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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동물원에 간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50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3
조회수 : 1623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4/15 14: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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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느 여름이었다.

지방출장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
금,토요일 생각했는데 목요일 오전에 일이 끝나버려서 회사로 보고할겸 전화하고, 
여기 분들이랑 점심을 먹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데 팀장님의 전화가 온다.
"야 내일 출근하지말고 쉬고 월요일에 출근해. 사장님이 월화수목 고생했다고 그렇게 하라신다."

올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오랜만에 오랄때는 안가던 고향집에 갔다.

집에 반찬없는데 왔냐며 오마니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근처 고기집으로 데리고 가셨고,
타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이 야무지게 먹는걸 흐뭇하게 보시고,내 카드로 결제하셨다. 응? 
친구들이랑 가봤는데 여기 괜찮더라며 파XX찌라는 내 돈주고 절대 안가는데 가셔서 또 내 카드로 결제하신다. 응?




그렇게 뭔가 속은 기분으로 잠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 목욕탕에 다녀오니...

"오빠아아아아아아아아!!!!!!"
나랑 24살 차이. 띠동갑도 동갑이니까 너는 오빠한테 반말해도 된다고 그린라이트켜준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 와있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디 보자아~~~~얼마나 많이 컸나!!!!!!!!!!!!!!!!!!!!!!!!!"
몸무게 확인 겸 번쩍 안아들어서 뱅글뱅글 돌려주니 꺄르르르르르르륵~하고 웃는다.
"너 마침 잘왔다. 느그 외숙모랑 막내 병원가봐야되는데 XX이 어쩌나했는데 너가 마침 들어오네. 애 좀 봐라."
"엥? 나 친구들 만나러 갈려고 했는데?"
"점심부터 술먹을려고??? 애 좀 보고있다가 저녁에 만나도 되잖아."
"뭐...그...그렇긴 하네요. 보나마나 피씨방가자 할거 같으니까....;;;;"
"XX아. 오빠한테 맛있는거 사주라고 해. 큰고모랑은 이따가 저녁에 맛있는거 먹자."
"네!!!!!"

원래는 아직 취업준비중인 친구들 만나서 피씨방가서 테란연방과 저그의 얽히고 얽힌 갈등을 풀고 프로토스의 신묘한 우주기술력을 맛보고,
사각테이블에서 삼각함수와 작용반작용법칙을 응용한 빨간공 하얀공 노란공으로 즐기는 게임을 좀 즐겨보려했는데...
졸지에 집에서 꼬마애 뽀로로나 틀어주게 생겼다.

"아니아니. 다른거."
"이것도 본거야? 어...더 없는데..."
어지간해서는 할머니엄마아빠고모고모부오빠언니들 성가시게 떼쓰는 애가 아닌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우야...자....잠깐만....다른데는 뭐하나..."
그러나 평일 낮에 하는 프로야 뻔해서 마구마구 넘기고 있는데...
"우와!!!! 코끼리!!!!!!"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나를 살렸다. 
아마, 아프리카 뭐시기 하며 나오던 프로그램이었다. 
코끼리나오는건 잠시, 냉혹한 아프리카초원의 약육강식세계를 보여주는데 피튀고 내장이 쏟아지는걸 이 쪼그만게 너무 집중해서 보고 있다.
어우...보고있자니까 순대에 소주가 땡기네. 안되겠어. 라며 테레비를 꺼버린다.
"어.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
"XX. 진짜 코끼리 보러갈래?"
"아프리카가는거야?"
"그건 은하수를 따야되서 안돼. 그리고 대부분 19금이야."
"19금?"
"너가 한 3천밤 정도 더 자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돼. 너무 일찍알면 재미없어. 코끼리보러갈래?"
"응!!!!!!!!!!"

냉동실에서 아버지가 등산가실때 드시려고 얼려놓은 보리차를 꺼내서 손수건으로 돌돌싸서 챙기고,
동생방 서랍을 뒤져서 휴대용선풍기를 꺼내서 건전지 끼워놓고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오마니 화장대에서 선크림을 찾아서 동생얼굴과 팔뚝에 가부키화장을 해준다.
거실 어디를 뒤져보니 언젠가 쓰고 왔다가 우리집에 두고간듯한 어린이용 썬캡까지 찾아냈다.
동생한테 보나마나 엄마몰래 산듯한 카메라와 렌즈를 쓰겠다고 까똟보내니, 
건드리기만하면 형제의 인연을 끊고 불구대천의 원수로 대하겠노라고 답장이 오길래,
조까 뭐래. 하고 차단해버리고 카메라를 챙겨들었다.

