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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를 접었다.
게시물ID : love_447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뱅구리
추천 : 0
조회수 : 48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2/02 01:12:08
영화를 보며 과자를 먹었다. 
다 먹은 과자봉지를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다가 쪽지 접듯이 접고 있었다. 

굉장히 쉬워 보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과자봉지나 쪽지 접는 
이 방법을 스물다섯 살에 처음으로 배웠다. 

춘천에서 도망치듯 내려와서 혼자 지내고 있던 내게 
친구가 너와 잘 맞을 것이라며 소개해준 사람 

첫 만남에 카페에서 만나 서로 말도 없고 쭈뼛대고 있을 때, 
어색한 분위기에 그 사람은 티슈를 쪽지 접듯이 만들고 있었다. 

나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냥 그걸 보다가 
비슷하게 따라서 티슈를 접었던 것 같다. 

내가 만지던 티슈는 계속되는 손길에 구겨져 버렸고 
답답해서 어색함도 잊고 나도 접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먼저 말을 건 것 같다. 

그렇게 쪽지 접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그 사람과 가까워졌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배려심 깊고, 내 상처를 보듬어주고, 현명하고, 
책임감 있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난 계속 그 사람을 밀어냈고 
더 나아가서 잘해주긴커녕 상처만 주었다. 

그녀의 반복되는 호의에 익숙해졌고 
나는 점점 더 큰 것을 바랬을 뿐 아니라 그것을 당연시 여겼다. 
또 모든 것을 온전히 나에게만 맞추기를 원했다. 

그 사람은 끝까지 착했다. 
나의 예의 없는 이별통보까지도 받아주었다. 
오히려 이별을 말하는 나를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도 자존감 없던, 자신을 만나면서도 다른 이를 속에 담아두던 
찌질이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욕먹어도 좋다. 다시 만난다면 화를 내도 괜찮다. 
그걸 받아들일 자신도, 
이제는 미안했다고 사과할 용기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마 그녀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흔히 이런 이야기는 
더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의 변명이라고들 말한다. 
난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녀에게 그랬었고 그 전에 내가 오래도록 
좋아했었던 누군가에게 들었었던 말이니까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좋아한 만큼보다는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미안해서일까 이런 이야기를 쓰고, 
이런 회상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그녀를 더 좋아하지 못할 걸 알기에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기를 빈다. 
그냥 여지껏 날 위해 준 게 고마워서 축복해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걸로 됐어"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나란 놈, 참 더럽게도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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