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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동네 사람들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94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44
조회수 : 2246회
댓글수 : 37개
등록시간 : 2015/08/04 11: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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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서울에 온 지 이십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지하철 환승도 제대로 모르던 촌놈이 이제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도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다닐 정도로 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 물론 외모는 여전히 서울 사람들보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친근하다는 게 문제지만..

서울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큰 친절을 베푼 적도 없는데 주변 분들에게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지내는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가면 아이에게 주라며 과자나 사탕 같은 걸 하나 더 주시고는 한다. 
물론 우리 아이는 아직 못 먹기 때문에 내가 먹긴 하지만 후훗. 그리고 요즘은 내가 먹고 싶은 걸 달라고 하기까지 한다. 
동네의 맥가이버 같은 존재인 철물점 아저씨도 얼마 전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출장비도 받지 않으시고, 수리를 해주시고 가셨다.
물론 '이 사람, 허우대만 멀쩡했지 허당이네' 라며 와이프와 아들 앞에서 나를 디스하고 가시긴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들을 위해 베풀었던 선행이나 친절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억나는 건 총각 시절 자췻집이 있는 골목에 쓰레기를 가끔 모아서 버리고 (자주는 아니고 매주 토요일 한 번 정도) 그리고 옆집 
반지하에 혼자 폐지를 모아 생활하시는 할머니께 회사에서 나오는 폐지와 책, 그리고 퇴근하다 박스를 보면 가져다 드린 정도밖에 없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자취방은 골목 입구에 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고,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를 버리고 가곤 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매일 쌓여가는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쌓여있는 쓰레기 앞에서 욕을 해보기도 잡히면 쓰레기를 먹여 버리겠다!!라고
소리를 지르셔도 쌓이는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게도 혹시라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보면 '잡아서 족쳐' 라고 지시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도 나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한 번도 보거나 잡아서 족칠 기회는 없었다. 
결국, 나는 할머니께 인터넷에서 본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할머니, 경고 문구를 하나 적어서 붙여 놓으면 어떨까요?"

"몰러.. 니가 혀. 나는 무식혀서 글을 잘 못 써."

"제가 쓰면 효과가 없죠. 할머니께서 쓰셔야 보는 사람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버리지 않을 거 같아요."

평소 욕이라면 일가견이 있으신 할머니에게 어떤 표현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펜을 잡으신 할머니는 순수한 펜팔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신 듯 
너무 순수하게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라고 글을 쓰셨다.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찰진 욕의 향연이 나올 거라는 나의 상상은 어긋났다. 
나는 할머니께 당시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방법 할매의 글을 보여 주며 할머니께 이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드렸다.

"근디 길거리에 욕 써서 붙여 놓았다가 나 잡아가면 어떻혀.." 

"여기 할머니 집 벽이에요. 제가 책임질게요. 누가 안 잡아가요."

할머니는 어떤 찰진 욕을 적으실까 고민하시더니 '쓰레기 버려봐라. 잡히면 손모가지 작살난다.' (맞춤법에 틀려도 현실감을 위해 그대로 적었음.)
라고 적으셨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표현이었지만 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을 쓰레기를 버리는 젊은 사람들이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경고문에도 집 앞의 쓰레기 불법 투기를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내가 토요일 아침마다 50리터 쓰레기봉투를 사서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할머니께서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마시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50리터 쓰레기봉투가 커 
여유 공간이 남아 자췻집이 있는 골목길의 쓰레기들을 매주 모아 버리게 되었다. 자기 집 앞에 있던 무단 투기 된 쓰레기를 치울 때 '왜 우리 집 앞 
쓰레기를 치우냐며'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셨던 분들도 나중에는 '우리가 치워야 하는데' 하시며 미안해하시거나, 같이 치우는 것을 도와주시고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쓰레기 무단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젠장

