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자면
22살 (32살이라 해도 믿는 얼굴 보유)
여친 없음 (사실 친구도 없음)
군대 못감 (지키러 간다 전해도 오지말라 전하는 국방부)
고시텔 거주 중 (조만간 20대 청년 고독사 기사 나올 예정)
자취방 계약이 끝나고 군대를 가기 위해 1학기를 휴학한 나는, 나라가 아직 나를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복학을 하였다.
고향집에서 학교를 다닐 수도 있지만 잦은 음주와 레미제라블 수준의 노동을 강요하는 특성을 가진 과에 다니고 있기에, 한 학기만 살 생각으로 원룸텔을 잡았다.
그러나 심각한 낯가림과 인간불신을 가진 나는 원룸텔 생활에 많은 애로사항을 겪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빨래다.
전에는 빨래방을 자주 가지 않았다. 비와서 빨래가 안 마르는 날이나, 이불을 빨아야 할때나 가던 곳 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나올 때, 옆집 대머리 아저씨가 내 후드티를 입고 나갔다 와서 다시 걸어 놓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는 항상 빨래방에 가게 되었다.
빨래방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곳이다. 여러 군상이 드나드는 데, 여태 빨래방을 다니며 겪은 여러 일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1. 노래방
나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좋아만 한다. 전에 뮤지컬을 하시는 분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은 내게 앙상블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던졌고, 잠시 후 노래방에 가자마자 그 제안을 철회하셨다. 친구들은 주로 신이 주신 목소리와 신이 분리수거 했어야 하는데 실수로 준 노래실력을 주었다고 표현한다.
그 날은 참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일하는 곳에 손님도 없었고, 팁도 받았고, 손님이 없어서 열받은 사장님과 술도 한 잔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래방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세탁기를 돌리며 과제 영화를 보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과제 영화는 마이 P.S 파트너였다. 그 영화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영화 O.S.T가 얼마나 명곡인지. 기분도 좋겠다, 술도 들어갔겠다.
나는 자신 있게 나의 우렁찬 성대를 뽐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분위기 딱, 잡고. 그 민망한 노래를 텅 빈 세탁방에서 열창했다. 네 팬티를 내게 보여줘~! 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노래가 끝나고 이어폰을 벗었을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나를 보면서 입을 막고 얼굴이 빨개질때까지 웃던 여성분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 여성분이 혹시 오유분이라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우셨고, 커피 한 잔 사드리고 싶다는 것.
두번째는 혹시 저 도망가고 돌아가던 세탁기에 후드티의 행방을 알고 계시냐는 것...
2. 로맨스
빨래방에 오는 사람들은 주로 두 분류로 나뉜다. 자취하는 외로운 사람들, 꼭 여기까지도 너네의 장소로 만들어야 하니?라고 묻고 싶은 기만자들...
가끔은 빨래방에도 죽창이 있었으면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지만, 일은 내 상상속에서만 벌이기로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의외로 빨래방에서 로맨스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빨래방에 맥주를 한두캔 사가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책을 읽다보면 빨래방 초심자들이 끙끙대며 고민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술 기운과 밤의 분위기를 빌려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도와주곤 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한 시간 정도 할 일이 없는 성인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같이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하게 된다. 물론 끝은 술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맥주를 마시며, 이러저러한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의 마음이 열리게 되고, 빨래가 끝나면 나가서 같이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다.
나는 이 방법으로 몇 명의 사람과 술을 마시고 번호를 주고 받았으며, 현재는 모두와 함께 축구 동호회를 만들어서 주마다 땀을 흘리고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어주고 있다.
아무리 술 기운이고, 밤 분위기고 나발이고 오유징어는 여자에게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