"밥은 나가서 처음보는 아줌마가 엄마의 마음으로 싸주는 김밥먹자. 김밥 어때?"
"좋아. 나는 참치김밥. 당근빼주세요."
"맛을 아네. 편식은 안되지만."
"떡볶이도 먹고싶다!!!!"
"안돼. 배터져."
"오빠가 남은거 먹을거잖아."
"얌마. 오빠가 짬통이여?"
"짬통이 뭐야?"
"있어 그런게."
 


평일 점심에 집근처 김밥헤븐으로 애데리고 들어서니 아주머니 표정이 요즘 먹고살기 힘들죠???라고 묻는듯하다.
서비스로 내주시는 멸치국물에 건더기가 있었나???싶기도 하다.

남길지도 모르지만 오빠마음이 동생이 먹고싶다는데 안사줄수도 없고,
참치김밥당근에디션에 치즈떡복이를 시켰다.

"애가 참 예쁘네. 아빠따라왔니?"
"아빠아닙니다...ㅠ.ㅠ"
"어머. 죄송해요. 닮아가지고...(저를 닮았다니!!!! 동생한테 사과해주세요!!!!)...삼촌이랑 왔구나."
"사...삼촌아닙니다...;;;;"
"오빠예요!!!"
측은한 눈빛으로 우릴 보시던 아주머니 눈빛이 의심의 눈초리로 변하길래, 
사촌오빠입니다. 사촌오빠. 나이차가 많이 나요.라고 알려드려야했다.

"남기면 안돼."
"오빠있으니까 걱정안해."
"도대체 평소에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거냐??? 떡볶이 매울텐데..."
"나 매운거 잘먹어. 밥먹을때 할머니 고추먹잖아??? 나도 먹어."
"오빠도 잘 안먹는 고추먹으면서 당근은 왜 안먹을려고 그러냐. 그거 작은 고모가 애써 키워보내주는거잖아."
"당근싫어~."
"전국의 당근농가에게 사과해. 너도 쫌 크면 당근없어서 못 먹을 날이 올거야."
"그런날은 안와."
"쪼끄만게 말 한마디를 안질려고 그러네. 누구냐??? 누구한테 배운 버르장머리냐. 짝은오빠지??? 입으로 먹고 사는 짝은오빠???"(학교선생님.)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밥먹고...(말싸움 내가 질뻔...뒤늦게야 하!!! 이렇게 말했음 내가 이겼는데!!!라며 깊은 빡침이...)
결국 김밥과 떡볶이로는 (내 배를 채우기에) 부족해서 돈까스도 시켜먹고 배두드리며 나와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동물원으로 간다.




휴가철도 아닌 초여름 평일 인데도 동물원엔 의외로 사람이 좀 있었다. 
커플...커플...커플!!!!! 내가 이 엠병할것들 보러 온게 아닌데!!!!
호모사피엔스 관에 다 처잡아놓고 보고싶다는 S스러운 생각이 자꾸 든다.
번식은 잘하겄네. 젠장젠장.

동물원 입장하자마자 잡고있던 내 손 획!!!! 뿌리치고 우다다다다다!!!!하고 달려가다가 열걸음도 못가서 넘어져버린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어머어머!!! 애기야 괜찮니????라며 묻는데, 나만 태연하게 가서
"거봐라. 내 출발과 동시에 그럴줄 알았지."라며 대일밴드꺼내는데, 
자빠지긴 지가 제풀에 넘어져놓고 오빠 나뻐!!!!라며 내 머리를 찰싹!!!하고 때린다.
까불지마 애송아. 라며 얼른 대일밴드 붙여주고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고 매점으로 가서 솜사탕을 사맥였다.
솜사탕은 우는 아이 눈물도 뚝 그치게하는 곶감과 같은 존재이니라.

그렇게 입에 뭘 좀 물려놓고 안내판 앞에 선다
"코끼리는 한참 걸어야겠네."
"호랑이있어?"
"물론. 사자도 있어. 곰도 있네."
"코끼리 보고싶어."
"실제로 본적있냐?"
"아니. 나 이런데 첨와봐."

