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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부(相撲部)
이 이야기는 스모부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한 한국인 남성이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실90%+과장5%+(재미를위한)뻥5%...]
코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테이쿄-데 오쿠리시마스....
응? 이게 아닌가...
이번글의 테마는 곳쨩과의 첫 만남과
곳쨩이라는 별명의 유래에 대해 써 볼까 한다
원래도 글을 좀 자세하고 길게 쓰는 편이지만
특히나 이번 글은 길고 자세한 글이 될것만 같다
그래도 나의 친구 곳쨩, 수 많은 오유인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곳쨩의 메인 스토리인
이 글을 허술하고 재미없게 쓰고 싶은 마음은
1g도 없기 때문에, 행여 긴 글을 예상 못하고
들어오실 여러분을 위해 미리 주의를 드리며
이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1학년 봄
첫 수강신청을 앞두고 같은학교 동급생
박군과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과목을 정하고 있을때
같은 학교 한학년 선배형님 우리에게로 다가와
주옥같은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셨다
보란티어과목 4단위 개꿀 크흐
그 말은 들은 박군과 나는 학기중이 아닌
학기가 끝난이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이와테로 보란티어를 가는 내용의 수업을
시간표에 포함을 시켰었고
먼 훗날 그 보란티어는 나에게.. 박군에게...
남아있던 남을 위하려는 선량한 마음을
모두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방학이 시작되고 보란티어 출발 전
수업 참가들을 모아두고 설명을 듣는 시간이
학교에서 한번 있었다
나와 박군은 그곳에 가
우리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던 보란티어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대지진으로 삶이 어려워진 수재민지원
도호쿠지방 피해지역으 중심으로 한
구호활동을 할줄 알았으나(우리의착각~)
이 수업의 활동은 이와테의 한 자연학교에
참가한 이와테 초,중학생의 교육 지원과
인솔이였다.
싸인하기전에 계약서 확인을 잘 해야한다는
삶의 지혜를 여기서 난 배울수 있었다
수업을 빼고 싶어도 그 다음년도 성적우수장학금을
노리고 있었던 나는 4단위 수업의 F가 두려워
가지말자고 하던 박군의 부탁을 차갑게 외면했다
나와 박군은 그 학교의
섬머캠프(아이들이 와서 자연의 순환을 배우는기간)
에 맞춰 가는 스케쥴로 정했고 그렇게 그 설명회는 마무리
며칠이 지난 후 신주쿠에서 야행버스로 이와테로
출발하는 날 저녁 박군과 맥도날드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던 도중
의문의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떤 굵은 남자 목소리였는데 주위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말하는 내용을 한개도 못 알아
먹은 나는 대충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합숙때문에
보란티어 출발전 설명회에 참가를
하지 못했던 곳쨩이 가는방법을 물어보는
전화였었는데
몇마디 해 보니까 도저히 나랑 말이
통할것 같지 않아 그냥 끊었다고 들었고
외국인 무시하냐며 팔뚝을 팼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밤12시쯤 이와테행 야행버스에
나와 박군은 몸을 싣고 아침6시쯤 모리오카역에
내린 우리는 가볍게 소고기덮밥을 먹고
버스를 갈아타 다시 2시간을 달리게 되었다
그렇게 영겁의 시간을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보란티어활동을 할)학교...
[학교 이름이 따로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그곳에 처음 내렸을때 내가 느낀 심정을 표현하자면
다시 군대온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306보충대 입대 후 강원도 철원 3사단에서
훈련소 생활을 5주 했었는데
그 강원도 철원의 느낌과 내가 도착한 학교의
느낌이 매우 비슷했다
주위엔 드넓은 하늘과 전후좌우로 존재하는 산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수 있는곳이 하나 없을것같은
그런 느낌의 장소
3사단 훈련소와 그곳의 차이는 철조망이 있고없고
정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적인 생활과 매우 동떨어진 그 곳에
도착한 나는 문명과 멀어져 버렸다는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려 했으나
핸드폰엔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옆에서 나보다 더 극심한 패닉상태에 빠진 박군이
형 여기 무서워 도망가자 도망가자
우리 하지말자 하지말자 나에게 수없이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참가비로 냈던 3만엔이 아까워서
박군에게 하루만... 우리 하루만 해보자...응?
우리가 아직 시작도 안해서 더 무서운걸지도 몰라
하루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우리 가자고하자
라고 박군을 달랬었지만
그냥 박군 말 처럼 도망가는게 정답이였을지도
모른다고 우린 그곳에 다녀와서 수없이 수없이
후회했다.
그렇게 나와 박군의 2주간의 노역 생활이 시작됐다...
13. 첫만남
그곳에 도착한 후 그곳(자연학교)에서 일하던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고
꽤 친절한 직원들 덕분에 처음에 갖고 있던
긴장감은 많이 해소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
내일 시작되는 섬머캠프때 아이들이 쓸
이불을 널어두는 작업을 2시간쯤
선전물 봉투에 선전물을 넣는 작업을 4시간쯤
마당에서 풀베기를 2시간쯤 하고 있던 시점에
그곳 직원이 한명 우리에게 다가와
같은 학교 학생 한명이 지금 도착했으니
인사를 하러 가라고 했다
나와 박군은 옷에 묻은 흙을 탈탈 털고
3번과 4번척추에서 나선 안될 뿌러지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
그 학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박군이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사이에 내가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나는 눈이 굉장히 안좋은 편이다
하지만 야행버스+노동 크리로 렌즈를빼둔지 오래고
자꾸 흙이 튀어서 쓰고있던 안경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상황이였다
교실에 있다고 해서 와봤더니
내 눈에 보이는 교실의 풍경은
이런 풍경이였고
뭐야 아무도 없네라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 나가려는 찰나에
돌아온 박군이 갑자기 빈 교실을 향해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으아닛? 그래서 주머니에 있던 안경을 쓰고 다시
교실을 바라봤더니
파란 이불 구석에 짱박아둔줄 알았던곳에
살면서 봤던
사람중에 제일 동그란 사람이 서 있었다
그게 나와 곳쨩의 첫 만남이였다
이와테 보란티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것 같아서
여기서 한번 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