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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과학 암흑기 1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
게시물ID : humorbest_4428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욕망창고
추천 : 40
조회수 : 6657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2/19 18:58:25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2/17 09:16:28
평가

히파티아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녀의 천재성에 대하여 대부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니세포르스, 필로스토르기우스 등은 모두 히파티아와 다른 교파의 역사학자였으나 그녀의 성품이나 학문을 찬양하는 데 인색한 법이 없었다. 그녀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왕자들이나 철학자로부터 여러 차례 구혼을 받았으나 그녀는 그러한 청혼에 대하여 "나는 진리와 결혼하였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녀는 수학자로서 유명한 것만큼이나 철학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뮤즈 여신에게' 또는 '철학자에게'라고 주소가 쓰인 편지는 당연히 그녀에게 배달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녀는 '신플라톤학파'라고 불리는 그리스 사상을 추구하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학교의 과학적인 이성주의는 당시 지배적인 그리스도 종교의 사상에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졌다.

죽음

기독교 신앙인들은 히파티아의 철학을 사교로 생각하게 되었고, 서기 412년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들을 조직적으로 억압하기 시작했다. 키릴로스의 유일한 반대세력으로 보이는 오레스테와 맺은 우정과 신뢰로 인하여 히파티아는 두 파벌 사이에서 정치적 보복을 위한 인질로 붙잡혔다. 키릴로스는 대중의 광기에 불을 질렀고,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폭도를 구성하였으며 유대교회를 뒤엎고 행정장관의 지위와 권한을 대부분 장악하였다. 키릴로스의 지시를 받은 광신자 폭도들은 대학으로 강의하러 가는 히파티아를 도중에 마차에서 끌어내어 머리카락을 다 뽑고 고문을 하여 살해하였다.

그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학자들이 국외로 망명하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와 함께 히파티아의 죽음은 사실상 수 백년을 이어온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의 종언을 의미하였다. 헬레니즘의 유산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기독교의 교리와 기독교적 사상에 반대되는 어떠한 사상 및 철학도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든다.

<출처 : 위키백과>

간단 요약.
- 그녀는 수학과 철학을 사랑했으며, 일생동안 학문과 결혼한 마리아 준급 혼전순결자였다.
-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인기가 많아 여신이라 불렸으며, 기독교인들에게 이성주의를 대표하는 느낌이 들어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 그녀의 철학사상이 결국 사교로 몰려 기회를 잡은 개독들에 의해 고문당하고 살해당함.
- 그녀를 시작으로 많은 학자들이 추방을 당하게 되었고, 역사적으로 학문의 명맥이 끊기고 기독교 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함.

Po과학죽이기wer
아오 ㅅㅂ = _=.. 

참고로 히파티아를 죽을때는 맨살을 조개껍데기로 파서 죽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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