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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다닌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05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21
조회수 : 1697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9/11 01: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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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내 마음의 안식처, 내 고향은 홍대이지만
그 전에 타지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다
 
엄마의 고향 인천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아주 어렸을때는 인천 가좌동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 살았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살던 곳 같은 건물 여자애 이름이 백송이였던가 천송이였던가...
한송이였던 나는 어린마음에도 울컥해서 만송이나 억송이로 이름을 바꿔달라고 떼쓰기도 했다
그후 엄마친구딸 조송이가 나타나면서 나는 입을 닥쳤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직전 우리 가족은 홍대로 이사를 했다
그때부터 내 어린시절 기억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서교동에서도 두어번 이사를 다녔던 것 같다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다가 당시 동네에 큰 규모로 새로 생긴 유치원을 보내려
엄마는 치마를 마구마구 휘둘러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나는 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의 유치원을 갈 수 있었고
미술학원도 함께 운영했던 곳이기에 처음으로 그림을 접할 수 있었다
소풍이나 수련회때는 김영만 아저씨나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가 나타나서 같이 사진도 찍어주셨다
 
그렇게 앨리트 과정을 밟던 나는 갑자기 다시 인천으로 가게됐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금와서 엄마한테 왜 그때 인천으로 이사했냐고 물을만큼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유치원 중퇴생이라는 오명을 안고 인천시 남구 숭의동으로 이사를 가게됐다
 
7살의 반이 지나가던 시기였던터라 이사 후에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다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냥 집에서 강아지랑 놀거나 가까운 수봉공원에 올라가 비둘기 밥주는 일이 내 하루일과의 전부였다
 
시간은 금세 흘렀고 나는 숭의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새 옷을 입고 가슴팍에 커다란 이름표를 달고 빨간구두를 신었던게 아직도 선명하다
이상하게도 어릴때는 친구들틈에서 인기가 제법 좋았다
1학년때 짝꿍이자 내 생애 첫 짝꿍과는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당시 내가 반에서 젤 예뻤다고 한다
물론 내가 술을 사줘서 그런말을 한건 아닐거라 믿는다
 
2학년이 되었고 나는 부반장이 됐다
선생님은 부반장이 됐으니 반에 라디오를 사오라고 하셨고
엄마는 당시 젤 좋은 큼지막한 라디오를 사주셨다
반에는 나말고 남자 부반장이 한명더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씨 성을 가진 남자애였다
굉장히 까불거리고 촉새같은 스타일이어서 나는 그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남자 부반장이 날 좋아한다고 대뜸 고백했다
나는 정말 창피했고 갑작스런 고백에 그 상황이 싫어서 일부러 고개를 돌려 모른척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께서는 그 남자아이를 내쪽으로 와락밀어 우리가 껴안을 수 있게 했는데
너무 당황스럽기도하고 창피해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자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때 남자의 품을 처음 알았는데..왜 나는 좀 더 즐기지 못했나
어리석은 내 자신을 반성해본다
 
그리고 2학년 2학기
나는 다시 홍대로 가야했다
그 이유도 아직까지 모른다 그냥 흔히 다들 이사다니듯 다닌거라 생각하고 묻지 않았다
 
전학간 학교는 홍대에 자리한 어느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도 낯설었고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동네도 낯설었다
당시에는 어린아이들틈에서 서울이 아닌 타지역에서 전학온 것이 굉장히 시골에서 전학온듯 여겨졌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를 신기해했다
그마저도 조금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던 기억이난다
그러다 짝꿍이 된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후에 내 유치원 사진첩에서 그 아이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발견돼 초등학교 내내 베프로 지내기도 했다
역시 우리나라는 학연, 지연이 젤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9살때 느끼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유치원중퇴라는 학력컴플렉스를 어느정도 치유하고 잘 지낼 수 있었다
당시만해도 유치원졸업과 유치원중퇴는 슬기로운 생활이나 바른생활을 하기에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지금껏 쭈욱 홍대에서 지냈다
홍대안에서도 몇번 이사를 다니긴 했지만 홍대를 벗어나진 않았다
홍대 기찻길이 있을때도,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던 먹자골목이 있을때도, 와우산 뒷편 판자촌이 있던 시절도,
지금 국민은행자리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20년 전에도 은행이었던 것도 모두 다 기억난다
 
성인이 돼서 처음 술을 마신곳도 홍대였고
친구들과 뻗을때까지 술을 퍼마셨던 곳도 홍대였고
길거리에 빈대떡을 부쳤던 곳도 홍대였고
남자친구가 생겼을때 데이트를 했던 곳도 홍대였고
남자친구와 길거리에서 싸웠던 곳도 홍대였고
재수생 생활이 끝나던날 축하주를 마신곳도 홍대였으며
엄마와 저녁이면 산책했던 곳도 홍대이며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도 홍대였다
 
33년 인생의 90%를 보낸 이곳을 며칠전 떠나왔다
물론 지금 내가 이사한 곳도 홍대와는 그리멀지 않으며
오히려 친한친구들이 밀집해있는 곳이기에 생활은 더욱 좋아졌지만
오늘같은 새벽 슬리퍼 찍찍 끌고 집앞에 걸어나가 혼자 소주한잔 할곳이 없어졌다는게 정말 아쉽다
혼자 술을 즐기는 나는 홍대 언저리에 단골가게가 많아 언제찾아도 부담없이 한잔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아지트도 없고
번화가로 나가려면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 이사를 했기에
집을 술집으로 만드리라 결심했다
가장 자주 즐기는 맥주부터 쌓아놓고 처음처럼 두어병은 꼭 냉장고에 비치해야하며
가끔가다 마시는 보드카나 봄베이진은 작은놈으로다가 쟁여놓고
혼자 주접떨때 꺼내마실 싸구려 와인이나 캡틴큐급 위스키도 사다놔야겠다
바쁘다
 
술은 내친구
 
 
 
 
 
 
출처 좀 전에 코에 피지 짠 나의 미끄덩거리는 손가락

www.lilir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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