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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바보같은 주인이 담배한대 피우면서 하는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4435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맥콜같은인간
추천 : 40
조회수 : 6858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2/21 11:21:26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2/21 09:10:36

BGM 정보 : http://heartbrea.kr/index.php?document_srl=2542290&mid=animation Mirror b 아마 내가 이 글을 네게 직접 보여주지 않는 이상, 볼 수도 없고 누군가 네게 억지로 끌고가 보여줄 수도 없다는거 안다. 우리가 만난지 6년가까이 되간다. 사람으로 치면 넌 환갑을 훨씬 넘긴 고령이지. 그럴거야. 얼마전부터 자꾸 네 기침소리가 많이 들려오고 내가 요구하는걸 제대로 못해주는게 많아지는게, 그저 시대가 변해서 버거워하는구나 하고 느꼈었지만, 네가 완제품이 되어 살아온 날들을 햇수로 계산해보니 고령은 고령이더라. 얼마전에 네가 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수술을 해준 적이 있었을거야. 기억나니. 널 얼른 재우고 쿨러를 뜯어 청소를 하는데 먼지 참 많이 나오더라. 방열판이며 쿨러며 까맣게 앉은 먼지를 보다가, 널 보는데 웬지 좀 미안해졌어. 넌 다른 컴퓨터들 처럼 좋은 케이스에 환대받으며 오지 못했지. 새 케이스 박스에 짜쟌 하고 담겨져 오지도 않았어. 비맞고 눈맞아 비틀어진 케이스에 대충 조립되었지어. 그나마 뚜껑도 없었어. 중고 케이스라 당연히 케이스 박스도 없었기 때문에 대형박스를 대충 잘라 그 안에 케이블이며 다른것들을 넣어 왔지. 심지어 OS도 집 어디선가 굴러다니던 시디로 대충 깔았었어. 그리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네 첫번째 구동이었다. 네 척추. 메인보드라고 해두자. 언젠가 네가 전원을 넣을때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기절한적이 있었지? 청소기를 돌리다가 네 케이스를 잘못치는 바람에 메인보드에 이상이 생긴거라고 장담했어. 꽤 크게 부딪혔거든. 한숨만 쉬다가 결국 용산에 가서 네 새 메인보드를 중고로 사가지고 왔지. 너 이후로도 누군가를 계속 조립해줬기 때문에 네 척추수술은 당연히 내가 했지. 이거 좀 오글거리긴 하는데 내가 한밤중에 네 메인보드를 뜯으며 이런말을 했었어. "날 믿어라." 라고. 다시 깨어난 너는 조용했었어.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지. 난 다시 OS를 설치했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네 서른 몇번째 쯤의 구동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 네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던 원인은 글카에 연결되는 PCI-E 케이블이 제대로 꼽히지 않은 것이었어. 나도 네 메인보드 교체작업이 끝나고 OS를 새로 깔고난 뒤의 네 목소리를 듣고서야 깨달았으니까 이제 용서해줘. 난 정식으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난 그래. 하지만 날 거쳐간 수많은 pc를 생각해보면, 너 하나쯤은 내 만족을 위해서라도 책임지고 잘해줘야 겠다고 생각했어. 난 수많은 널 봤지. os를 다시 깔고 지우고 깔고 지우고. 넌 수많은 날을 날 봐왔지만, 나에 대한 기억은 짧을거야. 네 하드 깊숙한 곳에 그동안 너와 내가 함께 해 온 날들이 남겨져 있겠지만, 그걸 기억하는건 마치 내가 다섯살때의 어느 봄날 유치원 소풍때 먹었던 김밥갯수를 헤아리는것만큼 어려운 일이야.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선 매우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내 불안감이 추가되지. 난 네 기억이 자꾸 끊겨 새로운 나에게 인사하는 것이 안쓰러울 때가 있었어. 네 하드를 혹사시키는 일이 미안했지. 그리고 너와 내가 했던 기록들이 자꾸 지워질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 이게 내가 요새 포맷을 하지 않는 이유다. 네 얼마 남지 않은 나날동안 네 하드를 혹사시키거나, 너와 나 사이의 기억을 지우긴 싫어. 얼마전에 들어온 노트북 한대를 봤지? 잠깐, 좋아하지마. 네 동생 아니야. 너랑 동년배, 아니면 너보다 살짝 나이가 많을 수 있어. 센트리노 7500이면 말이야. 설령 너보다 어리다고 해도 함부로 보게 할 생각 없어. 인간으로 치면 노트북과 넌 환갑이야. 