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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이 생긴 이유
게시물ID : sisa_347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유대일
추천 : 1
조회수 : 1548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3/01/13 18:36:25


1. 광주사태 직후인 1981년은 물론이거니와 1985년까지만 해도 선거에서 지역감정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2. 지역감정의 최초등장은 1988년으로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4자필승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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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제1대 국회의원선거 부터 5.18 광주사태(참고 : 광주사태는 1980. 5. 18에 발생했다)직후인 81년 제 11대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까진 지역 지지율로는 어느정당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지  알수가 없을 정도로, 특히 영호남의 분열은

존재하지 않았다.







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민정당 38% 민한당 22%
전남…민정당 31% 민한당 22%
경북…민정당 38% 민한당 19%
경남…민정당 34% 민한당 15%
부산…민정당 31% 민한당 27%



5.18광주 사태 직후인 81년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을 보면

5.18 광주사태 때문에 전라도 몰표가 생겼다는 주장이 완전한 허구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수가 있다.

그들말대로라면 전두환은 이당시 전라도민을 학살한 악마여야 하는데,오히려 

영남지역보다 호남지역이 전두환의 정당인 민정당 지지율이 높은것은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85년 12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36.8% 신민당 26.4% 민한당 18.8% 국민당 11.8%
전남... 민정당 35.7% 신민당 25.3% 민한당 18.0% 국민당 10.2%
경북... 민정당 27.8% 신민당 23.5% 민한당 2.9% 국민당 10.4%
경남... 민정당 31.1% 신민당 26.7% 민한당 2.4% 국민당 10.8%
대구... 민정당 28.3% 신민당 29.7% 민한당 18.5% 국민당 15.6%
부산... 민정당 27.9% 신민당 36.9% 민한당 23.6% 국민당 10.4%



광주사태후 5년이 지난 제12대 국회의원선거의 정당별 득표율이다, 전두환의 비리가 한두개씩 터져나오는 시기임에도 

호남지역의 민정당지지는 여전하다, 오히려 영남지역 득표율이 감소하였다. 

1985년까지도 특정지역정당 몰표는 커녕 지역감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럼 대체 지역감정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28.7% 민주당 1.3% 평민당 61.4% 공화당 2.4%
전남... 민정당 22.8% 민주당 0.7% 평민당 67.9% 공화당 1.2%
경북... 민정당 50.9% 민주당 24.5% 평민당 0.9% 공화당 15.9%
경남... 민정당 40.2% 민주당 36.9% 평민당 1.0% 공화당 10.3%
대구... 민정당 48.1% 민주당 28.3% 평민당 0.6% 공화당 13.1%
부산... 민정당 32.1% 민주당 54.2% 평민당 1.9% 공화당 6.8%




1987년, 김대중이 민주당을 깨고 나가서 평민당을 창당하고 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언제도 볼 수 없었던 김영삼의 민주당이 호남에서 1% 내외의 지지율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김영삼은 결국 민자당을 창당했다. 전남북은 평민당에 65% 내외의 몰표를, 대구경북은 민정당에 50% 내외의 몰표를, 부산경남은 민정당과 민주당에 비슷한 몰표를 주는 극한적인 지역 대립의 단초가 드디어 시작되고 말았다.

물론 전라도 사람들의 억울한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김대중이 87년 대선에서 4자 필승론이니 뭐니 하면서 지역 분할 구도를 그리기 시작한 게 과연 지역감정이나 오늘날의 병적인 투표성향과 무관할까?

 당시 김대중은 경북은 노태우가, 경남은 김영삼이 갈라 먹고 충청은 김종필이 차지한 뒤 자신은 전남과 전북에서 압승하고 수도권에서 고정지지층과 호남표의 단결로 필승할 수 있다는 4자필승론을 내세우고 경선을 거부한 채 당을 깨뜨리고 나갔다. 김대중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김영삼에게 대선 주자를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김영삼은 레이건도 70이 넘어 대통령을 했다며 이를 거절했고 결국 총재 김영삼에 비해 열세였던 김대중은 당을 깨버리고 평민당을 창당했다.