언니라는 것들이 애데리고 나가서 맨날 시컴시컴한 극장이나 데려가고 이런 어린애다운곳을 안오다니!!!
오빠가 언니들 만나면 혼꾸녕을 내야겠다고 말하려는데...

"우와!!!! 강아지!!!!!!"

오른쪽 무릎에 피를 철철 흘리더니, 기어이 니가 왼쪽 무릎에도 상처를 내려는구나!!! 거기 안서냐!!!!고 쫓아간 그 곳은
동물만지기체험하는곳으로...

냄새나는 햄스터와 냄새나는 기니피그와 냄새나는 거북이와 냄새나는 강아지들이 있었다.

그 중에 동생이 꽂힌건 냄새나는 강아지 중에 딱 봐도 순수혈통은 아닌 믹스종 강아지였다.
"이쁘다!!!"
"만지셔도 되요."
"네!!!!"
동물만지면 물티슈며 손세정제며 호들갑떠는 다른 동생들과 달리, 
동물을 만지면 광견병이 아닌이상 면역력이 +1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인지라 흐뭇하게 너무 귀찮게 만지면 안돼. 물린다.라며, 
이 흐뭇한 광경을 담아보려 카메라를 꺼내들었는데...배터리가 없다...어째 가볍더라...

강아지보고 좋아하는 동생반응도 괜찮고, 이 강아지 리액션도 장난이 아니다.
동생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움직이는데 동생이 자지러질만하더라.

가자고 하면 울까봐 냅두고 있자니, 직원분이 앉아있던 파라솥 밑에 의자를 하나 더 꺼내주시더니 앉아계시라길래 염치불구하고 앉았다.
날이 더워서 동물들도 기운없고 사람들도 별로 안들리는데 애가 너무 좋아하니 보람이 있네요.라고 하신다.
아빠예요? 요즘 힘드시죠. 그래도 평일에 애데리고 나오시고 보기가 좋네요.라길래.
또 삼촌을 넘어 사촌오빠까지 족보정리를 해드렸다. 

더위먹을까봐 종종 물도 먹이고 부채질도 해주고 그늘쪽으로 옮겨주고 하다보니...
직원분은 아예 금방 올테니 잠깐만 봐주세요.라며 자리를 뜨기도 했다.

"코끼리안볼거야???"
"꺄르르르르륵"
"우와~호랑이 울음소리 안들렸어? 보고싶지않아???"
"꺄르르르르륵"
"새끼사슴도 이쁘고 아까 물어보니까 다른 새끼동물도 있대. 가볼까???"
"꺄르르르르륵"

나조차도 기다리다지쳐서 직원분한테 핸드폰번호 적어드리고 어디 담배태울수 있는데 있냐며 물어보고 잠깐 애 좀 봐주시라고 부탁하고,
연초도 한대 태우고 화장실도 갔다가 음료수사와서 직원분 하나 나 하나 동생 하나 맥이고 또 앉아서 기다렸다.




"저기..."
"허억!!!!! 네????"
깜빡 졸았나보다. 직원분이 나를 깨워주셨다.
"폐장시간이 되서요."

이런!!!! 코끼리도 호랑이도 곰도 사슴도 늑대도 독수리도 구관조도 파충류관도 못보고 강아지나 보고 가게 되다니!!!!
라며 졸린 눈을 비비며 동생을 찾으니 아직도 그 강아지랑 놀고 앉아있다....;;;;;
집중력보소. 얘 혹시 천재아닐까???라며 XX아. 집에 가야돼. 라고 불렀다.

뭐??? 왜??? 라며 강아지를 만지다못해 아예 끌어안고있던 동생은 잠시 멍하다가...

"오빠. 나 이 강아지사줘!!!!"
라고 말했다.

나도...정리하시던 직원분들도 멈칫했다.

