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전시관에 전시돼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자료들. 성남/강창광 기자 [email protected]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이 가을, 말이야 세상사에 관심없으니 살찌기 딱 좋은 계절이지만, 세파 속의 민초들로선 어지럼증에 속이 뒤집히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다시 ‘남북 정상 회의록’ 문제로 돌아갔군요. 돌고 돌아 원점이 아니라 왔다갔다 원점입니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엔 있고, 봉하에도 있었는데, 국가기록원에는 없고, 최종본은 있는데 초본은 없고, 초본이 최종본이라고도 하고, 온갖 이야기가 검찰에서 정신없이 쏟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초본엔 ‘저는’으로 되어 있던 호칭이 최종본에선 ‘나는’으로 되어 있다 따위를 두고 대단한 발견인 양 자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의록이 국정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있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됐고, 북방한계선(NLL)은 지금도 분쟁 상태 그대로 존재하면 됐지 또 무슨 칼질할 게 그렇게 있는지 착잡합니다. 청와대 안보실장인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북쪽과 협상에서 북방한계선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됐지 뭐가 또 문제인 거죠?‘사초 실종’이라고? 제발 웃기지 말라고 하십시오. 음원도 있고 그것을 정리한 기록물도 두 군데나 있는데 무엇이 실종됐다는 겁니까. 기록물 관리의 원조 격인 미국이나 영국의 대통령(혹은 수상) 기록물은 퇴임 후 개인적인 대통령기념관에 보관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후임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에 한 부 남기라고 ‘폼’을 잡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어떤 사기꾼이 후임자가 되어 농락할지 모르는데, 폼을 잡은 거죠. 사초 실종을 주장하는데, 기록을 이렇게 남겨놓은 게 낫습니까, 아니면 아예 중요한 건 모두 없애는 게 낫습니까.들춰보기 좋아하는 측근들은 지금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혹시 그 중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과 관련한 기록,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기록, 쇠고기 수입개방 대가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했던 회담과 관련된 것 중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보다 멀리 가볼까요. 쿠데타 후 박정희 장군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나 러스크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 나눈 대화록은 도대체 있기나 합니까? 대통령님도 마찬가집니다. 2002년 야당 정치인 시절이지만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 동안 비밀회동을 했죠. 그때 나눈 대화록은 있기나 합니까? 있다면 그것을 우리 시대 정치인과 행정가를 위해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까? 군더더기에 불과하지만, 그때 자신을 부를 때 ‘나는’이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저는’이라고 했습니까. 세상에 외교적인 만남에서 자신을 낮추는 게 예의이고 관례이지, 상대를 하대하는 표현을 쓰는 멍청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새누리당이나 친정부 황색 매체들더러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십시오. 특히 이런저런 내용을 흘리는 검찰더러는 낯뜨거우니 주구 노릇은 좀 신중하게 하라고 하십시오. 어렵게 시녀로 되돌려놨는데, 다짜고짜 흘레부터 붙는다면 누가 곱게 보겠습니까.검찰 이야기가 나왔으니 ‘검찰 정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을 처음 쓴 것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원회 산하 정치쇄신특위 위원이던 박민식 의원이었습니다. ‘정치 검찰’도 문제지만 검찰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야당의 ‘검찰 정치’도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참 잘 지어내는데, 그건 야당이 아니라 이 정부가 집권하면서부터 한 짓이었습니다. 수사중인 검사에게 온갖 지침을 내리다가 여의치 않자, 검찰총장을 깝대기 벗겨 쫓아냈습니다. 검찰 정치를 제대로 한 것은 이 정부인데, 그렇게 해서 길들여진 검찰이 처음으로 정치 전면에서 나서서 하고 있는 일이 회의록 정치입니다. 이제 검찰은 국정원과 함께 집권여당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가 된 것입니다. 착잡한 것은 국정원이 실컷 우려먹은 대화록을 다시 고아내고 또 고아내는 일이니 보기 딱합니다. 아무리 뼈다귀를 좋아하는 개(犬)이지만, 이웃집 개가 버린 뼈다귀를 핥고 또 핥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법무장관이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취임 후 얼마지 않아 검찰은 미증유의 유서대필 혐의란 것을 터뜨렸습니다. 1991년 5월 분신한 김기설씨가 남긴 유서를 쓴 것은 강기훈씨였다는 것입니다. 이 얼토당토않은 기획 사건은 효과가 대단했습니다. 3당 합당에 따른 분노 때문에 거리로 밀려 나왔던 시민과 학생들은 도덕적으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다음달엔 정원식 총리서리가 한국외국어대에서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습니다. 전교조 교사 1500여명을 해고하는 등 학원민주화를 유린한 주역이 총리로 내정됐으니, 그 정도의 분노 표시는 있을 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검찰과 경찰 그리고 친정부 매체들의 합작 아래 단군 이래 최악의 패륜 사건으로 바뀝니다. 결국 이 두 조작된 사건은 결국 ‘지역 패권’과 ‘기득권 연합체제’ 등 3당 합당의 반민주성을 비판하던 양심세력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이 단군 이래 최고의 검찰 정치를 성공시킨 법무부 장관이 바로 김 실장이었습니다.정치 검찰의 ‘검찰 정치’ 하면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을 떠올릴 겁니다. 사실 그때는 정치검찰 왕국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더니,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 사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사건 등 정권에 부담되는 이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행했습니다. 반면 비비케이 사건, 한나라당 대표 선거 돈봉투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 대통령 사돈 기업 사건 등 대통령 주변 사건에 대해서는 한없는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공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권의 이익만 대변했던 것입니다.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설마 이전 정부보다는 낫겠지 기대를 했습니다. 대선 시절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점을 지우고 그가 한 것은 뒤집는 데 모든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작심하고 가장 먼저 벌인 일이, 국정원을 공작기구로 환원시키고, 검찰 정치를 부활하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권력이란 게 그런 건지, 대통령님이 그런 건지. 더러운 칼 노릇을 거부했다고 더러운 공작까지 벌인 것은 압권이었습니다. 직전 정권과 현 정권, 누가 더 더러운지는 아직 비교할 수 없습니다.살림이 각박해지는 건 참을 수 있습니다만 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 책도 읽고, 문화의 향기에도 젖어보고 싶습니다.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이 정도 여유와 행복은 꿈꿀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계속 소란을 피우는데, 이제 혼란을 틈타 우리 주머니에서 빼갈 것도 별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