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같이 듣는 소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평소에 수염이 잘 자라지 않아 드문드문 자르기도 하고, 옷을 추리하게 입고 다녀서 이해는 간다. 문제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간 날에도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 과 학생회에서 회식을 한 다음날이면, 다들 내게 "야 너도 거기서 엄청 마셨나보네ㅋㅋㅋㅋㅋㅋㅋㅋ" "너네 과가 많이먹긴 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마셨니? 사람꼴이 아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는 소리를 듣는데, 중요한 사실은 나는 학생회가 아니고, 심지어 그 날은 내가 오랫만에 푹 자고 일어난 날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내가 사람꼴로 안다니긴하지... 그래도 오늘은 세미 사람 정도로는 챙기고 온건데.... 어제 팩도 하고 잤단말이야....
억울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아니 나 오늘 쌩쌩한데....방금전에 수업시간에도 푹 잤단말이야...." 라고 징징대면, 친구들은 "아니 넌 피곤해보여." "네가 잘못알고있는거야. 넌 피곤해." 라며 단호하게 내 스테미너 수치를 측정 해준다. 눈에 스카우터라도 달았나... 프리저같은 놈들...
특히 저번 중간고사기간에는 피곤해보인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는데, 다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줄 안다. 난 그냥 방에서 게임만 했는데...
아무튼 시험기간 이었지만 방에서 게임을 하던 도중, 나처럼 할짓이 없는 동아리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뭐해요?" "롤" "치맥 할래요? 지금 좀 모였는데." "안돼. 나 이판만 끝내고 공부할거야." "어짜피 안할거 알아요 와요 형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딘데ㅋㅋㅋㅋㅋㅋㅋ" "썬더치킨이요ㅋㅋㅋㅋㅋㅋㅋ" "갈게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치킨집에 가서 자리에 앉고보니, 애들은 이미 줄창 먹고 마시고있었다. "형 왔어요? 이따가 XX누나도 도서관에서 온대요. 공부끝내고 치킨만 먹으러 온대요." "와... 대단하네... 참 열심히 한다 걔도." 나와 그 아이가 친한걸 알아서 그런지, 후배는 내게 툭 던지듯이 말했고, 나는 친하긴 해도, 딱히 관심은 없었기에 대충 넘어가고 자리에 앉았다.
역시 벽지만 봐도 재미있는 시험기간이어서그런지, 술자리는 재미있었고, 자연스레 피쳐가 쌓여갔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때,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얘들아 나 왔어..." 공부가 끝나고 온다는 아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목이 늘어난 티셔츠, 헝클어졌지만 묶어올린 머리, 귀찮았는지 간단한 화장에 안경을 쓰고 온 그 아이는, 지친듯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내 얼굴은 붉어졌고, 나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용기를 내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고, 나는 수줍게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야 너 피곤해보인다. 개못생겨졌네."
그날 난, 공부에 지쳤어도 충분히 사람을 아프게 때릴 수 있는 그 아이의 경의로운 체력과, 친구들이 내게 왜 항상 피곤해 보인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