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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번역] 복통
게시물ID : panic_445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비비스케
추천 : 25
조회수 : 50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3/23 11:12:30

4년전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복통이 일어나는 증상. 지극히 건강한 몸인데 어째서인지 복부가 찢어질 듯 아파온다.
당시에는 수험생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후로 수능을 보고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시작한 첫 자취 생활은 매우 신선했다.
1학년이었기 때문에 인맥 만드는 것에 열중하며 지냈다.
친한 친구도 몇명 생겼다. 행복한 대학생활의 시작이라고 여겼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입학하고 3개월 쯤 후부터였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재발했다.
병원에 가보았지만 인간관계와 자취생활에서 기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설명 외에는 별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때문에 1학년 때 내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지독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재발한 걸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그대로 2학년이 되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시험 전날이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당일 특히 자주 일어났다.
나는 시험대신 레포트만 제출하면 되는 수업을 중점적으로 골라 들었다.
건강때문에 곤란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강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내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매일 수십번 이상 화장실에 가야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물론 수업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휴학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자 두분 다 휴가를 내고 나를 데리러 와 주셨다.
휴학계를 내고 짐을 싸들고 신칸센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돌아가려고' 했다.


3월11일 동일본대지진.
그 지진은 부모님과 같이 신칸센 역에 타자마자 일어났다.
흔들리는 차량 안의 모든 승객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지진 따위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미친듯이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시는 두분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날은 신칸센이 운행 불가하게 되어 가족끼리 호텔에서 하루를 지냈다.



다음날 아침 신칸센을 타고 본가로 돌아왔다. 집에서 짐을 풀고 지진 상황을 보려고 뉴스를 틀어보니 원전 문제가 터져있었다.
원전이 터졌다고 우리가 얼마나 위험할 뻔 했는지 호들갑을 떨어도 부모님의 반응은 싱거웠다.
지진이 일어나던 순간부터 이상했던 부모님의 반응을 떠올렸다.
나는 부모님께 여쭤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차분해요?미리 알고있었다는 듯이."

그러자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세살때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고.
그 당시에는 내가 밤중에 복통을 일으키는 바람에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에 데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현관에서 불을 켜고 신발을 벗으려는데 격심한 지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뛰어올라가 3층에서 자고있던 두살 연상의 형을 구출하고 1층에서 주무시던 할머니를 깨워서 근처 공영주차장으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이때 만일 부모님이 깨어있지 않았더라면, 자느라 빠르게 상황대처를 하지 않았더라면 가족들 모두를 데리고 대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도 내가 이유 없는 복통을 일으키면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내 전화를 받고 부모님은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주신 것이었다.

 

 



이 이후에도 나는 간혹 복통을 일으킨다.
복통을 느꼈다 하는 날이면 경찰서 앞에 세워진 [도심 내 교통사고 사건] 게시판의 사망자 란에 1이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하지만 동일본대지진 때만큼 격심한 것은 없다.
지금은 요가를 시작하면서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아픔도 많이 나아졌고 횟수도 줄어들어 생활에 더이상 지장은 없게 되었다.
야생동물들은 지진이 나기 전에 어떠한 전자파 같은 것을 감지하고 몸을 피한다고 한다.
나의 몸도 그 어떤 전자파를 감지하는게 아닐까.


 



후일담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내가고등학교때 겪었던 일을 한가지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복통이 일어나면 그날은 꼭 인명사고로 전차가 늦어지곤 했다.
그 날은 복통이 너무 심해서 역에서 내린 후부터 배를 부여잡고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언덕이 시작되는 부분에 횡단보도가 있다.
학교를 가려면 반드시 그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구조이다.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는데, 갑자기 심한 오한과 복통이 나를 덮쳤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신호가 빨간불로 바뀔때까지 나는 그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량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
언덕 위에서 어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엄청난 스피드로 내려왔다.
직장에 늦었을 수도 있고 다른 급한 용무가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 여자는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언덕을 내려오던 엄청난 스피드을 유지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니, 건너려했다.

 

 

 


길을 반도 건너기 전에 그 여자는 옆에 오렌지색 라인이 들어간 차에 치여 10미터 정도 날아가버렸다.
치이기 직전의 그 여자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치인 후에도 숨이 붙어있었던 그녀는 20분 후 구급차에 실려갔다.
그리고 3일 후 언덕 앞에는 횡단보도에서 일어났던 뺑소니 사망사고 대한 목격자를 찾는 경찰서의 푯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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