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정확히 말하면 전날 심야 상영으로 봤다.) 곡성을 본 뒤 이 영화를 반드시 3명에게 보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첫 번째 인물은 외모와 다르게 겁이 많은 작은 형
성공했다.
두 번째 인물은 영화 동아리 출신에 영화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공포영화를 못 보는 친구
역시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앞선 두 남자와 같이 영화는 좋아하지만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와이프다. 나는 와이프에게 공포영화로 2번 사기를 친 전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연애할 때 "드래그 미 투 헬" 이라는 영화였다. 와이프는 영화 포스터와 카피를 보고 "이 영화 공포영화 아니야?" 라고 의심을 했지만
"이 영화감독이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 감독이야! 그리고 포스터의 여주인공이 지옥에 가서 악마들과 싸우는 다크 히어로물이야.." 라고 속였다.
물론 샘 레이미가 "이블 데드" 시리즈의 감독이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와이프는 영화를 보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소리치다 웃다가를 반복하다 극장에 무섭긴 했지만 재미는 있었다며 하지만 한 번만 더 사기를 치면 영화 속 할머니처럼 내게 저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기는 "케빈 인 더 우즈"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드래그 미 투 헬" 보다 와이프를 속이기 더 쉬웠다. 일단 영화 포스터 자체에
크게 쓰여있는 <어벤저스> 제작 군단 이라는 문구와 와이프가 그 당시 좋아하던 토르(크리스 헴스워스)가 이 영화에 나오기 때문이었다.
와이프는 어벤저스를 참 좋아했는데 온갖 크리처들이 등장하는 공포영화계의 어벤저스는 싫었나 보다.. 극장에서 나왔을 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인상적인 큰 손처럼 와이프는 "토르가 망치들고 괴물들하고 싸우는 영화라면서 이 자식아!!" 라며 그 큰 손으로 내 등짝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그때 등짝을 제대로 맞은 충격과 이번에 한 번 더 낚시질하면 아마 죽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와이프에게 공포영화를 보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곡성을 본 뒤 이 영화는 와이프에게 꼭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공포영화를 못 보는 와이프를 놀리고 싶어서
가 아닌 영화의 완성도 때문이라 할까..
귀가 슬라이스 치즈처럼 얇은 작은 형과 경쟁심만 부추기면 저절로 낚이는 친구 녀석과 다르게 맞아 죽을 수도 있으므로 인생의 최악의 영화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와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인 와이프에게 미끼를 던지고 기다릴 때 신중함과 미끼를 덥석 물게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와이프는 곡성을 보러 가기 전 내게 "오빠 그런데 이 영화에 서영희 나와?" 라고 물었다. 만일 박복한 캐릭터를 전문으로 연기하는
서영희 씨가 나왔다면 와이프는 아마도 곡성 관람을 더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곡성을 보고 온 뒤 "영화 어땠어?" 라고 묻는 와이프에게 담담하게 "한 번 봐서는 잘 모르겠어. 조만간 다시 한 번 봐야겠어.." 라고 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본 와이프는 곡성이라는 영화가 뭔지 몰라도 대단한 영화구나라는 것을 느낀 표정이었다.
성공적인 낚시를 위해 와이프 앞에서 곡성에 대해 호들갑 떨지 않았다.
그 뒤 굳이 내가 미끼를 던지지 않아도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인터넷 뉴스와 곡성과 나홍진 감독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는 TV 방송들은
와이프에게 강력한 미끼 같았다. 그리고 어젯밤까지 볼까 말까 입질만 하던 와이프가 드디어 미끼를 덥석 물었다.
"오빠 나 오늘 저녁에 **이랑 곡성 보고 와도 될까? 하도 곡성 곡성 하니까 나도 보고 싶어서..."
"삼삼이랑 놀아주고 있을 테니까 보고 싶으면 보고 와."
"그런데 곡성 많이 무서워?"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
"무슨 소리야? 무섭냐고 안 무섭냐고?"
"뭣이 중한디? 무서운 게 뭣이 중한디.."
결국 난 붉은 눈의 외지인보다 더 강렬하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와이프에게 헛소리 좀 그만 하라며 등짝 세 대를 맞은 뒤 무섭다고
고백했다. 사실..나는 곡성보다 니가 더 무서워.. 라는 말은 차마 못 했다.
삼삼이와 폭군 도마뱀 공룡 놀이를 하고 재웠을 때 곡성을 보고 온 와이프가 돌아왔다.
"괜찮았어?"
"와.. 마지막 20분 동안 심장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 영화 끝나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어."
"찬송가 불러줄까? 아니면 반야심경 읊어줄까?"
"닥쳐..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나저나 마지막에 그 아이 어떡해.. 너무 가여워.."
와이프는 엄마라서 그런지 영화 속 효진이 걱정과 현실의 아역 배우가 심리적인 충격을 받았을 거 같다며 걱정했다. 그런 와이프에게
"그런데 그 효진이 연기한 아역배우 걔 욕 진짜 찰지게 하지? 누구한테 배웠을까? 나도 좀 배우고 싶던데..."
"이 모질이 새끼야.. 그런 것만 귀에 들어오냐.."
그날 밤... 오랜만에 곡성을 포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와이프가 먼저 살짝 잠이 들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와이프가 입고 있는
반바지를 살짝 걷어올렸다. 잠시 후 뭔가 느낀 와이프는 살짝 눈을 뜨더니
"오빠가 나한테 이 말이 듣고 싶은 거구나.."
"뭐? 무슨 말?"
옆에 곤히 잠든 삼삼이가 듣지 못하게 와이프는 내 귀를 잡고 소곤거렸다.
"지금 뭐혀? 왜 마누라 바짓속을 들여다보는데... 말을 허라고 이 시벌놈아.."
'고향이 시골이라 그런지..얘도 욕을 참 찰지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와이프는 무서운지 나를 꼭 안고 있다 잠들었다.
그나저나 삼삼이 자식은 곡성도 안봤는데 왜 내 배위에서 자는지 모르겠다. 무겁다.. 이게 바로 가장의 무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