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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같던 후배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93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32
조회수 : 3283회
댓글수 : 85개
등록시간 : 2015/07/31 12: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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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스무 살 이후 대학 다닐 때 친했던 (물론 지금까지도 제일 친하다.) 세 명의 친구가 있다. 
한 명은 군견병 출신에 개를 좋아 아니 반려견 이상으로 사랑하는 친구, 다른 한 명은 나와 비슷하게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노안의 친구
(이 둘은 같은 과였고, 그 중 한 놈은 같은 영화 동아리였다.)
마지막은 암내 나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은 같은 학교도 아닌데 대학생활의 많은 시간을 우리 학교에서 보냈다.) 이다.
앞으로 글에서 표현은 군견, 노안 이렇게 쓰겠다.

대학 신입생 시절 부터 나, 군견, 노안은 항상 붙어 다녔고, 학교가 다른 암내는 셋이 술 먹는 자리에 우연히 동석하였다가 나머지 녀석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암내는 뒤늦게 우리 무리에 영입된 자신이 삼총사의 달타냥 같은 존재라고 했으나, 에미넘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달타령 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냄새나는 주제에 감히 주인공 타이틀을 차지하려 하다니...'

1학년 때 나란히 넷 다 학사경고를 받고,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다녀온 우리는 복학 후에도 모든 수업을 같이 받는 등 항상 뭉쳐 다녔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여신 같은 존재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바로 재이수를 받던 1학년 전공 수업시간이었다.

흔하디흔한 조별 과제를 준비할 때 어느 후배도 선뜻 우리 조에 가담하려 하지 않았다. 하긴 정상적인 학점을 받고 싶은 새내기였으면 
학교에 개를 끌고 다니는 이상한 놈과 한국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되는 국적 불명의 동남아인, 그리고 볼펜 잡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귀에 낀 이어폰이 보청기처럼 보이는 어르신과 함께 조별 과제를 한다는 건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 셋이 해야 될 거라는 상황 판단에 외부에서의 인재 영입을 포기하고 조 이름을 짜고 있었다. 

"쓰리 아웃 어때? 어차피 우리 셋 다 아웃인데.." 나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조 이름을 제안했다. 

"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로 '개발도상국' 어때?" 노안은 역시 70년대 격동의 산업 역군으로 일했던 젊은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 셋이 어떤 것을 한다는 의미인 "뜨리 떰띵" 어때?" 군견은 매너 있는 신사의 나라 영국식 발음으로 말했다.
노안과 나는 순간 그것을 생각했다. '이 미친.. 매일 개랑 놀더니 발정 난 개새끼가 됐네."라며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그런데 신입생 하나가 '선배님 조에 자리 있나요?'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여자 후배였다.

"자리는 있는데, 우리 셋인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같이 할 애도 없는데요."

빈 깡통같이 텅 빈 두뇌를 가진 습관성 치매가 20대에 이미 찾아 온 노안과 지푸라기 짚는 심정으로 대학을 다니는 허수아비인 나, 그리고 
원작에서는 사자였지만 현실에는 그냥 똥개인 군견과 함께하는 그녀가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같이 여겨졌다. 결국 우리 조의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였다. (그러고 보니 토토는 샤파 였네...) 샤퍄=군견이 기르던 개 이름

도로시는 조별 과제를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에도 우리 무리와 자주 함께했다.
매 학기 수업을 함께 받는 건 물론이고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4구를 배웠고, 2대 2로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도 함께 했다. 
점점 도로시는 우리 사이에서 당돌한 여자 후배에서 점점 여신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도로시는 신이었던 관계로 우리에게 관대함을 베풀기도 했는데, 노안과 나의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을 희생시켜 미팅을
시켜주기도 하였으며 (당시 군견은 자신은 이미 애견이 있으므로, 더는 여자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 같다며 거절했다. 병신....)
본인은 술을 잘 마시지 못했지만,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셋이 취하면 오빠들을 하나씩 집으로 귀가 시켜주는 등 듬직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그런 여신 같은 도로시에게 처음으로 실망한 사건은 도로시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였다.
도로시가 3학년, 우리가 4학년이 되었을 때 도로시 외모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렌즈를 끼고, 화장 하고 스탠드 갓 등 같은 치마를 입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설마 했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도로시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캠퍼스에서 도로시와 남자친구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봤을 때 우리는 모르는 척 했지만, 도로시가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 남자친구를 소개해 줬다. 

"오빠들 내 남자친구야!" 과는 기계공학과고 나이는 오빠들하고 동갑이야." 

아무리 우리와 동갑이었지만 녀석은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지를 빼앗은 이단 튀르크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뒤 우리 셋은 잃어버린 성지를 되찾으려는 비장한 마음으로 십자군, 아니 동맹을 결성했다. 