나이차이 한두살 나는것 정도는 그냥 친구로 지내. 실은 그 친구에 대해서 네가 서운하게 생각할 까봐 하는 말이야. 네가 못하는 일이 있거나, 네가 싫어져서 이 친구를 데리고 온 건 아니야. 다만 네 작은 단점을 보완하고 싶었을 뿐이야. 넌 뛰어나고 좋은 친구다. 하지만 널 데리고 다니기엔 내 몸이 힘들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힘들어. 그래서 작은 친구를 데리고 왔어. 그뿐이야. 다른 이유는 없어. 물론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때도, 이 작은 친구는 많은 일을 하게 될거야. 그렇지만 네 메모리 속에 기억해줬으면 해. 만약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항상 네가 첫번째 일거야. 난 네 수많은 할아버지를 보냈으면서도 이토록 너에게 집착이 생길까? 그건 널 사온 돈의 출처일까?. 내 부모님의 지갑에서 나온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조립하고 고쳐가며 쓰던 너였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건... 내 손으로 직접 조립했다는 점이야. 우리 부모님도 날 낳았기 때문에 자식으로써의 애정이 강한 것 처럼, 네가 용산 어딘가에서 둥둥 떠다니는 각각의 부품이었을 때, 근무중에 너희를 집어왔지. 그리고 지금의 널 만들었어. 물론,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또 다르지. 하지만 너의 몸 곳곳에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다. 이게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는, 넌 어느순간에도 나와 제일 많이 함께했어. 내가 어느날 너무 외로워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울었던 적이 있었지. 음악을 듣고 더 우울해져서 술까지 마셨고, 밤새 울다 술마시다 울다 술마시다. 아무말도 할 수 없고, 하지도 않는 넌 다만 나만을 위해 밤새 음악을 들려줬다. 인간이란 말이지, 슬퍼하는 누군가를 위해 밤새 노래를 불러주지 않는다. 인간이란 슬퍼하는 누군가를 위해 밤새 눈을 밝히고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그러했던 시절에, 넌 나와 숱한 밤들을 같이 새주고, 노래를 들려주고, 날 도와 일을 해줬어. 이게 내가 널 사랑하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다. 얼마전에 새 pc를 구매하려고 했어. 그런데 신제품이 내년에 나온다는구나? 난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지.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더라. 내가 너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쓸 때 생각이 난거야. 새 pc가 들어오면 널 버릴 수 있을까. 억지로라도, 분해해서라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까 바꾸지 못하는 거 아닐까. 난 사람조차도 이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는데. 네 눈을 보여주는 그래픽카드의 쿨러 파이프라인이 이렇게나 잘 뻗었는데, 네 심장을 뛰게 하는 파워는 기차라도 끌 만큼 아직도 힘차게 돌아가는데, 용산에서 중고로 가지고 온 네 메인보드가 지금도 녹색 빛을 깜빡이고 있는데, 가만히 귀를 대 보면 하드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득, 득득, 득 드드드드득, 하고. 어떨 땐,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아. 0과 1로 이루어진 언어밖에 이야기할 줄 모르는 넌 그 조그마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0과 1의 조합으로 넌 나에게 항상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그렇지만 하드가 돌아가는 소리만큼은, 어떨땐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아. 고, 마워, 요. 아니면, 힘, 들어, 요. 라고. 귀를 대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서툰 네 교감의 언어가. ........그 모든것들을 난 버릴 수 있을까?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내 까맣고 하얀, 나보다 작은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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