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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소설부문 문요주(問妖主)
게시물ID : readers_44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永久童精
추천 : 1
조회수 : 3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0:14:22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간밤에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내리던 눈은 아침나절이 되어 슬슬 그쳐가고 있었다. 1월의 찬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바람에 날리는 앞머리를 손질하며 그녀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에 차마 웃음으로 답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이별이네.”

.”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우린 다를 줄 알았는데.”

그러게, 나도 우리가 절대 이럴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지.”

 

그녀는 손이 시려웠던지 몇 번 호호 거리며 손에 입김을 불어넣다가 양 겨드랑이춤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인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원체 추운 것은 못견뎌하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언제나 야영 때 모닥불에 가장 가까이 붙어서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 얼굴에 묻은 검댕을 지우느라 부산을 떨던 것도 그녀였다. 변변한 야영 시설도 없이 그녀를 이런 곳까지 데려왔다니, 나도 참 무책임한 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사실대로 보고해야지. 학회에서 예상했던 바대로 이곳에 는 없었다고.”

원 부의장 아주 신나하겠네. 다른 건 몰라도 그 할아버지가 기고만장해하는 모습은 정말 싫은데 말이지.”

나라고 좋겠냐.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없는 일을 만들어 보고할 수는 없지. 나 하나하고만 관련된 일도 아니고 말이지.”

덕성이는 근데 안보이네?”

제수(祭需)로 썼던 음식들 치우러갔어. 혹시라도 이상한 것들이 꼬일까봐.”

, 그렇게 안봤는데 의외로 눈치가 빠르네.”

 

나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준 덕성이도 고마웠고, 또 끊임없이 화제를 돌려주는 그녀도 고마웠다. 만일 지금 그녀가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보기 흉한 모습을 보였으리라.

 

그럼 덕성이가 돌아오는 데로 출발할거야?”

, 그래야지. 여기서 의 종적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후보지를 빨리 물색해서 찾아야 하니까. 보고를 서둘러야지.”

근데 정말 아쉽다. 나도 정말이지 여기 가 있을 줄 알았거든.”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곳이 여기였으니까. 뭔가 자취를 찾을 단서라도 있을 줄 알았지. 그리고 이런 저런 목격담이 가장 많이 있었던 곳도 이곳이었고 말이지.”

, 그 때 그 할아버지 기억나? 항주사 절벽 앞에서 를 봤다던 그 할아버지말이야.”

 

나는 그녀의 말에, 항주사 무벽(武壁)의 관리자를 자칭하던 노인장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를 만나 가 무벽을 정비하는 것을 도운 이후 줄곧 항주사 아래 마을에 살면서 항주사 승려들의 구박에도 꿋꿋이 무벽의 관람료를 징수했다던 노인장은 그녀가 자신과 싸워 이기면 무벽의 관람뿐만 아니라 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더랬다. 자신은 평생을 무벽을 바라보며 무도에 정진한 사람이라며 그녀에게 첫 삼초를 양보했던 그 할아버지, 이덕장 강문은 그녀의 난화수 1초에 땅바닥을 뒹굴어야했다. 그 이후 강문은 날씨 탓, 지형 탓 등을 하다가 심지어는 그녀에게 맞아서 뒹군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사한 방어초식의 일부였노라고 우겨대다가 결국 그녀가 구사한 양보받은’ 2 초를 마저 받어 넘어지고 자빠지는 모습을 또 보여줘야만 했다. 물론 그 뒤에 빈정 상해버린 노인네를 아래 마을에서 받아온 홍아주 2 병으로 구슬리는 것은 내 몫이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녀가 나서서 일을 처리하면 수습은 내가 하는. 시장에서도 흥정을 시작하는 것은 그녀였지만 흥정을 마치고 대금을 치르는 것은 나였고, 술자리에서 생기는 시비를 반겨 맞이하는 것도 그녀였고 그 시비를 진정시키는 것도 나였다, 어제 밤까지는 말이다.

