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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잡는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93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34
조회수 : 2197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5/07/30 1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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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렸을 때 나의 꿈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다정다감하게 알려주는 누나 또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로 생각해주는 
여동생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맞으면서 배우면 기억이 더 잘 되지.' 라며 패면서 공부를 가르쳐주던 큰형과 나를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호구로 생각해주는 작은형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방학 과제는 사는 곳 또는 주변의 풍경화 그리기 또는 곤충채집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제출하는 것이 있었다. 누나가 있는 
친구들은 누나와 함께 동네 뒷산에서 물감과 도화지 등 그림 도구와 간식을 들고 가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같은 분위기 속에서 풍경화를 
그리며 방학숙제를 할 때 우리 형제는....

"엄마, 학교에서 방학숙제로 그림이나 곤충채집 하래."

"엄마는 요즘 밭일로 바쁘니까, 형들하고 이야기해. 형들은 해봐서 잘 할 거야." 

"큰 형, 방학숙제로 그림이나 곤충채집 해오래. 엄마가 형들이랑 같이 하래."

"흠.. 그럼 당연히 남자라면 곤충채집이지. 가서 둘째 깨워. 뒷산으로 가자."
작은형은 어렸을 때 부터 일할 때, 먹을 때 그리고 지금은 와우할 때만 제정신으로 사는 '잠자는 농촌의 와우저' 이다.

나는 형들과 함께 방학숙제를 한다는 것과 산으로 놀러 간다는 것에 들뜨기 시작했다. 작은 배낭에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삶은 달걀과 음료수 등을 
챙기고, 며칠 전 아버지께서 숙제하라고 사다 주신 잠자리채를 들고 형들을 기다렸다. 대문 앞에서 마치 소풍 가는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들떠서 
형들을 기다리는 데 밀짚모자와 고무장화로 무장한 밭에 일하러 나갈 때 복장으로 나온 형들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큰 형은 내게 

"막내야 가서 옷 갈아입고 와. 니가 지금 놀러 가는 거냐? 넌 지금 공부하러 가는 거야." 

그러면서 나의 복장을 밭에서 일하러 나가는 복장인 밀짚모자에 아버지께서 입으시다 유행 지났다고 폐기처리 하신 허름한 긴 팔 와이셔츠 그리고 
고무장화를 신겼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포기하지 못하고 들고 있던 곤충 채집의 상징적 아이콘인 잠자리 채를 보며 

"그런 건 서울 애들이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왔어요~ 라고 표시 낼 때나 들고 다니는 거야. 가서 농약통 메고 와. 살충제도 챙겨오고."

나는 배낭 대신 은빛의 반짝이는 농약 통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잡은 벌레를 집어넣을 부댓자루를 들고 형들을 따라갔다.
지금 회상해 보니 그 모습은 마치 농촌의 보급형 고스터 버스터즈 같았다. 

"형 그런데 내가 왜 다 들고 가야 해?"

"이게 내 숙제냐? 니 숙제지?" 

산으로 가면서 벌레들만 보면 형들은 외쳤다.

"뿌려. 뿌려."

그리고 죽은 벌레들을 넝마주이가 집게로 쓰레기를 집어넣듯 난 부댓자루에 넣으며 가고 있었다. 

"형, 근데 곤충채집이 살아있는 거 잡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작은 형은 '이 멍청하고 잔인한 놈' 이러면서 

"야. 아무리 벌레지만 고문하면서 죽이고 싶냐. 그냥 한 번에 농약으로 죽이는 게 걔들도 편해."

부댓자루에는 점점 귀뚜라미, 개미, 여치, 나비 등 각종 곤충의 사체가 쌓여가고 있었다. 

"어, 방아깨비다! 곤충채집의 하이라이트!!" 

작은 형이 외쳤다. '저건 손으로 잡아야 해' 하면서 남의 집 밭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곧 방아깨비를 잡는다고 남의 집 밭을 휘젓고 
다니는 그 모습을 멀리서 흐뭇하게 지켜본 일하고 계시던 아저씨들에게 "저 쌍놈의 새끼가 남의 밭에서 뭐하는 거야!!" 라는 소리를 들으며 
밭에서 일하고 계실 아버지를 쌍놈으로 만드는 패륜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방아깨비는 결국 못 잡았다. 

산에 도착해서 우리는 세스코 직원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세스코는 생각해보니 해충만 잡는군요.) 눈에 띄는 곤충은 모조리 살상하기 시작했다.
부댓자루 안을 지켜본 큰 형은 

"흠.. 뭔가 허전해. 곤충채집이라면 장수풍뎅이, 사슴벌레도 있어야 하는 데." 

그날 온 산을 뒤져가며 장수 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찾았지만 결국 우리는 고생하며 매미 몇 마리를 잡는 데 만족해야 했다. 

집에 돌아와 부대를 털며 전리품을 확인했는데, 이건 곤충채집이 아니고 온 동네 곤충을 전멸시키고 온 수준이었다. 

"형 그런데 곤충채집 하면 유리로 된 상자 같은데 넣어서 제출해야 하지 않아?"

"우리 집에 그런 게 어딨어? 저기 쌓여 있는 보온 메리 상자 가져와 봐." 

"형, 그리고 선생님이 나눠 주신 유인물 보니까 알코올을 주사기에 넣어서 곤충의 배에 넣어야 한데. 그래야 안 썩는데."

"우리 집에 그런 게 어딨어? 냉장고 가서 아버지 드시던 소주 가져와."

곤충채집을 해 본 적이 있다는 큰 형의 말은 왠지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골고루 뿌려." 

나는 제사 지내는 경건한 마음으로 여치, 매미, 잠자리 등 곤충들에게 소주를 권했다. 원샷~
그날 잔혹한 삼 형제에게 유명을 달리한 곤충들은 촉촉이 소주에 젖어 갔다. 

후기
1. 그날 열심히 농약을 물총 쏘듯 뿌린 나는 며칠 뒤 농약 중독 증세를 보여 병원에 3일간 입원했다. 

2. 냉장고에 소주 한 병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큰 형과 작은 형을 두들겨 패셨다. 곤충채집용으로 썼다고 변명 했지만, 아버지는
무슨 잠자리가 소주를 마시느냐며 형들을 때리셨다. 형들이 매를 맞는 모습은 그날 방아깨비는 잡지 못했지만, 방아깨비가 된 듯 방아깨비가
격렬하게 움직일 때 그 모습과 유사했다. 

3. 소주도 알코올 성분이 있어 부패하지 않는다는 형의 말을 믿었건만, 술이 깬 취객이 집을 알아서 찾아가듯 곤충들은 하루 하루 지날 수록 가루가 
되어 가더니 결국 날개 등 일부 형체만 남겨 놓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결국 난 마당에서 루소의 명언을 떠올리며 외양간을 그렸다. 
출처 10세 여름 방학, 산교육을 받았던 나.

그리고 방아깨비 같았던 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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