"샤파 (군견이 기르던 개 이름) 시켜서 밤길에 물어 버리라고 할까?" 군견이 샤파의 목줄을 세게 움켜 잡으며 말했다.

"사람 보면 좋다고 꼬리 치고, 배 뒤집고 뒹구는 놈한테.. 뭘 바라냐.."

"도로시의 약점을 공개해버려?"

"뭐? 저그 못하는 거? 닥쳐! 도로시의 최고 약점은 우리 셋이야." 

결국, 우리는 도로시의 첫 연애를 친오빠의 마음으로 응원해주기로 했다. 도로시가 기계공학과 녀석과 좀 더 오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하길 
바랐으나, 도로시는 녀석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다. 우리 셋 중 누구도 도로시에게 왜 헤어졌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는 게 오히려 도로시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줄 거라 생각했다. 
도로시가 원하는 대로 술을 사주고, 노래방에 가서 미친놈들처럼 방방 뛰며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도로시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노래방에서 우리 손에 이끌려 같이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 대열에 끼어 춤추며 웃던 도로시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빠들 너무 고마워..."

"아니야.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오빠들 덕분에 나 기분이 완전히 풀렸어."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는데 울다가 웃던 그 날의 도로시의 모습은 예뻐 보였다.

나중에 기계공학과 녀석이 도로시와 전에 사귀던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쳤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셋은 분노해 샤파를 앞세워 기계공학과로 쳐들어 
갔지만, 기계공학과의 일방적인 남녀 성비를 본 뒤 '여기서 까불다가, 사람 세 명과 개 한 마리가 사망했다'는 뉴스에 나오기 싫어 우리는 
기계공학과 앞에서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은 뒤 도망쳤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린 노안은 남자 화장실 변기에 응가를 하고 물을 내리지 않는 
테러까지 저지르고 나왔다. 그리고 그걸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더러운 놈...

바보 같은 우리를 대학 교육으로는 포기했는지 사회로 내보낼 때 도로시는 졸업식에서 우리에게 꽃다발을 하나씩 주며 우리의 미래를 축복해줬다.

"도로시. 오빠들 없어도 꿋꿋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괴롭히는 사람 있거나 심심하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난 오빠들이 사회에 나가서 제대로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게 더 걱정이다."

그 뒤 학교 다닐 때 만큼은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모일 때 도로시도 함께 했고, 1년 후 도로시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로시가 똥차 세 대를 추월해 우리보다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조별 모임 네 명은 나이가 들어
처음 조를 결성하고 술을 마셨던 추억의 술집에서 도로시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다.

"도로시 사실 나 고백할 거 있는데, 나 학교 다닐 때 너 좋아했었다. 그런데 내가 너랑 사귀어서 잘 되면 좋은데 만일 헤어지면 다른 친구들이 
너를 다시는 못 볼 거 같아서 그냥 포기했었어." 술을 마시던 노안이 웃으면서 먼저 고백 했다. 

"나도 사실 샤파 때문에 소개팅하지 않았던 게 아니고, 너 좋아했었거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팅은 차마 못 하겠더라고.
그리고 우정 이냐 사랑 이냐의 갈림길에서 난 우정을 택한 거야. 고마운 줄 알아! 이 새끼들아." 군견이 우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야.. 성성이 너는?"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난 절대 CC는 안 해. 그게 나의 캠퍼스 라이프 원칙이었어."

"그런데 도로시 너는 혹시 우리 중에 좋아하는 놈 없었냐?" 군견이 도로시에게 물었다.

"난 오빠들 한 번씩 다 좋아했었는데 몰랐구나. 처음에 개를 데리고 다니던 군견 오빠가 잘생긴게 좋아서 사실 조별 모임 할 때도 오빠들
조에 들어간다고 한 거였어. 그런데 오빠들 알게 되면서 노안 오빠는 생긴 것과 다르게 순수하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어서 좋아했고, 성성이 오빠는 
말도 재미있게 하고 가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있어서 좋았어. 근데 나도 오빠들한테 고백은 못 하겠더라고." 

우리의 여신이었던 도로시가 한 남자의 여신이 되는 날. 그동안 봤던 어느 날보다 도로시는 아름다웠다. 아니 눈부신 진정한 여신의 모습 이었다.
그리고 우리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찍고, 함께 사진을 찍을 때 도로시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오빠들이 와줘서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씩 안아주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부터 나와 군견이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오빠의 마음으로 흐뭇하고 바라보고 있을 때 
순수하고 마음이 착한 노안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지금 도로시는 1남 1녀의 엄마로 열심히 살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예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남편과 함께 
우리들을 만날 때 아직도 그녀가 여전히 스무 살 여신의 모습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어 줘서 고맙다. 
출처 나, 개를 좋아하는 친구, 노인공격을 받는 친구

그리고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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