 

장유유서도 모르냐며 호통을 쳤었어, 그 할아버지. 킥킥킥.”

 

강문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를 외면하던 그는 홍아주 2 병에 맘이 풀려 급기야는 그녀와 호형호매하는 사이까지 되었으니까. 자기가 형이 될 테니 자기를 형으로 부르라던 그의 말에 끝까지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고집하던 그녀 때문에 또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술로 시작한 싸움은 술로 마치라했던가... 물론 다음날 숙취에 힘들어하는 두 사람을 앉혀놓고 에 대한 탐문을 벌이는 것은 나여야 했지만 를 찾아나섰던 우리의 여정에 몇 안되는 유쾌한 기억임에는 틀림없었다.

 

여기서 두원으로 가면서 들릴 수 있으면 좋을 건데, 틀림없이 기뻐해 줄거야.”

홍아주 두 병에 소정육 반근을 곁들인다면 말이지.”

, 날이 추워서 그런지 정말 따끈하게 덥힌 술 한 잔 있으면 정말 좋겠다. 뭐 이별은 이별이지만 기념할 것은 기념해야지.”

 

그녀의 말에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맡은 바에만 충실하자며 치기어린 두 남녀는 만약 서로에게 상대를 이성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면 그땐 바로 우리가 헤어지는 때가 될 거라며 약조를 했었다. 물론 그 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며 나를 도발한 것은 그녀였고 그런 그녀의 도발을 저런 멍청한 약조로 받아넘긴 것은 나였다. 지금에야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쏴버린 화살이 된 셈이다. 정말이지 자승자박도 저 정도면 대대손손 자랑해도 될 성 싶다. 젠장, 입 안이 쓰다.

 

덕성이가 돌아와 둘의 눈치를 보더니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우리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이곳까지는 올 수 없었기에 최소한으로 간결하게 꾸린 짐들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매듭지었던 보따리를 다시 묵었다 풀고 다시 묵었다 풀고 다시 묵고 괜시리 툭툭툭 짐들을 건드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얼마 안되는 짐들이 늘어날 리가 없다. 그리고 이런다고 해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늦춰지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다. 잘 아는 일이다. 하지만.....

 

나와 덕성이가 한 편에 서고 그런 둘을 마주 바라보며 그녀가 섰다.

 

일단 여기서 헤어지자.”

여기서?”

.”

 

예상치 못했던 급한 결정이다. 음복(飮福)한 제주(祭酒)에 취해, 를 찾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취해 7 개월간 잘 감춰왔던 내 마음을 고백한 것이 이렇게 빠른 이별의 이유가 될 지는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하는 것은 그녀고 마무리 짓는 것은 나다. 우리의 관계는 늘 그래왔다. 내가 어제 취중에 한 고백은 그런 관례를 깨는 것이었으니 이런 결말은 타당한 것이다. 그래. 하지만 입 안이 쓰다.

 

, 그럼.” 하며 그녀가 나와 덕성이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나 했을 법한 정중한 인사다.

, 그럼.” 나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와 덕성이, 둘에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나! ! ! ! 다섯!”

 

다섯 걸음이면 일주천하니 세상을 돌고와 그대 안녕하신가.’[五步能週天 一週後問寧]

그녀가 걸음을 내딛으며 내는 고함소리가 눈 쌓인 아침 산자락을 깨울 때 왜 이락의 음작천(飮酌天)’이 생각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 세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엇인가 생각이 났고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바보, 가란다고 그대로 가냐.”

 

눈물이 글썽이는 채로 웃으며 그녀가 뛰어와 내 품에 안겼다.

 

덕성이가 그런 우리 둘을 쳐다보며 만면에 가득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내려가라는 뜻으로 손짓을 했다. 덕성이는 내게 고개를 꿉벅이고는 발걸음을 재게 놀려 멀어져 갔다.

 

그녀가 다시 내게 떨어져 섰다. 슬슬 그쳐가는 아침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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