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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은 유병장 유준근 열사
게시물ID : nagasu_4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ㅇㅇ;;
추천 : 11
조회수 : 244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6/09 09:22:12

- 옥주현 관련이니 나가수 게시판
잊혀져가는 판이였는데 옥주현 소속사 공식사과문때문에 되새김질.
근데 이런분까지 알고 코스프레했다면, 알고 깐거냐. 좆나 똑똑하네. 
아님 그냥 코스프레 한 사람 성이 유씨냐.

유준근

항일투사.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관군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납세를 거부하고 5적신(五賊臣)을 공박하다가 투옥되었다. 석방되자 의병장 민종식 휘하에 들어가 싸우다가 최익현과 함께 쓰시마섬에 유배되었다. 
 
본관  전주  
호  우록  
별칭  자 순경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충남 보령  

본문 
본관 전주(全州). 자 순경(舜卿). 호 우록(友鹿). 진사 형중(馨中)의 아들. 보령(保寧) 출생.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이 일어났을 때 관군(官軍)에 가담하여 활약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납세를 거부하고 5적신(五賊臣)을 공박하다가 투옥되었다. 석방되자 의병장(義兵將) 민종식(閔宗植) 휘하에 들어가 홍산(鴻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체포되었으며, 서울로 압송당하여 유림(儒林)의 거두 최익현(崔益鉉)과 함께 쓰시마섬[對馬島]에 유배되었다가, 4년 만에 풀려났다. 1919년 3·1운동 때 동대문 밖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이듬해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출처] 유준근 [柳濬根 ] | 네이버 백과사전
 

유준근(柳濬根)에 대하여
1860년(철종 11)∼1920년.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경(舜卿), 호는 벽서(碧棲)·우록(友鹿). 충청남도 보령 출신.
진사 형중(馨仲)의 아들이다.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납세를 거부하고 을사오적과 일본의 침략행위를 공박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1906년 5월 전 참판 민종식(閔宗植)이 홍산지치(鴻山支峙)에서 거의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홍주성을 함락한 뒤 유병장(儒兵將)과 참모에 임명되었다.
5월말 홍주성이 함락될 때 일본군에게 잡혀 무기형을 언도받고 남규진(南奎振) 등 8인의 동지와 함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그뒤 최익현이 유배되어오자 척사사상을 논하고, 우국시로 화답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백관형(白觀亨) 등 10여명과 함께 상경하여 순종의 복위운동을 꾀하던 중 일본경찰에 잡혀 그해 11월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파리장서’에 유림대표 137인 중 1인으로 서명하였으며, 일반유림인사의 안이한 수사선도(守死善道)에 반대하고 적극적인 독립투쟁 전개를 역설하였다.
문집 《마도일기(馬島日記)》는 홍주의진의 활약과 대마도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일기체로 서술한 것으로 의병운동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중앙연구원



1919년 3·1운동 때 동대문 밖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이듬해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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