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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이민을 했을 때 동생은 아주 어렸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한국어로 글을 읽고 스스로 욕심을 내 한국어 공부를 했지만,
동생은 관심이 없어서 곧 한국어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현재 동생의 한국어 실력은 초등학생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도 쓰기보다는 말하기가 더 나은 듯 하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항상 한국어로 말을 한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싸울 때도 ‘그만해라.’가 아니라 ‘한국어로 하랬지.’라고 하신다)
01.
동생이 쓰는 높임말은 희한하다.
‘-다.’로 끝나는 문장의 끝에 그대로 ‘요’를 가져다 붙인다.
예를 들면,
‘엄마, 다 했다요.’
‘아빠, 그건 좀 아니다요.’
‘큰일 났다요.’
이런 식이다.
나도 한번 따라 해보려 했는데
부모님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 관뒀다.
02.
동생은 나한테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이름을 부른다. 외국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리고 반말을 쓴다.
서로 화가 나있는 상태에서는 동생의 그런 말투가 상당히 신경에 거슬린다.
‘께소가 먼저 시작했잖아.’
‘너 이게 어따 대고 누나한테 반말이야?’
‘맨날 그러는데.’
후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03.
동생이 한국에 관련해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과 ‘음악’이다.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데,
아이돌이 아닌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이문세 (<옛사랑>을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김광석이다.
한 번은 내가 아버지의 차 안에서 나오는 노래에 ‘어? 이거 누구지?’라고 하자
동생이 정말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김광석을 모르냐?’라고 답했다.
누가 보면 동생이 한국에서 쭉 자라온 줄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4.
또 음악에 대한 얘기다.
그때 우리 남매는 방학을 맞아 둘이서 한국에 와 있었다.
어떤 방송에서 나온 O15B의 <슬픈 인연>이라는 곡을 듣고 동생이 내게 물었다.
‘아까 그거 노래 제목이 뭐야?’
‘응? <슬픈 인연>일 걸.’
‘응.’
잠시 후. 컴퓨터에서 아마 노래를 찾고 있던 동생은 내게 다시 물었다.
‘께소, 제목이 틀린 것 같은데.’
‘응? 그거 맞아. 봐봐. 누나가 찾아볼게.’
검색창을 보니 동생은 <슬픈이년>이라는 곡을 찾고 있었다.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그 후 며칠간 나는 동생을 ‘이년아’하고 불렀다.
05.
동생은 이상하게 사자성어에 집착을 한다.
아마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다지 많은 사자성어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동생이 사자성어를 쓰는 상황은 그 사자성어와 100프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동생은 특히 ‘다다익선’을 자주 이용한다.
상황 1:
‘야! 조금 이따가 밥 먹을 건데 왜 샌드위치를 두 개나 사 먹어?’
‘다다익선이니까.’
상황 2:
‘게임 얼마 전에 샀는데 뭘 또 사냐?’
‘다다익선이지.’
그냥 자기 좋을 때 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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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이제야 알겠다.
출처 | 요즘 남매분들 이야기를 재밌게 읽고 있어서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써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