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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샤론 스톤과 논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56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29
조회수 : 2738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6/06/08 11: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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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마.... 30대 중반 이전의 분들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고향에서 나름 신동 소리를 듣던 나는 고향을 떠나 인근 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느낀 건은 나는 절대 신동이 아니었다는
것과 도시에는 고향에 없는 신기한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뭐.. 중학교 때까지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시골 촌놈 이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신기한 것 중의 하나는 극장이었는데 극장이 없던 고향에서 학교 강당에서 틀어주는 저화질의 영상을 보거나, 간혹 버스를 대절해 단체 
관람으로 반공 또는 심하게 국뽕을 빨아댄 영화를 보던 시골 촌놈이었던 내가 도시로 진출하면서 새롭게 생긴 고품격 취미는 바로 영화감상이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교복을 벗고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집에서 몰래 챙겨온 아버지 작업복을 입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주로 방문하는 극장은 
개봉관이 아닌 약간은 철 지난 영화를 상영하던 가격도 약간 저렴하고 영화 2편을 상영하는 동시 상영관이었다. 평일 밤 시간대라 그런지 당시
극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심지어 지정 좌석도 아니었다.) 주변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웃긴 장면에서는 크게 웃고 
무서운 영화를 볼 때는 큰소리로 소리 지르며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좋지 않은 추억도 있는데 (심지어 영화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라스트 모히칸이라는 영화를 볼 때 극장에 나를 포함 3명의 관객이 있었는데, 내 뒤에 있는 어떤 아저씨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내 귀에 
혓바닥을 집어넣고 핥.. 아.. 시벌.. 지금 생각해도 욕 나오고 토가 나올 거 같다. 지금 같았으면 혓바닥을 뽑아 귓구녕에 박아버리든지 가만히 
두지 않았겠지만 당시 순진한 10대였던 나는 바로 극장을 뛰쳐나와 집까지 울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뭐.. 그래도 극장은 계속 다녔다. 

그렇게 내가 극장을 다니기 시작한 1992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엎는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원초적 본능.. 지금 보면 "이게 뭐가 야하다고 그 호들갑이야?" 하겠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쉽게 말하면 지금 걸그룹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을 그 당시에 입고 나왔다면 아마 영구 출연 정지당했을 그런 노출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였다. 

우리 반에는 원초적 본능을 본 용자와 보지 못한 겁쟁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선생님들과 극장 관계자들의 감시를 뚫고 먼저 원초적 본능을
감상한 용자들은 애들을 모아 놓은 뒤 의자에 앉아 샤론 스톤이 취조받을 때 다리 올리는 장면을 흉내 냈고 우리는 그 더러운 자태를 보며 
부러워하다 나와 친구 다섯 명은 원초적 본능 원정대를 결사했다. 우리는 각자 나이 들어 보이는 복장을 하고 극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버지 양복을 입고 온 놈, 면도하지 않아 콧가에 송송 올라온 솜털같은 코털을 달고 온 놈, 그리고 생긴 자체가 늙은 태국인 같은 놈...
우리는 만일 극장 근처에 잠복하고 있는 사복 교사들에게 잡혀도 절대 같이 죽지 말고 개별적으로 장렬히 전사하자고 결의했다. 
(당시 원초적 본능의 악명이 하도 높아 거의 모든 고등학교 남자 교사들이 잠복해서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잡아내고는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은 17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40대 중후한 모습을 가진 나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표 5장을 내줬다. 나는 친구들에게 표를 한 장씩 나눠주며 "이제 개인플레이다! 걸리면 혼자 죽는 거야!" 라고 강조하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개전투식으로 극장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드디어 영화 상영시간이 임박해 사람들이 극장 안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외모만 품격있고 연륜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혼자 극장을 다니며 터득한 고개 숙이지 않고 노안을 뽐내며 당당히 사람들 무리에서 입장하는 나만의 스킬이 있었다. 
그렇게 유유히 극장안을 입장하는 데 친구 한 녀석이 갑자기 나를 끌어안더니 "이 자식도 ** 고등학교 학생이에요!!" 라고 소리 질렀다.

"놔라.. 이 새끼야.."

처음보는 선생님이 (아마도 다른 학교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나를 일본 장군처럼 끌어안고 있는 논개처럼 나를 안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왔다.

"너 ** 고등학교 다녀? 학생이야?"

"아니에요. 저 대학생이에요. 얘는 처음보는 애인데요. 사람 잘못 봤나 봐요."

"그러세요? 그럼 어느 대학 무슨 과에요?" (이때 선생님은 내 외모를 한번 스윽 살펴보더니 설마 고등학생이 이렇게 삭았겠어?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멍청하게 아니 뇌가 순수하게 왜 그랬을까.... 

"저 **대학교 문과에요!" 

"나와 이 새끼야.." 

그렇게 나는 논개처럼 나를 붙잡고 있는 녀석과 같이 극장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극장 밖에는 우리보다 먼저 걸린 녀석들이 무릎 꿇고 
손들고 있었다. 그날 난 논 개같은 새끼 덕분에 원초적 본능 감상이라는 일탈을 며칠 후로 미룰 수 있었다. 
출처 그래도.. 원초적 본능 봤을 때가 행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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