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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비잔티움 제국사 (8) 마지막 군단
게시물ID : history_72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4
조회수 : 57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1/18 16:59:44

http://cafe.daum.net/shogun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

이번 연재내용부터 슬슬 디오클레티아누스 은퇴 후의 권력다툼(이른바 2차 사두정치 시대)에 대한 떡밥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체제에서 사실 맨 처음에 이루어졌고, 마무리는 콘스탄티누스 때나 마무리되어서 그닥 언급되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상당히 의미심장한 조치가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즉, 로마가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의 행정적인 기능을 사실상 완전히 박탈당했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원로원의 위상이 실질적으로는 땅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것도.

대부분은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창건하면서 로마가 수도로써의 지위를 잃었다, 라고 알고 있지만,
이미 로마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4두 정치를 창안하면서 네 황제가 각기 행정 수도 넷을 가질 때 수도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네 명의 황제가 각기 행정 수도 넷을 가지면서 통치한 결과 (트리어, 밀라노, 시르미움, 니코메디아) 로마는 그 행정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동시에 원로원 의원들 또한 아직 상징적인 의미는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도시들의 참사회와 같은 등급으로 사실상 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이건 어떤 의미에선 이미 세베루스 왕조 때부터 전조를 보이던 이탈리아 본국의 속주화가, 갈리에누스에 의해 시도된 원로원과 군대 분리가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와서 완결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여담. 시오노 나나미는 자꾸 SPQR과 군 지휘자의 분리 조치가 로마다운 로마를 망쳐서 로마 제국이 망했다는 식으로 쓰고 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그건 제국이 선 방어 체제를 취할 수 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간단한 편법이고, 한계 수익성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종심 방어까지 수행하는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나라의 제도로는 도저히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했다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

일단 이탈리아 주민들은 이 중대한 의미를 금방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네 황제의 긴급 임시 지휘 본부란게 사실은 저 콘스탄티누스도
나중에 했던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과 완전히 똑같은 또다른 수도의 건설에 진배없었으나, 어쨌든 로마는 유일한 제국의 공식 수도였고
개선식도 목욕장 건설도 모두 통상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당대에는 이 중요한 전조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탈리아와 로마도 다른 속주와 똑같이 무거운 세금을 할당받게 됩니다.
이 사실이 이탈리아 본국민들에게 과거의 위대한 처지를 돌이키게 해주었으며, 사실 로마란 도시가 실질적으론 수도로써 아무런 일도
하지를 않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한둘씩 깨달아가면서...고조되는 불만과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만,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걸 별로 신경쓰지는 않았던
것같습니다. 여하튼 그의 시대에는 눈으로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도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고.

여하튼 그의 치세에는 그럭저럭 별다른 큰 문제없이 모든 게 톱니바퀴 돌아가듯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두통 거리가 된 것이 기독교여서, 그는 기독교 억제책에만 은밀히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문제는 나중에
콘스탄티누스가 실증한 바와 같이 진정한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뇌관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프로콘술도, 프로프로이토르도, 트리부누스들도, 프라이펙투스들도 모두 군사력들을 잃고 민정 관리로 떨어져 완전 무장 해제를
당했지만.....유일하게 아직까지도 군권을 보유한 프라이펙투스가 하나 남아있었다는 것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미처 까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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