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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서로마 제국 멸망의 진상
게시물ID : history_72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1
조회수 : 1644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3/01/17 20:37:47

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서로마 제국은 "망한 적" 자체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로마 서방 황제위"가 사라진 것입니다.

당대의 동로마 황제 이사우리아인 제노는 자기가 제 2의 테오도시우스가 되었다고 생각했지, 동로마 황제가 되었다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당대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학자들이 얘기하는 "로마 제국의 476년 멸망"이라는 얘기의 초점은, 왜 로마의 체제가 그토록 쇠퇴해서 서구에서는 붕괴했는지가 초점이지, 제국 자체가 그때 망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동로마 연구가 활성화되기 훨씬 전에 문명의 붕괴를 쓴 유명한 서구 작가도, 로마가 서부에선 망했으나 동부에선 망하지 않았다고 서술했습니다.

이런 이유입니다. (그 사람도 사실 그게 포커스였지만 말이지요. )

1. 서로마 황제위를 오도아케르가 없애버려서 형식상으로는 이사우리아인 제노가 유일한
로마 황제로써 서로마 지역을 통할하게 되었다.

2. 오도아케르는 로마 집정관의 자격으로 제노를 대리했다.

3. 실상 동로마에도 제노의 말빨이 안 먹히는 지역들은 그런 방식으로 통치되고 있었다.

4. 서로마 제국 체제는 계속 존속했으나.
4-1. 그 시기 전에도 이미 서로마 체제는 갈리아, 에스파니아, 브리타니아에서 처참한 붕괴 상황을 맞이했다.
(!!!! 역사가들이 논하는 로마 제국 붕괴의 양상은 바로 4-1의 양상이다. )

4-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처럼 군데군데 남은 "로마군"은 처절한 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그들중 일부는 중세 봉건 제후의 대열에 합류했다. 까페 왕가의 시조 유드 백작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 그 당대에는 멸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약간 로마화된 야만족 장군들이 실권을 차지한 후 허수아비를 얼굴마담으로 세워 통치하는 관행이 동이나 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실질적인 로마 황제 자리를 노렸고, 그 꿈을 이룩한 것이 바로 이사우리아인 제노입니다. 제노가 실상 말만 황제지 동로마의 오도아케르 였습니다. 그러고 그런 제노 워나비들은 오도아케르 말고도 여럿 있었고 훗날의 테오도릭도 그 중 하나입니다.

사실은 제노가 오히려 오도아케르보다도 그리고 심지어는 테오도릭보다도 더 야만족에 가까운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을 꿰뚫어본 오도아케르는 점점 태도가 불손해졌고, 제노는 테오도리쿠스에게 이탈리아 왕 작위를 주어 이탈리아로 보내, 자기 약점을 건드리는 건방진 오도아케르를 제거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오도아케르 대신 테오도릭이 이탈리아에 굳게 섰습니다. 테오도릭 역시 오도아케르와 똑같이 로마 집정관으로써 이탈이아를 통치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동이나 서나 야만족들이 로마 황제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왜 서로마 제국만 망했다고 할까요?

1. 이유인 즉슨 , 명목상의 서로마 황제 위가 없어져버려서 테오도릭 자신이 아무리 혼자 황제 놀음을 몰래 한들 게르만 왕들이 테오도릭에 형식상으로나마 신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욱 행동의 자유를 얻어 구 로마 체제를 잠식해 들어갔고, 이는 서유럽이 영영히 짜개져 두 번 다신 하나로 합해질 수 없도록 분열 구도가 고착화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서로마 제국 멸망"의 진상입니다.

반면 제노는 이사우리아 족 추장이기도 했지만, 그는 어쨌거나 정통 로마 황제 딸의 기둥 서방이었던 데다가 제노 자신이 상당히 의욕적으로 로마 황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로마에는 비록 이런 저런 지방 총독들 세력도 세긴 했을 망정 페르시아가 동쪽에서 바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제노 말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입장이었구요.

제노가 죽은 뒤 동로마 황제위는 아나스타시우스라는 유능한 관료에게 넘어갔고, 말썽피우던 이사우리아 족들은 그 중심 인물이 로마 황제를 하다가 죽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역설적으로 제대로 자기네들 국가를 만들 틈이 없었습니다.

( 좀 비유가 이상할 진 모르겠지만, 김종필 총재께서 3당 합당을 하고 나중에 자민련을 따로 만드셨지만, 김종필 총재가 민자당 최고위원이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기존 공화당 체제가 다 무너진 상황이어서 김종필 총재가 자민련 만들 때 꽤나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일 듯 합니다.)

2. 실상 테오도리쿠스의 고트 왕국이 말만 고트 왕국이지, 로마 제국의 보편성만 이어받을 의지만 충분했다면 충분히 그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서로마 제국 황제를 자칭할 잠재력은 있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이 잘난 척 하는 게 체제 연속성 및 정부의 연속성인데, 테오도리쿠스의 동고트 왕국은 비록 1은 없었을 망정 역시 서로마 정부로부터 내려오는 체제 연속성과 정부 연속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칭호만 내세울 근거만 만들면, 대립 황제였다가 황제가 된 아주 후대의 저 니카이아 제국처럼도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동고트 왕국은 분파주의, 종족 주의, 전통 주의를 주장하는 고트 족 보수파들의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모처럼 얻은 이 선물을 발로 마구 걷어차버립니다.

테오도리쿠스는 현명하게 보편 제국으로 나가는 길을 동로마 제국 몰래몰래 닦고 있었지만, 멍청한 후계자들이 그 길을 벗어나서 동로마 제국을 쓸데없이 자극하고야 맙니다.

하필이면 이때 동로마 제국에 유스티니아누스가 있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드디어 고트 왕국은 동로마 제국과의 투쟁 끝에 무너집니다. 이시기에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계속된 서로마 체제가 크게 훼손됩니다. 이건 1204년에 붕괴한 동로마 정부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서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에 의해 망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이탈리아의 서로마 제국 체제 연속성은, 동로마의 총독들에 의해 아주 간신히 유지되다가, 롬바르디아 족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전히 소멸됩니다. 당연히 이는 동에도 서에도 좋지 못한 일이었지요.

고로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여기까지 다루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476년에 오도아케르의 로마 황제위 삭제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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