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려도 따뜻하고, 밤이 되어도 따뜻한 겨울이었다.
쓰라린 내 마음을 달래 주고파 그 해 겨울은 그렇게도 따뜻했던 걸까.
아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그 겨울은 따뜻했던 걸 것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던 눈을 보며 아름답다기보다는 집에 어떻게 가지 하는 현실적인 걱정을 하면서
눈이 그치길 기다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바로 그 때였다.
아스팔트는 점점 눈에 쌓여 하얗게 변해가고, 기다리던 버스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왔다.
슬슬 서로를 의식하게 될 즈음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타자 자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아 나는 서서 가게 되었다.
두 정거장쯤 가자 그녀 옆자리가 비어서 같이 앉아 갈 수 있게 되었다.
눈이 내리면 피곤해지나.... 어느새 내 옆에 앉아있던 그녀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내 어깨에 기대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곧 내려야 할 때인데 내가 일어나면 그녀를 깨워야 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계속 가게 되었다.
언제 그녀가 깨어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중요치 않았다.
점점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우리만 남았다.
그 큰 버스에서 기사님을 제외하고 우리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깨워야 하나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는 종점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종점에 도착하였다고 내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딱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기사님은 화장실을 다녀 올 테니 그때까지만 봐준다고 시간을 내주셨다.
3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지갑을 털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땡전 한 푼 없을 그녀를 위해
그 해 겨울을 그렇게 따뜻했나 보다.