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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홍국영vs정약용
게시물ID : humorbest_4420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꾸룽꾸룽
추천 : 17
조회수 : 6075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2/17 12:35:17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2/08 01:45:27
역사기획시리즈-인물 VS 인물 ① "홍국영vs정약용" 역사상 많은 라이벌이 존재했다. 라이벌은 서로 반대의 편에서 서로 대립하기도 했고, 같은 편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협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소설 삼국지를 통해 널리 알려진 조조와 유비, 제갈량과 조조 등이 그런 라이벌의 부류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봐도 이러한 라이벌들은 존재한다. 조선 개국의 두 주역인 삼봉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 혹은 포은 정몽주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우리나라 역사 속에 존재하는 라이벌들. ‘인물 대 인물’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자.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의 두 남자 “홍국영 VS 정약용” 최근 몇 년간 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 혹은 해당 시대의 주변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사극들이 방영됐다. 2007년 KBS 2TV 월화드라마 ‘한성별곡’, 케이블 채널CGV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 2008년 MBC 월화드라마 ‘이산’, 2010년 케이블채널 OCN ‘조선추리활극 정약용’, KBS 2TV 월화드라마 ‘성균관스캔들’ 등이 바로 그것이다. 7월 4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 또한,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다. 최근 사극의 배경이 주로 조선 후기, 특히 조선의 개혁군주라 평가받는 정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정조를 둘러싼 인물들과 특히 조선판 ‘르네상스시대’라고 평해질 정도였던 정조 치세 시대에 대한 매력이 강한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조 치세를 여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두 명 있다. 바로 홍국영과 정약용이다. 사실 정조의 인생에 있어서 전반부는 홍국영으로, 후반부는 정약용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인물은 정조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홍국영은 킹메이커로서, 정약용은 정조를 현군으로 이끌었던 역할을 했다. 왕에 대한 두 사람의 역할이 크게 달랐듯, 그들의 인물됨이나 인생관도 크게 달랐다. 두 인물의 인생역정에 대해 알아보자. 홍국영 - 내 주군은 왕이 되어야 한다 정조보다 4살이 많았던 홍국영은 1748년 출생했으며, 본관은 풍산, 자는 덕로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몰락한 양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집안 자체는 당시 왕실의 외척으로서, 노론벽파로서 권세를 누렸던 홍인한, 홍봉한 등과 같은 풍산 홍씨 집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홍국영은 사실 노론 벽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홍국영은 당시 정통성과 지지기반도 미약했던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이산을 위해 노론 벽파와 목숨을 건 대결을 한 것일까. 사실 홍국영은 1771년, 23살 되던 해에 문과에 급제한 인물이고, 무난히 당색을 따르면 출세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안정보다는 모험을 택했다. 자신의 명운을 걸고 당시 세자이나 그 기반이 미약했던 정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홍국영이 정조와 행했던 일련의 개혁정책 등과 그의 성향을 고려해볼 때 매우 혁신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던 같다. 홍국영은 세손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노론벽파의 젊은 척신 정후겸과 외척 홍인한 일파와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쳤으며, 결국 이산을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로 등극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홍국영은 훈련대장, 이조참판, 대사헌, 도승지 등 요직을 두루 겪으며 당대의 척신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정약용- 왕을 현군으로 보좌하겠나이다 1762년에 출생한 정약용은 정조보다 10년 아래의 인물이다. 본관은 나주이며, 호는 흔히 우리가 잘 아는 다산 외에도 여유당, 사암, 자하도인 등이 있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도 갖고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로 잘 알려진 정약용은 남인 출신의 천재 학자였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해 본격적으로 관직에 나선 정약용은 다방면에 뛰어난 학식과 재능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고루한 유가적 이론에만 매달린 것이 아닌, 천문과 의학 등 다양한 학문과 서학에도 능통했던, 당대의 누구보다 실사구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한 성향 덕분에 역시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정약용은 그런 총애에 부응, 정조 치세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별명처럼 다양하고 획기적인 발명품을 여럿 등장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정조 능행에 이용되었던 한강 배다리, 수원 화성과 그 건축을 위해 발명한 거중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정약용 역시 암행어사, 병조참의, 도승지, 병조참의 등 홍국영과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여러 요직을 겸했다. 홍국영 - 너무도 급진적이고 너무도 큰 야심가였다 젊은 나이에 권력의 핵심에 앉게 된 홍국영은 자신의 큰 야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왕에게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받은 그는 힘을 남용하기 시작하며 당대의 최고의 세도가로 떠오르게 된다. 사실 조선시대 세도정치의 시발점이 홍국영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 듯이 홍국영의 세도도 결국 3년을 넘기지 못하게 된다. 1779년 홍국영은 이른바 상계군의 옥으로 1780년 정조에게 축출되어 강릉시 노암동으로 유배, 1781년 그 곳에서 병사한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세도가로만 인식하기에는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홍국영은 굳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출세를 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반증하자면 그만큼 홍국영은 뚜렷한 소신과 함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홍국영의 축출과 관련해서 관점을 달리 해 보면, 친정체제가 완비된 정조가 홍국영을 축출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홍국영과 관련된 사건이 특정 시점(1779~1780)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탄핵 즉시 홍국영이 축출됐다는 점에서 읽을 수 있다. 홍국영은 급진적인 데다 너무 큰 야심가였다. 이 두 가지는 그에게 너무 많은 정적을 남겼다. 당시 홍국영에게 믿을 곳은 정조뿐이었다. 그런 정조가 등을 돌리자 홍국영은 급격히 무너졌다. 그때 홍국영의 나이 34살, 그는 오직 정조에 의존해 홀로 싸우다 간, 잊힌 비운의 권력자였다. 정약용 - 개혁적 군주가 사라지자 개혁적 신하도 필요 없다 정조 치세에서 많은 업적을 쌓은 정약용은 1800년, 정조가 49세의 나이로 죽고,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 행보가 꺾였다. 그동안 숨죽이며 지내오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가 권력탈환에 나서면서 남인계통의 개혁인물들은 모두 관직에서 내쳐졌다. 정약용 역시 1801년 2월 경북 포항 장기로 유배되면서 18년간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약용은 홍국영과 달랐다. 홍국영이 유배지에서 분을 못 이겨 울화병으로 죽은 것과 달리 그는 학문 활동을 통해 실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정약용은 1818년 귀양살이가 끝나고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에 돌아가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유배시절부터 정약용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여유당전서, 역학서언 등을 비롯한 학문과 역사적 자료로 꼽히는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닮은 듯 다르게 홍국영과 정약용의 인생 초기를 보면 매우 닮아 있다. 둘 다 뛰어난 지략을 지닌 수재였고, 젊은 나이에 과거를 급제했다. 또한,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너무도 다른 도착점에 다다랐다. 너무도 급진 개혁적이며, 자신의 최종 목표를 권력에 둔 야심가 홍국영과 온건 개혁적이며 자신의 최종목표를 실사구시 학문의 완성으로 둔 학자 정약용은 그 끝이 너무도 달랐다. 유배지에서 권력에서 멀어진 자신을 비관하며 화병으로 요절한 홍국영, 같은 상황인데도 수양을 통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정약용.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출처] 역사기획시리즈-인물 VS 인물 ① "홍국영vs정약용"|작성자 프리버드07 http://blog.naver.com/freebird07/60134173213 ==================================================================== 킹메이커 홍국영에서 뿜었습니다. ㅋㅋㅋㅋ 정말 정조의 남자들 어떻게 홍국영이 그렇게 가고 바로 정약용이.... 여러 드라마보면 둘다 성격은 완전 상반되는 그런분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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