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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게시물ID : sisa_4456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분만닥쳐
추천 : 2
조회수 : 398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0/16 14:15:50
부마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 또는 부마민중항쟁(釜馬民衆抗爭)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와 경
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항쟁을 말한다. 10
월 16일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유신철폐"의 구호와 함께 민주화 시
위를 시작했다. 다음날인 17일부터 시민 계층으로 확산된 것을 시작으
로 해서, 18일과 19일에는 창원 지역으로
[1]
민주화 시위가 확산됐다.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은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
하고, 66명을 군사 재판에 회부했으며, 10월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을 출동시킨 후 민간인 59명을 군사재판
에 회부했다.

배경

일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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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여러분과 같은 기여자가 작성한 문서입니다.
CC BY-SA 3.0에 따라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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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월에 실시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는 불법적인 금권, 관
권선거에 영향이 크게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공화당은 야당
인 신민당에 패배했다. 그 후 민주화 시위가 활발해지면서 당시 민주
인사들에 대한 연행과 투옥 등 탄압 강도가 강화됐다.
[2]
같은 해 8월에
YH무역주식회사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점거 농성으로 집권 공화
당은 야당인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는 곧 야당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로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전국에서 대학생
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확대됐다. 한편 김영삼의 발언을 문제삼아 국
회의원직에서 제명처분을 하고 감금한 것에 대한 반발이 부마민주항
쟁을 작용케 했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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