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때 큰아버지 집은 진짜 시골집이었다.
화장실은 진짜 정말 완전 리얼리 혼또니 깐땁스키 시골집이었다.
뭐랄까 그 화장실은 똥수깐 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런곳이었다.
똥수깐 한편에는 건초가 쌓여있고 그 앞에는 외양간이 붙어 있어 소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겨울에 큰아버지집 똥수깐에서 똥싸고 있을때면 그 큰소는 흰 입김을 푸르르르 푸르푸프 푸르링 푸르르르~ 불어내며 나를 쳐다보며 음메하고 울었다.
지금생각하면 그냥 옛날느낌나는 운치있는 장면일 수 도? 있겠지만..
꼬꼬마였던 그당시 나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만 있었다.
상상해보라..
나보다 10배는 더 큰 생명체가...
내 대가리만한 눈을 굴려서 나를 쳐다보며.....
내가 내는 목소리보다 더큰소리로 음뭐머머머머머어어어어어~
하는데... 당연 무섭지.... ㄷㄷㄷㄷ
그랬기에 나는 큰아버지집에서 똥싸는걸 무척 무서워했다.
안그래도 아래가 훵하니 뚤려있는 똥수깐이라 무서운데.. 등치큰 소까지 있으니 더욱 더 무서웠다.
설날쯤이었던것 같다.
나는 똥이 마려워 죽을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참고있었다.
몸을 배배꼬면서 허읍~! 헙!! 허으짜~ 허으어으어어워어어어어~ 소리내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왜 그러고 있어? 똥마려?'
'네...'
'그럼 가서 싸고와.'
'화장실에 소 있어서 무서워요....'
나는 쥐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선 하나도 무서운게 아니라면서 내손을 잡고 화장실로 이끄셨다.
'여기 변소 무섭지?'
'네. 아래가 뚤려있어서 무서워요..'
'여기 누렁이는 우리 아들이 화장실에서 무서운거 지켜주려고 있는거란다.'
'누렁이?'
'응 여기 이 소. 소 이름이 누렁이야. 누렁이는 막 귀신나와서 똥싸고 있는 우리 아들 지켜주려고 그러는거야.'
'아!!! 그렇구나!!!!'
그
뒤로 큰아버지 집에서 똥싸는건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보다 더큰 강한존재가 내가 똥싸는 약한순간에 지켜준다니! 이 얼마나 멋진일인가!!!!
그뒤로 난 큰아버지 집에 갈때면 늘 똥수간에서 놀았다.
옆에 쌓인 건초를 집어 누렁이의 입에 넣어주며 말이다.
누렁이도 푸르르르르 음뭐뭐뭐뭐뭐어어어어워어어어어어어~ 워어어어어~ 워어어어어어~ 하면서 잘 받아먹었다.
그뒤로 두해정도 지났을까??
큰아버지의 아들.. 사촌형님의 결혼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친가쪽이... 8남 4녀라..... 나이차이가 무지 많다.. ㄷㄷ 심지어 첫째 큰아버지의 큰아들이 가장 막내인 우리아버지와 1살차이..ㄷㄷㄷ)
요즘이야 예식장에 마련된 뷔폐에서 식사를 대접하지만
그때는 결혼식 마치고 버스를 대절해서 집으로 손님들을 모셔온뒤 마당에 자리를 깔아두고 대접했었다.
나는 큰집에 오자마자 똥수간으로 달려가 누렁이부터 찾았다.
'누렁아~ 풀먹자~ 냄새나는 똥수간에서 풀먹자 으흐흐흐흐~ 크크크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으흐흐흐흐흐흐흐'
그런데 왠일인가.... 외양간은 텅비어있었고 누렁이의 코뚜레만 걸려있었다.
'큰엄마!! 누렁이 어디갔어요???'
'누렁이? 오늘이 잔칫날이잖아. 오늘같은 경삿날 잡아야지.'
잡았다니??? 누렁이를 죽였다고??? 그리고 먹는거야???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자.. 너도 얼른 저기가서 밥먹어. 손님들이 많이 와서 정신이 없네.'
나는 어머니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아들. 밥먹어야지. 우리아들 좋아하는 고기국이네~'
'엄마 이거 누렁이에요?'
'응???.... 으... 으응....'
'누...누렁이가.. 흐어어어어어어엉... 엉엉엉~ 엉어르엉~엉~ 엉엉 어르어르엉엉 엉~엉~ 어어어허어허어허허허허어허엉 헝헝헝허어어어엉~ 허어어어어 헝헝헝헝헝그리헝헝헝헝허어어허어어어어엉...'
난 밥상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나를,
어머니는 그냥 밥먹자고 하면서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 큰아들 장가밑천으로 키운건데.. 누렁이는 뭐 자기 몫했지! 뭐 에이!'
큰아버지셨다.
그당시 피도 눈물도 없다고 무지 싫어했는데, 후에 아버지 말씀들어보니 그날 술을 무지하게 많이 드셨다고 한다.
손님들이 주는 술을 마다하지 못해서 였는지 누렁이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누렁이를 잡아서 무지 섭섭해 하셨다고 한다.
그뒤로 큰집에선 개도 안키웠고 말이다.
난 계속 울다가 배가 고픈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것이 결혼식 때문에 밥시간은 지나가있었고...
우는 행동으로 엄청나게 열량을 까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밥숫갈을 들어 누렁이 고기가 우러난 국을 울면서 떠먹었다.
맛있었다....
누렁이는 맛있었다......
반투명하게 우러난 국물도 맛있었고..
누렁이로 만든 육편도 맛있었다.
심지어 익히지 않은 누렁이의 간도 맛있었다.....
다 맛있었다.....
그랬다.... 누렁이도 소였다.....
난 맛있어서 큰어머님께 국한그릇 더달라고 했고,
친척어르신들과 동네주민어르신들은 저놈저거 아까는 누렁이 죽였다고 대성통곡 하더니 두그릇 먹는거 보라며 껄껄껄 웃으셨다.
난 창피했지만 맛있는걸 어떻게 해...... ㅠㅠ
진짜 그날 소고기는 배터지게 먹었던거 같다.
간만에 고기를 먹은 나는 당연하게도 그날밤 설사를 했고,
무서운 똥수간에서 나를 지켜주던 누렁이를 생각하며 설사를 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를 지켜주던 고마운 누렁이는 맛있었다고......
지금도 나를 지켜주던 그 누렁이는 내 뱃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