그리고 예전 자취를 할 때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옆의 반지하 사는 할머니께서 젊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면박을 당하고 계신 것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할머니께서 폐지나 고물을 수집하셔서 생활하시는 거 같았는데, 주워오신 폐지나 고물 때문에 집 앞이 더러워지고, 보기 
좋지 않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왜 그랬는지 할머니를 봤을 때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서인지 토요일마다 쓰레기 정리할 때 한 번씩
할머니 집 앞에 있는 폐지와 고물을 같이 정리해 드렸다. 그리고 가끔 회사에서 나오는 폐지 (회사 성격상 엄청난 폐지가 발생한다.)를 가져다
드리고 퇴근하다 박스 같은 게 보이면 할머니께 드리고는 했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드리고는 한다. 

어제 간만의 휴가를 맞아 집에서 소파와 혼연일체 되어 밀린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데리고 온 와이프가 
어린이집 앞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내 이름을 말씀하시며 '얘가 성성씨 아들이 맞죠?' 하시며 내복이 들어 있는 봉투를 주고 가셨다고 한다.
와이프는 그리고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삼삼이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가끔 본 할머니인데, 삼삼이를 유심히 바라보고는 하셔서 처음에 이상한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경계심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삼삼이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와이프에게 오더니 말을 걸고 내복을 주셨다고 한다. 와이프에게 

"너 그래서 그 할머니 그냥 보내 드렸어?"

"아니 내가 오빠 같은 줄 알아. 음료수 하나 사서 드렸어. 안 받으신다고 손사래 치시는 걸, 그냥 조끼 주머니에 넣어 드리고 왔어.'

"잘했어. 오랜만에 칭찬받아 마땅한 소비활동을 했네."

바로 아들을 안고 할머니를 찾으러 나섰다. 할머니 댁에 계시지 않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는 데, 저쪽 멀리서 할머니께서 폐지를 모은 
손수레를 끌고 오고 계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내복 같은 걸 사주시고 그러세요. 뭐 해드린 게 있다고."

"아니에요. 내가 도움 많이 받았는데요. 애기 볼 때마다 아저씨랑 닮아서 맞나 아닌가 싶었는데. 슈퍼에 물어보니까 아저씨 아들이 맞더라고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삼삼아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려." 삼삼이는 요즘 예절 교육을 받아서 '감사하다고 해' 그러면 고개를 까딱하고는 한다.

말 잘 듣는 삼삼이가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고 할머니께 인사드렸다. 

"아이고, 고놈 참 귀엽네." 

"삼삼아 할머니께 고맙다고 뽀뽀해드려. 잘 입겠습니다." 라고 말씀 드려 (물론 아직 아들은 아빠, 엄마, 까가, 이거 밖에 말하지 못한다.)

여전히 말 잘 듣는 삼삼이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뽀뽀하려 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내가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써서 더러워서 안 돼요." 라고 하셨지만 이미 뽀뽀 상대를 보고 돌진하는 아들을 막을 수 없었다.

"괜찮아요. 삼삼이한테는 친할머니 같으신 분이신데요. 앞으로 삼삼이 보시면 예쁘다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하세요. 얘가 어르신들을  
좋아하고 자기 예쁘다고 하면 워낙 좋아하는 애라서요. 절대 저나 저희 와이프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앞으로 저희 아들 보시면 마음껏 예뻐해주세요." 

할머니께서 사주신 내복은 삼삼이에게는 컸다. 하지만 삼삼이를 안아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 휴가 내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스무 살 때도 그리고 곧 마흔이 될 내게 여전히 친절하고, 사람으로 살기 좋은 동네인 것 같다. 

하지만 제발 주차 좀... 
출처 황금 휴가 기간 중 만화책만 보는 나
어린이집에서 여자친구가 생긴 18개월 된 아들
그리고 아들에게 선물을 주신 고마운 할머니

쓰고 나서 보니 그리 웃기지 않네요. 글쓰기 전 생각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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