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부터 머리숱이 많았던 나는
그나마 긴머리 덕에 여자아이로 인식되곤 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엄마가 나와 오빠를 데리고 시장이라도 나서면
시장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이고 큰아들이 정말 이쁘네. 인형이야 인형. 근데 둘째 아들은........음......이거 떨이로 가져가지?"
"아이고 이양반아 못생긴 남자랑 재혼할걸수도 있지 왜 둘째 아들 기는 죽이고 그래?!!"
"둘째 아들은 참 잘생.........잘살겠네!!!"
라는 말을 듣곤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크면서 역변을 했고
어릴때 어글리 코리안이었던 외모가
어썸도털로 변해왔다
내가봐도 그랬다
나는 놀라운 딸래미였다
뭘하든 놀라웠다
우유를 먹다먹다 토할정도로 먹은 내 두턱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결국 2등신이 되었을때도
누구나 나를 보면 웁쓰? 어썸! 어머나? 에잉!? 염병..을 외칠 정도로 존재감이 탁월했다
놀랍다는 말이 외모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는 말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든 나는 확연한 존재감을 자랑해왔다
그렇게 크기를 십수년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컷트도, 단발도 허락하지 않는 어깨밑 20cm까지만 허용하는 엄격한 교칙을 갖춘 곳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반항이 시작됐다
반항은 청춘의 심볼이라는 제임스딘 어빠의 말에 따라 나는 교칙을 위반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반항의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의 일정량을 자르는 것이 귀찮을 뿐.
그렇게 나는 귀밑 21cm, 귀밑 22cm를 고수하며 불량학생의 길에 들어섰다
20살.
두발의 억압에서 벗어나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재수생활을 거치며 귀나치즘이 극에 달았던 나는 일년동안 단 한번도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그 결과 내 머리카락은 있지도 않은 허리라인에 닿았고
그동안 염색이나 파마를 한번도 하지 않은 덕에 찰랑거리는 생머리 여인의 모습을 갖췄다
당시만해도 마른 몸에 자그마한 체구를 가졌었기에
까맣고 긴 생머리를 가진 내 뒷모습을 보면
누구나 따라올만했다
따라오다 욕을 할지언정 그때 내모습은
건축한 개론 수지의 뺨을 천대정도 때릴수 있을 만큼 청순했었...냐?
여차저차 들어간 재수학원
내 존재감은 대단했다
매일 교실 맨앞에 앉아 삼단 같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며 집중하는 모습이란
상상만으로도 쌍코피 터지는 실루엣이었다
그때 내 뒷모습만보고 콧구멍에서 대출혈을 맛본 남학생들만 십수명
단언하건데 그때 그들은 수능은 뒷전이었다
오직 내게 말을 걸기위해 학원을 만남의 장소로 삼았을뿐.
그러던 어느날
그중 가장 용기있는 남학생이 나를 불러세웠다
"저...저기요..."
나는 빛나는 머리칼로 내 뺨을 후려치며 고개를 돌렸다
"웨염?!!!"
그순간 나를 보기위해 몰려있었던 남학생 무리들이 감탄사를 내뱉았다
"이런씨................"
감동한 모양이다.
나는 더욱 자신감에 불타올라 머리를 쓸어올리며 되물었다
"아 웨염!!!!!!!!!!!!??????????????????????????????????????????????"
남학생들은 나의 패기에 더이상 그 어떤말도 하지 못한채 뒤돌아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후 등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뒷모습은 전지현인데 앞은 황마담이네."
"황마담은 마담이기라도 하지.....마당이네. 쓸어주고싶다."
실로 애처로운 구애의 현장이었다
그러다 결국 그중 가장 눈이 좋지않은 한 남학생과 사귀게 된 계기가 있다
2002년 월드컵이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였을거다
학원을 땡땡이치고 광화문으로 응원을 갔던 그때
학원에 남아 옥상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보던 그 남자아이는 내게 돌이킬 수 없는 문자를 보냈다
"오늘 우리나라가 이긴다면 나랑 사귀어 줄래?"
광화문 한복판에 앉아 생각지도 못한 문자를 받은 나는 멍을 두 번 때릴 수 밖에 없었다
멍멍!
개소리를 입에 머금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이녀석. 진심일까?
그때였다
전반이 얼마시작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리환아빠의 날카로운 PK킥에 환호성이 들려왔다
순간 내 손꾸락은 "그러시던가"를 완성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부폰의 선방에 '아...........!!!!!!!!!!!!!!!!!!!!!!!'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고
나는 순간 답장을 우회했다
"너 혹시 성이 '부'가니? 부씨면 부셔버릴라고"
그러면서도 부폰의 매력적인 손놀림에
"너 혹시 본명이 전화기니? 그렇다면 사랑한다. 영원히."
라고 갈팡질팡하며 연애의 온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후
비에리의 선제골에 나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비에라이씨"라는 답문을 보내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좀처럼 포기할줄 몰랐다
"기다려봐. 넌 나랑 사귀게 될테니까"
라는 허세가득한 문자 뒤로 나는 경기에 집중하는 듯 그 아이에 집중하는 듯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내며 누가 이기던 결과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 중간 모레노 심판의 단호박 판정에
순간 흔들리며
포마드를 쳐바른 남자를 찾아 거리를 어슬렁 거리기도 했으나
결과는 연장전 끝에 2:1 우리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8강에 진출했고
나는 그 아이와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흐른 후 듣게 된 그 아이의 고백
"이런 씨.........나는 당연히 이탈리아가 이길줄 알았지"
그 고백을 들은 그날 나는 홍대의 고주망태로 다시 태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나라 선제골을 막았지만 결국 마지막 연장전을 막아내지 못한 부폰의 손놀림은
쓸데없이 자만심에 가득찬 한국의 20살 청년에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주기위함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2002년 월드컵 이후
내 이상형은 스코티피펜, 레지밀러에서
이운재로 바뀌었다
그 후에 끊임없는 이상형 정권교체를 거듭하며 바뀐
지금 내 이상형은
봉중근과 최동수, 류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