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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체험기
게시물ID : military_135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대장
추천 : 32
조회수 : 11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23 10:59:22

오래전에 여기 썼던 글로 기억되오만, 또 써도 될지 모르겠군요. 이미 읽으신 분들은 부디 용서하시길.


때는 1982년 1월.
1월의 새벽밤은 매서웠다.
옆의 김병식 일병은 아직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듯 눈을 껌뻑껌뻑거리고 있다.
두툼한 파카와 방한화도 영하 20도의 추위를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했다.
나는 초소안으로 매섭게 휘몰아쳐 들어오는 바람에 몸서리를 치며
발을 몇번 동동 굴렀다.

"어~ 씨바. 졸라 춥다. 야. 김병식이. 뭐 재밌는 얘기 없냐?"
"넷 일병 김병식. 있기는 한데 말입니다. 전에 다 들으신 내용이라서 말입니다."
"야. 내가 '말입니다' 붙이지 말랬지"
"그런데 말입니다. 습관이 되서 말입니다."
"어후. 야 됐다 됐어"

나는 실탄을 20발 만땅으로 채운 M16을 살며시 거치대에 놓는다.
잔뜩 흐린 날씨이건만 얼마전 내린 눈때문에 웬만큼 달이 밝은것 같기도 하다.
하기사 조명등이 있으니 달이 있건없건 상관은 없지만서도.

그런데 조명등이 비추는 부분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다른 어두운곳을 보면
언뜻 사람의 그림자가 비추는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잔상현상이라고 했던가.

어쨋든 미군들이 쓴다는 야간 투시경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데 그거 사용해본 놈이 그러는데 오래 쓰고있으면 골때린다고..

다시한번 레바가 안전 위치에 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무 쐐기가 단단히 박힌 크레모아 격발기를 한번 쓰다듬어 본다.

나는 전방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한번 좌에서 우로 둘러본다.
화공작전을 왜 안하냐고 중대장이 방방 떴는데 역시 잡초나 관목들이 많았다.
화공작전이란 철책의 감시 시야를 가리는 초목을 말그대로 태워 없애는 작전이다.

화공작전을 대대적으로 하는것을 밤에 보면 정말 장관이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시뻘건 화염... 그리고 간혹 뻥! 뻥! 소리를 내며 터지는 대인지뢰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장애물, 즉 관목과 잡초 조차도 이젠 눈에 익어 눈감고도
지형을 훤히 꿰뜷어 볼수가 있게 되었다.

만일 저 철책너머로 간첩이 온다면...
누르고 던지고 쏜다... 즉 크레모아를 터트리고 수류탄을 던지고 m16을 갈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도 살아남을 적이 있을까..

언젠가는 철책안으로 수색나갔던 수색대 애들이 인민군을 만났다고 그랬다.
양쪽 초소에서 볼때 충분히 기관총 사거리에 드는 거리라 서로 얼어붙은채
한동안 서 있다가 뒷걸음질쳐서 돌아왔다고 했다. 물론 인민군도..
누구 하나라도 방아쇠를 당겼다간 모두가 양쪽 초소에서 날아온 기관총탄에 벌집이
되었을것이다.

"어~ 씨바. 졸라 춥네. 잠을 잘수가 없잖아. 야. 김병식이. 몇분 남았냐?"
"넷 일병 김병식. 1시간 10분 남았습니다"
"씨바. 졸라 많이 남았네. 쓰~"

그때였다.

"탁! 때그르르..."

자그마한 돌이 무엇엔가 채여 구르는 소리가 났다.
아마 순찰을 도는 소대장일것이다. 근무자들을 놀래키기 위해서 일부러 작은 돌멩이를
던지거나 해서 소리를 낸다. 그러면 대개 고참들은 이제 따듯한 커피한잔 먹겠군 하지만
대개 신병들은 소총을 거머쥐고 혼비백산 난리 부르스를 떤다.

언젠가는 같이 근무서던 신병놈이 다짜고짜 안전레바를 딸깍 풀고 사격자세를
취하길래 내가 더 놀랜적이 있었다.

"이 당직병놈으 시키가 빠져가지고 깨스도 안때리네?"

그렇다. 소대장이나 중대장 근무자가 순찰을 나가면 당직병이 유선으로 초소에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깨스 때린다" 라고 했다.