"뭐???"
"사주세요!!!!"
"존댓말써도 안돼."
"그럼 사줘."
"반말은 더 안되지. 왜?"
"예뻐. 맘에 들었어."
"안돼 돈없어. 나도 페라리랑 람보르기니 예쁜데 돈없어서 못사."
"카드있잖아!!!!"
"쪼그만게 어디서 뭘 배운거야!!! 
어제 고모랑 고모부가 오빠 카드로 먹고 마시며 즐겨버리셔서 한도 찍었을거야. 고모랑 고모부탓이여. 
그리고 동물원에 POS기가 있을리가 없잖아."
"...아!!! 생일선물!!!"
"두달전이었잖아!!! 너가 사달래서 타요사줬는데 있는거래서 바꿔왔잖아!!!"
"크...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반년은 더 남았구만!!! 그리고 오빠 말안듣는데 무슨 크리스마스선물이야!!! 나도 받아본적 없다!!!"

결국 직원분은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6살짜리랑 진지하게 말싸움을 하는 30살 어른이라니...

그리고 시골외삼촌 집에는 큼직큼직한 진도믹스견부터 조그만 말티즈까지 개를 여러마리 키우고 있고, 
이 아이는 그 개들과 정말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 반려동물 욕심을 낼 껀덕지도 없단 말이다.

덥고 배고프고 쪽팔리고 기운빠져서 
이 아이들에게만큼은 자비롭고 인자하며 친근한 오빠가 되고 싶었던 나의 결심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글쎄 안돼!!!! 이제 집에 가야되니까 강아지 돌려드려!!!!"

먼저 우는 사람이 지는거야. 코피를 터트리던가 울려버려. 어차피 13세 전까지는 부모님책임이니까...
라는 철없는 사촌오빠의 되도않는 파이트기술과 형법지식을 곧이곧대로 듣고 어지간해서는 잘 안우는 이 여섯살짜리가
"으아아아아아앙!!!!!! 오빠 미워!!!!!!!"
라며 울음을 터트리고,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를 밀쳐버리고 강아지를 안고 불꺼진 동물원쪽으로 도망쳐버렸다.

발목꺽이는 각도가 5도 부족해서 발목이 꺽인채로 쪼그려앉기밖에 안되어, 
유격받을때 무릎모아쪼그려앉아있느니 열외되어 끌려나가 PT8번을 300회하고 말던 나인지라,
힘없이 뒤로 넘어가버렸고, 오래 쪼그려앉아있었더니 피가 안통해서 얼른 일어나지도 못했다.

"어!!! 꼬마야!!!! 안돼!!!!!"라며 직원분들이 쫓아가주셨고,
어찌나 잘 도망다녔는지 10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데려올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울어 그만 때려 오빠아퍼.
머리를 조아리며 직원분들에게 사과하고, 그 틈에 동생은 앙앙울며 사정거리에 들어온 내 머리를 두들겨댔다.

그렇게 시간이 늦었다며 직원용차량으로 주차장까지 태워주셨고,
태워주신 나이드신 직원분이 왜 데려가면 안되는지 자상하게 설명해주시자 네.하고 순순히 강아지와 빠이빠이.하고 헤어져주셨다.

그냥 오빠말은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라질것.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진 사촌동생을 보며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 습하던 초여름저녁 꼬맹이 잡느라 뛰어댕긴 내 몸에서 피어올라오는 땀냄새에 짜증이 울컥 올라왔다.
오전에 세신사까지 청해서 뽀독뽀독씻었는데 이런 니미랄...ㅠ.ㅠ 
돈은 돈대로 들고 배는 고파 죽겄는데 내 차마저 밥주세요 뿌잉뿌잉하며 경고등에 불을 밝힌다. 도움안되는 놈. 땅파서 기름캐다먹어.









한살 더먹고 꽃피는 봄에 그 동생이랑 막둥이가 할머니 병원오신김에 따라 올라왔을때 굳게 마음먹고 또 동물원을 시도해보았다.

"이게 코끼리야. 넌 본적 없지? 언니는 저번에 큰오빠가 델꾸 와줘서 본적있어."

거짓말치네!!!! 그 입장료내고 강아지만 보고 와놓고!!!!

헛웃음이 절로 나오고 그날일이 떠오르니 화딱지가 나서 네 이놈!!!!하고 반격하려고 했지만, 
이것들이 내 손을 하나씩 잡고 
"재밌어재밌어!!! 오빠가 데려와줘서 완전 좋아!!!!" 라고 해대니, 
혹여 이 인파에 이 꼬마들 잃어버릴까 입다물고 손만 꼭 잡고 있어야했다.
출처 배터리없어 그날 추억을 찍지 못한 동생놈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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