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선생...
뉴욕항 입국 기록문서에는 1911년 9월 3일 코리아 국적의 교육자로 적힌 안창호 선생이 입항한 것으로 나와 있고, 이보다 3년 앞선 1907년 8월 1일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상설, 이위종 선생이 배편으로 뉴욕에 입항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뉴욕 총영사관 관계자는 이상설 이위종 선생은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다가 현지에서 이준 열사는 분사하고, 나머지 두 분만 귀국길에 뉴욕에 들른 것을 보여주는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
또, 안창호 선생은 한.일 합방 이후인 1911년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을 코리아로 적고 있어 선생의 독립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공개된 이승만의 관련 문서들은 대부분 그가 조지워싱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에 재학하던 시기와 하와이 및 캘리포니아 등에서 독립운동(?)을 할 당시 기록된 것들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자료는 이승만이 1918년 직접 작성한 1차 대전 징집 카드다. 당시 43세이던 이승만은 이 카드에 자신의 인적 사항을 필기체로 상세하게 적었다. 출생일은 음력인 3월26일, 직업은 한국학교 교장, 주소는 하와이로 썼다. 국적은 '일본(Japan)' 으로 기재했는데 이를 통해 이승만이 1919년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될 때까지 국적을 일본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어떻습니까...
사실 비교한다는 자체가 안창호 선생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요...
하지만 수구들의 비루한 논조가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니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1911년의 안창호 선생과 1918년의 이승만...
그들의 애국정신을 적나라하게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것,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승만을 진시왕, 모세, 세종대왕과 맞먹는 유전자를 가진 인물이라 치켜세우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외치던 작자가 국사편찬위원장 유영익입니다. 이런 매국노를 임명한 장본인이 바로 박근혜구요...
이 정도면 이들의 친일성향이 파악된 것 아닌가요?...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은 작금에,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자 반공이데올로기를 활용해 왔던 蟲!!.
그들은 인간이 길 포기한 금수와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