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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응징으로 우리민족의 무서움을 보여야 할때라 생각함
게시물ID : humordata_441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병가자
추천 : 5/9
조회수 : 1111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03/12/01 22:50:32
짜빈동 전투 (Battle at Tra binh dong) 1967년 2월15일 새벽3시 해병2여단(청룡) 3대대 11중대 전술기지에 월맹군 1개연대가 압도적인 병력으로 야간기습 포위공격을 해 왔다. 평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해병대원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방어전에 돌입하였다 야간기습 초기전투에서 3소대가 돌파 당하여 백병전이 전개되고 1소대 일부가 뚫릴뻔 했으나 특공대로 적을 저지하고 육탄혈투의 격전으로 적을 격퇴하여 한국군의 강인성을 보여주었고 월남전사상 유래없는 혁혁한 전과를 올려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게 하였다 전과 : 적사살 246명. 포로 2명. 소화기 36정. 공용화기 11문. 아군피해 : 전사 15명. 부상 33명. 짜빈동 전투는 월남전에서 중대단위로는 참전국 중 최대의 공적이었다. 일개중대의 병력으로 월맹군 최정예부대로 구성된 연대병력을 맞아 4시간의 피의 공방전끝에 적사살 246명이라는 월남전사상 유례없는 전과를 올린 것이다. 월맹군은 아군보다 10배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새벽3시에 포위기습을 해 왔다. 11중대는 적의 기습으로 초기에 철조망이 뚫려서 전방진지에 배치 되어있던 3소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작전상 3소대는 전방진지를 내어주고 제2방어선으로 후퇴한다. 멋모르고 좁은 3소대 진지로 뛰어 들어온 월맹군에게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사격을 가한뒤 3소대는 원래의 전방진지로 육탄돌격을 감행하여 적을 격퇴한다. 적을 진내로 끌어들여서 진내 사격으로 제압하고 섬멸격퇴 시킨 것이다. 한편, 월맹군의 야포/박격포들이 계속 11중대에 포격을 가하자 "신원배"소위 등 5인의 해병용사들이 포복으로 접근, 수류탄을 무더기로 던져넣어 적의 특화점을 제압해 버린다. 짜빈동 전투의 핵심은 11중대의 용감한 전투정신도 있었지만 짜빈동 고지 뒤에 있는 해병 포병대의 정확한 포격이었다. 11중대에 밀려서 진지 밖으로 쫓겨간 월맹군이 수차에 걸쳐 재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때마다 포병의 시한포탄이 날아와서 적의 진격의지를 꺾어 버린다. 한편 작전 중에 11중대는 항공지원을 요청, 미군의 AC-47 스푸키가 날아오지만... 짙은 안개로 항공공격은 실패하고 결국 포병의 지원에만 의존하여 싸웠다. 다음날 아침에 미군 전투기와 해병대 9중대가 증원되어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였다. 짜빈동전투에서 청룡 3대대11중대는 한,미양국의 대통령에게 부대표창을 받았고 전원 1계급특진의 영예가 주어졌으며 외신기자들에 의해 "신화를 남긴 해병" 이란 표제하에 전세계에 그 용맹성이 크게 보도 되었습니다. 또한, 미 해병대와 월남군 장교들이 한국 해병대의 전술연구를 위해 견학반까지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 우리가 월남전에서 했던일입니다. 순박한 민족이긴 하나 전쟁에 있어선 참 독한면이 있는 민족이죠! 이라크가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일때라 봅니다. 죄없는 우리 근로자들 (어려운 경제에 보탬이나 될려구 외화벌이나간분) 총이나 들고 있었다믄 몰라요~길가던 분들 수십차례 총질하구 죽여놓구~떠나라 하믄 우리가 떠나냐 전투병 보내서 철저한 응징으로 무장세력 싹쓸이하여 평화로운 이라크를 만들는것과 더불어 또한번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지 보여줄때라 여깁니다. 가서 사람죽이구 뭐 그런일이 위상이라 운운하냐구요~ 그건 내맘이야...각자의 견해차는 논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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