4자필승론은 그럴 듯한 이론이긴 했다. 영남의 분열은 지금도 통하는 선거전략 아닌가.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돌아가지 못했으니 김대중은 김영삼에 이은 3위로 대선을 마쳤고 이 때 생긴 지역 몰표현상은 두고두고 그에게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는 진정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 지역몰표 탓에 피해만 보고 산 억울한 인물인가?
 

누군가가 지역차별을 강변하면서 자기 지역에서 우리들의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외쳤다면 충청, 강원 그 어디라도 지역감정의 불은 붙어 버렸을 것이다.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피해자라가 아니라 이 땅에 지역감정을 깊고 깊게 뿌리박히게 한 주역이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번에 정권교체 못하면 지금은 어느정권에서도 버림받는 호남이지만 끝내는 이나라 전체와 세계에서 버림받는 호남이 될것"

 

호남이 차별받기 때문에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과연 저 주장 대로 호남은 차별,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일까?


과연   경남지방의 발전은 지역감정에 의한 차별적인 처사였을까? 아래 자료를 보자



연도별_수입2.jpg

연도별_수출2.jpg


연도별 수입 수출 현황(출처: http://www.kita.net/ 위의 6개 나라는 2012년 현재 수출 수입 상위 6개국으로 선정)

위의 자료를 보면 70년대 우리나라와 가장 많은 무역을 했던 나라들은 압도적으로 일본과 미국임을 확인할수가 있다.

중국은 현재는 우리나라 무역1위인 국가이지만 저당시에는 우리나라와의 무역이 없었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하기 이전이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경부고속도로등에 투자하는 것은 차별적 정책이었을까? 

아니면 국가의 최대 발전을 위한 - 국익을 위한 결단인것일까

이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같은 답을 할수밖에 없을것이다.


그렇다해서 아예 호남쪽은  투자를 안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효율성 때문에 영남권보다 투자가 덜할 수 밖에 없었으나, 박정희는 호남지역을 위해 국책사업으로 여수 공업도시를 대표로, 굵직한 사업들을 많이 투자했다.


광주 내연 준공(1962. 11. 15)
- 제2비료(호남비료) 나주공장 준공(1962. 12. 28, 현 L/G화학 나주공장)
- 동진강지역종합개발공사 착공(1963. 3. 15, 준공 : 1972. 12. 31, 김제 부안)
- 전남지구 6천여 정보 간척공사 기공(1965. 5. 18) (2천만평)
- 군산화력발전소 기공(1965. 12. 1, 준공 : 1968. 10. 31)
- 광주공업단지 착공(1966. 12. 16)
- 여수 제2정유공장 기공(1967. 2. 20, 준공 : 1969. 6. 3)
- 전주 제1공업단지 기공(1967. 3. 22)
- 최대의 공군 광주기지 준공(1967. 5. 25)
- 전남 고흥 간척사업 완공(1969. 7. 15)
- 호남 야산개발단지 준공(1969. 10. 6)
- 호남고속도로 착공(1970. 4. 15, 개통 : 1973. 11. 14)
- 남해고속도로 착공(1972. 1. 10, 개통 : 1973. 11. 14)
- 군산항 개발 확정(1972. 11. 24)
- 전주, 이리, 광주, 목포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 호남선 복선 준공(1978. 3. 30, 대전~이리)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을 박정희 탓으로 돌리려는 자들은 보아라
비록 미국 일본등, 주요 수출 국가를 공략하기위해 영남에 투자를 더할수밖에 없었으나
결코 호남지역을 등한시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불과 20여년 전까지만해도, 지역감정이라고는 찾아볼수없는,
단합된 국가 정신으로 산업화를 이뤄낼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팽배해 있는 이 망국적 지역감정은 누가 만들어 낸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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