나는 소대장이 올것을 대비해서 장비를 한번씩 추스리고 FM대로 근무자세를 취했다.
소대장도 다 알지만 예의상.

그때 좌전방 10시 방향으로 무엇인가가 언듯 보였다.
내 몸이 순간적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윤병장님. 우리 소대장님 말입니.."
"쉿!"

내가 바짝 자세를 낮추고 소총을 거머쥔채 전방을 주시하자 김병식 일병은 아마 내가
소대장에게 잘보이려고 쇼를 하는줄 알았던 모양이다. 자식. 내가 그런 소대장 따위에게
쇼할 군번이냐.

아무말 말고 자세 낮추고 저길 봐라. 무언가 있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김병식이도 바짝 얼어서 몸을 낮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성한 잡초뿐.
한 5분이나 흘렀을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가 잘못보았나...
긴장이 풀리고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는 갑자기 큰 충격에 휩싸였다.

맞아! 저 관목수풀은 저기 조그만 바위옆에 있었는데...

그렇다. 조그만 관목수풀이 아까 처음 왔을때하고 분명히 위치가 변해 있었다.
나와 김일병은 M16을 겨눈채 뚫어지게 그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지루한 인내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관목이 조금 흔들 하더니 철책쪽으로 조금, 아주 조금 움직이는것이 보였다.

야. 김병식. 너도 봤지?
네 봤는데 말입니다. 혹시 야생동물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야 철책안에 거북이도 사냐?

최대한 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는 와중에 그 관목은 또한번 흔들. 하더니 앞으로 한
10센티미터 정도 이동하는 것이었다.

간첩이다.

이 생각이 드는순간 왜 그렇게 떨리던지.
이미 춥다는 생각은 멀리 달아난지 오래였다.
M16을 움켜쥔 손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 장갑안이 축축해질 지경이었다.

사격을 해야 되는데.. 아니지 크레모아부터 눌러야지.. 아니. 수류탄은 어디있지?
크레모아의 나무쐐기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살며시 빼내었다.

야 김병식. 유선때려라. 이상물체 발견했다고..
네 알았습니다.

김이병이 수화기를 드는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관목숲 아래로 사람의 발이 조심스럽게 나오는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크레모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빠-앙!!"

천지를 뒤흔드는 크레모아의 폭발음이 들렸다.
미리 까 놓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그쪽으로 힘껏 던졌다.
고개를 숙이면서 언듯 본것은 관목숲 주위에서 급하게 탁 튀어 흩어지는
4-5명의 그림자들이었다.

"꽈직!" 하는 머리를 때리는듯한 수류탄 폭발음이 들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M16을 든 나는 조준이고 뭐고 없었다.
대충 그쪽을 향해서 자동으로 놓고 갈겼다.

"빠바바바바바바방!!!"
"빠바바바바바바방!!!"

어떻게 한 탄창을 비웠는지 몰랐다.
탄창을 갈아끼우는 동안 김병식이를 보니 상반신을 노출한채로 넋나간듯이
연발사격을 하고 있다.

야 이 새끼야 몸 낮춰!! 죽고싶어 환장했냐!!

내가 고래고래 악을 쓰자 엉거주춤 몸을 낮춘다.
조명탄이 뜨고 옆 초소에서 날카로운 M60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빨간 예광탄이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는것이 보였다.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것은 비도 보통비가 아니라 완전이 쏟아
붓듯이 내리는 장마비였다.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느낀것은 극도의 공포를 동반한 장엄함이었다.
마치 막을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 앞에 나를 던져버린듯한.. 조명탄과 예광탄이 나르는
순간에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진것은 내가 순간적으로 약간 돌아서였을까?
전쟁터에서 미친듯이 돌격하는 병사의 마음속에 있는것이 과연 "조국애, 용기.."가 전부일까.
마치 무엇인가 강력한 것에 도취되는 느낌이었다.

휴대한 탄약을 모두 소비하고서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격이 중지되었다.
중대장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뛰어왔다.

"야 뭐야 뭐야!!"

귀가 먹먹해서 중대장의 말을 잘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그날 우리가 올린 전과는 적 사살 1. 아군피해 없음. 나는 나머지 놈들이 그 화망을 뚫고
도주에 성공했다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사살된 적은 끔찍하게도 몸이 산산조각이 난채 발견되었다.

이상은 제가 당사자로 부터 들은 실전 경험입니다.
전투 상황이 되면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행동한다는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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