셨던' 건지 커플이 아닌 여성분에게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헤이. 너 정말 귀엽다."
 
다 박장대소를 하던 와중 남자2의 표정이 마냥 웃진 못하고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여자2와의 관계를 확신 할 수 있었다. 호주형이 그렇게 눈치가
없지는 않았는지 남자2에게 물어봤다.
 
"저 여자(여자2), 네 여자친구야?"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중에야 여자1에게 들었지만 남자2와 여자2는 헤어진 사이이고, 설상가상으로 여자2가 많이 아파 수술을 받고
몇 달만에 밖으로 나온 탓에 둘은 오늘 헤어진 후 처음 만난 거라고. 남자1은 친한 동생인 남자2가 여자2와 잘되길 바랐던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만든
것이었는데, 왠 외국인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작업을 펼치고 있으니. 상황이 참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호주형이 이 만남의 스퍼트를 끊었다. 술에 취하기 시작하니 유창한 한국어도 가라앉고 결국 영어가 방언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그보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sweet. Would you like to come with me?"
 
호주형은 걸어오던 도중 자신은 남자 둘 여자 둘로 여행을 왔었고, 방을 두개 잡았는데 남자와 여자둘이 한 방에서 자고 있어서(음?) 방이 하나 비어
있다고 말했었다. 문맥상 호주형은 그 빈 방을 도착지로 삼고 있는 듯 했다. 이 미친...
 
"저거 뭐라는 거야?"
 
"글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12 여자12 전부 영어를 못했다. sweet와 like, me 정도는 확실히 들었던 건지 달달한 술 순하리를 호주형에게 따라주었다.
나와 친구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고 굳이 번역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하필 호주형에게 술을 따라준 것이 여자2었고,
하하호호 웃으며 술을 따라준 모습에 동의를 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쭉 들이키고 호주형은 여자2의 손을 잡았다.
 
"가자."
 
손을 잡고 일어서려는 행동을 보자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것 같았다. 남자2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남자2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강하게 제지했다.
 
"no!"
 
아, 남자2는 영어를 못했다. 그 후 호주형에게 노를 스무 번쯤 더 했던 것 같다. 남자2의 신파극을 보고있자니 기분이 참 그랬다. 친한 동생의 어려움을 지켜 볼 수 없었는지 남자1은 중재에 들어갔다. 굳은 표정으로 남자 1은 말했다.
 
"둘이 술로 다이다이 함 뜨면 되겠네."
 
아?
 
"그래! 다이다이 함 뜨자!"
나와 친구는 장장 3분에 걸쳐 호주형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이다이가 'die! die!'가 아님을 설명해 주는게 가장 힘들었다. 충분히 이해한 호주형은    쿨하게 승낙했다. 져도 손해 볼 게 없는 싸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왜 남자1은 이미 꽤 취한 남자2와 호주형의 술 다이다이를 제안했던    걸까? 위기일 수록 더 X되보라는 한국식 교육이었던 것일까? 둘은 빠른 속도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잔 먹지도 않아 결과가  보였다.    남자2는 헤어진 여자친구와 몇 달만에 만나 그 속상함과 어색함을 술로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남자2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모두가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호주형이 여자2의 손을 잡고 데려가려 하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도 든다.
 
"NO! NO! 야! NO!"
 
이것은 소리있는 아우성이었다. 남자2는 기분이 몹시 상한듯 했다. 그러나 술 다이다이에서 이긴 호주형이 별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고, 남자2에게 여자2가 네 여자친구임을 인정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분위기는 급속도로 좋아졌다. 문제는 호주형이 술 다이다이의 여파가 좀 많이 강했던 것이었다.
 
 
첫 시작은 니키미나즈의 아나콘다였다.
 
두 번째는 에미넴의 without me였고 우리는 호주형이 마지막으로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말춤을 출 때까지 그의 유투브의 대한 애정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술자리는 호주형이 지나가던 바다게를 잡아 반으로 가르고, 라이터로 구워서 먹는 것을 본 남자2가 구토를 시작해서 여자2가 남자2를 부축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자리를 깨끗하게 치우고, 재밌었다는 말을 남긴 채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여자2는 남자2를 부축하고 투덜대며
걸었지만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남자1과 여자1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 나와 친구와 호주형은 터덜터덜 걸었다. 호주형이 못내 아쉬운지 친구에게 제안했다.
 
"two girls... you wanna.."
 
젠틀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놀던 호주형의 마지막 제안을 채 듣기도 전에 거절했고, 해가 뜨는걸 보며 국수 한그릇 때리고 택시타고 올라와서
천천히 걷다가 우리는 서로를 보고 한참 웃었다. 꽤 오래 기억 남을 것 같은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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