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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침, 저녁, 그리고 새벽 -3
게시물ID : readers_59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뭐하면수전증
추천 : 3
조회수 : 25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1/16 21:47:22

<새벽에도 깨어있는 남자> 上편


어느새 날은 저물고, 그 저문 날마저도 스러져가는 새벽에 다시 잠은 깨고 말았다. 어슴푸레한 방안에서 눈을 뜨자마자, 작은 한숨이 나고 말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과 피로함이 몸을 감싸 안았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고자 했지만, 잠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어디 멀리로 야반도주라도 한 모양인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일어나 나는 컴퓨터를 켜고 멀거니 바라보는 보통의 새벽-물론 나 같은 이에게만 보통일 그런- 일과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평소 자주 들어가는 유머사이트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자기반성 글을 보았다. 절절한 사연과 눈물, 모두가 위로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 나도 따라 추천을 누르려다 말고,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내가 여기에 지금 추천이나 누를 자격이나 되나, 라는 생각이 한숨을 내뱉게 했다.

 

한때는, 다들 그랬겠지만, 나는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 무엇이든 하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과학자도, 대통령도, 가수도, 아니면 뭐 후레쉬맨이나 맥가이버도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글쎄, 산타가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듯이 점차 현실을 알아갔지만, 여전히 내가 대단한 존재고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올라가자, 점수에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대는 아니어도 인서울대 쯤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마저도 못하고 지방잡대를 들어가서도, 대학교가 뭐가 중요해, 과 전공 잘 살려서 꿈을 현실로 이뤄보자, 그랬었지. 그러나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하고, 이도저도 아닌 시간들이 자꾸 흐르고 - 마침내 삼십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할 때에야 나는 현실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그냥 별 것도 아니었구나, 라고.


그러나 돌아보면, 너무나 늦어버렸음만 알 수 있었다. 대학교에선 후배들에게 나름 인기도 있던 나는 이미 점점 배불뚝이가 되어가고 있었고, 운동 삼아 나간 조기 축구회에선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보다도 달리지 못해 굴욕을 당하고는 했다.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좋은 학벌과 능력과 젊음으로 이미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 곳에 내가 껴들 자리 같은 건 없었다. 진즉에,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나는 그들처럼 했어야 했는데, 남들 스펙 쌓을 때 나는 젊음만을 맹신하고 젊음을 낭비하고 있었다. 인생사 젊음은 한철이라는데, 나만 그것을 몰랐던 것 같이, 세상은 늙기 시작하는 나만 놔두고 저 멀리 앞질러 간 것 같았다.


어느 날 주변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친구 하날 불러내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우리 아직 삼십대도 아니고 꿈이 있다면 그 남은 시간만이라도 다 투자해보고 노력해 봐야하지 않겠냐며 위로를 해줬다. 하지만 그 녀석, 소설가가 되겠다던 십대와는 달리, 성적 맞춰 인서울 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가고, 다니던 내내 해외연수다 자격증이다 뭐다 하면서 꿈은커녕 스펙에 쫓겨 살다가, 이제는 드디어 떳떳한 대기업 직장인이 되었다. 작가론을 부르짖으며 왜소한 체구로 소설책만을 내려다보며 살던 녀석이, 이제 와서는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어깨 딱 벌어진 엘리트 정사원이 되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꿈에 대해 설파하는 모습이 아이러니 했지만, 그만큼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이겠지. 그리고 그것이 아니꼬워도 묵묵히 듣고 있어야하는 나는, 그가 자신감을 얻은 그만큼의 자신감을 오히려 소비하고 잃은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날 녀석은 술값을 계산하고 떠나면서, 나 내일 출근이라 먼저 가볼게, 라고 했고, 잊지마- 꿈이라도 잘 움켜쥐어, 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소설책만을 내려다보던 그 축 늘어진 눈이, 이제는 나마저도 내려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일, 정말 한참 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리 깐 눈동자가, 그 눈동자가 잊히질 않는다. 특히, 이렇게 아무 일 없음에도 새벽에 깨어난 채 잠 못 드는 그런 날이면, 더욱 떠올라 오는 듯도 싶다.


새벽이라 그런가, 한숨 자다 깨서 그런 건가, 자꾸 비관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머리가 무겁다. 바람이, 바람이 쐬고 싶어졌다.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열어 밖을 바라다보니 훤하니 보름달이 떠있다. 보름달이 나를 비춘다. 비춘다. 그 보름달을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나는 저 달을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잠도 안자고 라디오 틀어 놓고 달 올려다보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라디오 디제이들의 달콤하고 현란한 멘트와 다양한 유행가들의 향연 속에서 올려다보던 달은, 마치 그 시절에 꿈꾸던 나의 미래처럼 한 없이 밝아만 보였다. 어쩌면 달이 아니라 그 환경 모두를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달을 잘 보지 않게 되었는데...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달 올려다보기도, 라디오도 그냥 뚝 끊어버렸다. 끊어버렸는데, 정말 그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딱히 뭔가 큰 이유는 아니었어도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잘 모르겠다. 왜 그랬더라? 의문이 점차 무거운 머릿속에 쌓여간다. 그에 따라 더더더 무거워져버려서,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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