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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39)
게시물ID : pony_257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6
조회수 : 50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1/13 23:09:54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담배 두개피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된거에요."

 

"거 참.. 허허,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그렇게 말한 뒤, 인수형은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들어가보니 양로원은 시끌벅쩍했다. 그 이유는 바로 양로원에 설치되어 있는 노래방 기계 때문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은 핑키 파이였다.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잊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비내리는 호남선을 아주 구성지고 맛깔나게 부르고 있었다. 노인들은 박수치고 춤을 추며 흥겨워했다. 저런 것이 바로 자원봉사라고 말할 수 있는 행동이리라.  레리티는 어떻게 있나보니 수연이와 함께 양로원 구석에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난 인수형과 같이 그 자리에 합석했다.

 

"어휴 레리티는 어쩜 이리 머리카락이 고와? 응?"

 

할머니가 레리티의 갈기를 만지면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레리티는 고개를 내리깔고 도도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털도 보송보송하니, 아롱이보다 훨씬 부드럽고."

 

"과찬이세요."

 

레리티 때문에 찬밥 신세인 수연이는 묵묵히 사과 껍질을 깎고 있었다. 아무래도 레리티에게 이목이 집중되다보니 제대로 된 얘기를 나눌 수 없었던 탓이리라. 할머니들은 인수형이 자리에 앉자, 그에게 말했다.

 

"꺽정이, 밥은 먹었는가?"

 

"네 먹었죠."

 

"그려. 밥 잘 챙겨먹고 다니고..!"

 

형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 뒤,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편지봉투였다. 택배를 하면서 일당으로 받는 그것이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받지 않고 툭, 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휴, 넌 왜 맨날 이런 걸 가져오고 그러냐. 내가 색시감 가져오랬지 이런거 가져오랬냐."

 

"엄마는 왜 맨날 색시감 색시감...이래요."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고 언니! 말 안해도 꺽정이가 다 알아서 해요."

 

그리고 곧장 수연이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여기 이 아가씨도 참 곱고 예쁘구만. 꺽정이 여자친군가..?"

 

수연이는 당황해하며 바로 대답했다.

 

"아뇨!"

 

그러자 인수형은 뭔가 실망한듯한 모습으로 허허 웃었다.

나는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그런데 인수형 별명이 왜 꺽정이에요?"

 

"아 그게..."

 

인수형이 이 양로원에 처음 온 것은 고등학생때였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배가 고팠거든. 집이 무척 가난해갖고.."

 

그 때는 양로원 바깥에 아궁이가 있어서 밥을 그곳에 지어먹었다. 그래서 인수형은 몰래 아궁이에서 식은 밥을 꺼내어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어느 할아버지에게 들켰다고 했다.

 

"지금은.. 안계시지."

 

그 할아버지는 인수형을 크게 혼냈다고 했다.

 

"지금도 생각이 나. 왜 밥을 그지처럼 그따구로 쳐먹고 지랄이야 지랄은. 밥 먹고 싶으면 달라고 그라믄되지 네가 그지새끼여 뭐여."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인수형은 처음으로 양로원에 발을 딛게 되었다. 형은 고아였기 때문에 이 어르신들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고아원에서 가출한 뒤에는 이 양로원에 아예 박혀서 살게 되었다.

 

"나이 차면 나가야하는데 미리 나간거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눈치가 보이거든. 동생들 밥 뺏어먹는거니까."

 

뭔가 가슴 찡한 사연이었다.

아무튼 그렇게해서 형은 어르신들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간간히 용돈 받는 식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처음 인수형을 이곳에 불러들였던 할아버지께서 '넌 평생 이러고 살 수는 없다. 도시로 나가서 취직을 해라. 공장에 들어가던, 기술을 배우던, 돈이 되는 일을 해라.' 라고 하셨다. 그래서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했다. 거기서 나오는 월급 중 일정 부분은 계속 양로원으로 부쳤다. 그렇게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임꺽정'이라는 사극이 방영됐다고 했다. 형은 그 드라마를 보고서 너무 감명을 받아서 자신도 임꺽정처럼 살고 싶다고 양로원의 어르신들께 전화를 드리며 누누히 말했다고 했다. 임꺽정은 의적이었다.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던 홍길동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는 도둑이 되기는 싫으니 이런 식으로 자신이 버는 돈을 어르신들께라도 나눠드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살던 어느 날,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터저벼렸다. 다니던 공장은 문을 닫았고, 사장은 밀린 임금을 띄어먹고 도망갔다. 하는 수 없이 인수형은 다시 양로원을 찾아야했다. 그 때, 슬픈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빌려쓴 사채값을 갚으라면서 어느 할아버지를 찾아온 빚쟁이들이 양로원을 난장판으로 만든일이 있었다. 그 때 인수형은 그 빚쟁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었고, 다시는 양로원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꺽정인거야."

 

"아..."

 

결국 싸움을 잘해서 꺽정이였던 거구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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